[이인균의 민화이야기] 꽃과 새의 그림 ‘화조도’
아름다운 빛깔로 계절·자연 표현한 민화 부부 일평생 사랑 비유 한국적 심성 깔려 사람들 마음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그림
꽃의 아름다움은 빛깔에 있다. 가령 꽃이 잎사귀처럼 푸르다면 누가 꽃을 곱다고 할까? 꽃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우리 민족은 짙고 밝은 빛깔의 진채(眞彩)를 썼다. 진채라고 하면 채색화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진채로 그려진 민화의 꽃은 꽃 자체를 묘사하기 위한 꽃그림이 아니라, 꽃이 지닌 아름다움을 빌어 계절감과 자연에 대한 느낌을 나타내기 위한 감정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민화에서는 꽃을 소재로 한 그림이 무수히 많은데, 모란도처럼 꽃이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다른 소재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꽃과 곤충이 함께 그려지면 ‘초충도’, 꽃이 새와 함께 그려지면 ‘화조도’, 여기에 다른 동물이 더해지면 ‘영모화조도’ 그리고 문자도나 책가도에도 꽃과 새가 종종 등장한다.
오늘 소개할 그림은 전해오는 민화작품 가운데 그 종류나 수량이 가장 많은 ‘화조도’이다. 화조도는 말 그대로 꽃과 새를 그린 그림이다. 예로부터 향기로운 꽃에 새가 날아들듯 꽃과 새의 조화는 남녀의 사랑에 비유되곤 했다. 화조도는 원래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의 생활 분위기를 감싸주기 위한 용도였으며, 신혼부부의 방이나 안방에 주로 걸렸다.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가 일평생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나아가 정겹고 후덕하며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한국적인 심성과 염원이 가장 깊게 깔려있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지난해 봄 내가 그린 8폭 화조병풍 중 한 장면이다. 화조병풍은 흔히 8폭으로 그려지는데, 2폭 씩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를 담고 있다. 이 그림은 봄에 해당되는 것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바위와 흐드러지게 핀 모란을 배경으로 한쌍의 새가 짝을 지어 그려져 있다. 모란은 5월에 피는 아름다운 꽃으로 부귀 안락과 남녀 화합을 뜻한다. 화려하면서도 귀족적인 자태를 가져 단연코 꽃 중의 제일이라 해 화중지왕이라 불려지기도 했다. 한편 바위는 십장생의 하나로 영원불멸을 뜻한다. 이 그림을 굳이 풀이하자면 화목한 부부애와 함께 부귀를 누리며 바위처럼 오래오래 살라는 뜻이 되겠다. 화조도는 사랑, 믿음, 자유로운 꿈과 현실을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에 빗대어 표현한 그림이다. 특히 민화 속의 새는 아름다운 꽃만큼이나 곱고 눈부신 깃털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꽃과 새의 강렬한 원색이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민화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색채의 조화에 있으며 화조도에 있어서는 그것이 더욱 강조된다. 그러다 보니 그림의 소재들도 모두 빛깔이 고운 꽃과 새들이 주가 되고 색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원형을 잃어도 상관없는 방식으로 추구되기도 했다. 전통화 즉 문인화가 인간의 감정 세계를 초월한 이성적 세계를 지향했다면, 민중의 생활화인 민화는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솔직하고 진솔하게 표현한 그림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인균 민화 작가 / 본지 독자권익위원 / 전 울산시청자미디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