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화로운 세상 이야기 ‘지금, 여기 나를 담다’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이면 진행되는 라온누림 시네마 토론회. 어느덧 햇수로 10년째다. 하지만 이번 달은 토론회의 진행을 맡아 오고 있는 필자의 사정으로 특별히 넷째 주로 일정을 잡았다. 물론 조금 앞당겨 송년 모임이란 핑계 아닌 핑계로 소통이 이뤄진 셈이다. 시청각실이 있는 도서관 앞 음식점으로 들어서자 앞서 걸음 한 회원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맞아준다.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이럴 때는 굳이 말이 필요치 않다. 일당백이라고 소수의 인원이 가진 만남이지만 대화의 폭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디넓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주제로 꼽은 것은 바로 얼마 전 편찬한 ‘지금, 여기 나를 담다’란 책 이야기다. 책은 ‘울산 시민 10명의 자서전’으로 필자의 이야기도 실려 있기에 살짝 쑥스러운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와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보따리의 묶음을 조금씩 풀어 헤쳐가며 펼쳐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서로 눈을 맞추고 입가에 미소를 흘리며 맛있는 음식을 권하는 순간. 여기에다 보너스로 나와 자신을 알아가는 기회까지 준다니.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싶다. 그리하여 이를 좀 더 진솔하게 보여 주는 영화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서동일 감독의 《니얼굴: Please Make Me Look Pretty》(2020 한국)이다. 출연 배우로는 정은혜, 장차현실, 지로, 서은백 등이 함께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발달 장애가 있는 은혜씨의 열정적인 예술 활동을 보여준다.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인기 셀러로 캐리커쳐를 그리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 작가 은혜씨의 우직한 일상에 대해 그렸다.
이번에는, 이일하 감독의 《모어: I am More》(2022 한국)이다. 출연 배우로는 모지민, 존 카메론 미첼, 예브게니 슈테판, 모행진, 이영금, 모선화, 이종국, 한미니, 이중구, 김라온 등이 함께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트랜스젠더 댄서의 인생을 보여준다. 남모를 애환을 딛고 국내 최고 드래그 아티스트가 된 ‘모어’의 삶과 예술 이야기에 대해 그렸다.
다음으로는, 이석재 감독의 《코코순이: KOKO SunYi》(2021 한국)이다. 출연 배우로는 황병주 역사편찬위원회 편사위원 등이 함께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잊혀져 가는 슬픈 역사 속 위안부의 삶과 그 흔적을 보여준다. ‘코코순이’라는 이름과 아울러 일본군 위안부의 삶을 살다 역사의 뒤안길로 숨죽이며 세상을 떠난 한 여인에 대해 그렸다.
마지막으로는, 류종헌 감독의 《나의 살던 고향은: GOGUREO》(2016 한국)이다. 출연 배우로는 김용옥 등이 함께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고구려 역사의 뿌리를 찾아 나선 도올 김용옥 선생의 시간여행을 보여준다. 우리 민족의 뿌리인 고구려 역사 그 원류를 찾아서 중국 땅을 밟은 그의 행로에 대해 그렸다.
앞에서 소개한 영화들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진솔하게 알아야 함을 인식하게 해 준다 할 것이다. 비록 지적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인물 캐리커쳐라는 소재로 소통하는 ‘은혜 씨’. 마침내 4,000여명의 얼굴을 그려 준 그녀의 특별한 일상은 관객들로 하여금 절로 박수를 불러오게 할 만큼 감동적이다. 이는 곧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이와 아울러 발레리노가 아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트랜스젠더 모어’. 그의 삶 또한 눈물겹도록 가열하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맞는 모습에서는 슬픔보다는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삶과 사랑에 대한 편견은 저만치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일본군 위안부로의 삶과 머나먼 타국에서의 슬픈 현실을 마주했을 그녀 ‘코코순이’. 여인의 자취를 추적하며 존재를 밝혀나가는 이야기는 내내 가슴 한쪽에 살을 에는 듯한 시린 기운이 차오르며 끝내 눈물을 쏟아내게 하고야 만다.
이와 달리 고구려 역사 속 우리 민족의 정체성 발견을 위한 시간여행을 떠난 ‘도올 김용옥 선생’. 바람 불고 추웠던 만주벌판에서 느꼈을 발해, 나이 칠십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았노라 한탄하는 그의 모습에서 존경심마저 불러오게 한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떠한가. 인생은 언제나 바로 지금이다. 이에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늘 행복한 상상으로 충만한 오늘을 맞으시길 바란다.
김정수 영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