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민속칼럼] 섬배기와 솔배기
태화강 자갈밭 물길 흐르는 ‘범서 사일마을’ 세월만큼 쌓이는 자갈들로 작은 섬 이루기도 지금은 솔배기 노송만 덩그러니 흔적 사라져
입암들 상공에는 독수리 여섯 마리가 높낮이를 두고 둥근 원으로 날고 있었다. 말똥가리는 늙은 감나무 가지에 몸을 감췄지만, 눈빛은 번뜩이고 있었다. 큰부리까마귀 무리는 겨울 논에 뿌려진 독수리 먹이터에 시끄럽게 달려들고 있었다. 며칠 전 입암들을 가로질러 욱곡(旭谷) 마을을 찾았다. 이 지역은 주 1회 구영교에서 늠내까지 조류 현황 조사를 위해 찾는 구간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수석 및 분재가 이규수(李奎洙) 선생이 계시기 때문이다.
필자는 태화강 중류 지점에 섬배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정체를 깔끔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인연과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규수 선생께 부탁해 함께 기억 속의 섬배기 현장을 찾았다.
울주군 범서읍 사일(泗日)마을은 뒤로는 삼봉에서 시작된 무학산 골짜기가 마치 부챗살처럼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툭 터진 사일 들판을 가로질러 내닫는 곳에는 태화강 자갈밭 물길이 굽이쳐 흐르는 전형적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기억 속의 섬 배기와 현실의 솔 배기가 있다. 섬배기의 생성은 태화강과 대곡천의 아우래비가 만든 자갈 섬이다. 무동을 지난 늠내 물은 무학산 일봉을 향해 저돌적으로 들이받았다. 이에 질세라 관서정을 떠난 대곡천은 아쉬움에 진목(眞木)을 향해 물길을 내었다. 세월이 쌓이는 만큼 사일 솔 배기 앞 큰 거랑에는 늠내부터 용왕 소까지 자갈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일 동네 사람은 물론 망성, 욱곡, 입암, 진목 사람들은 입을 모아 섬 배기라 불렀다.
섬배기는 태화강의 섬으로 하류의 대도섬, 조개섬 등과 함께 중류의 섬으로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지역민의 이름이 섬배기이다. 표준말은 섬이 박혀 있다는 의미의 ‘섬박이’이다. 이러한 현상은 흰줄배기(흰줄박이), 점배기(점박이), 곤줄배기(곤줄박이) 등 음운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규수 선생이 가리키는 섬배기는 그의 손가락 끝이었다. 무학산 일봉부터 광천을 지나 진목으로 내닫더니, 입암들을 지나 다시 용왕소를 거쳐 다시 사일에 다다랐다. "섬배기에는 사람은 살지 않았지만, 소를 풀어 먹였으며, 사일 사람은 징검다리 건너 찾는 밭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에는 영원한 것이 없었다. 늠 내에는 입암 연지로 보내는 광천 보가 생기고, 1962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수계의 풍부한 물을 활용하기 위해 사연댐이 생겼다. 그 후 고구마 같은 지형의 섬 배기는 골재채취로 그 모습이 점차 사라져갔으며, 솔 배기는 그 현장을 지켜봤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사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한 서상용 씨는 "솔배기 인근 강바닥에는 유난히 깨끗한 자갈이 많았는데 이 자갈이 늠내다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사연댐이 생기면서 자갈을 실어 나르는 차가 솔배기까지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이 강바닥에 있는 자갈을 한두 가마니씩 차에 실어주고 용돈을 벌기도 했다."라고 기억했다. 아울러 솔 배기에 대한 회상으로 "당시 솔배기는 우리 집에서 사일 들판을 질러가면 있었는데 태화강변인 그곳에는 큰 소나무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사일에 가 보니 이 소나무가 노송인 상태로 지금도 옛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 소나무는 수령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동안 마을 사람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가지가 부러지고 기둥 일부가 찢어져 있었다. 솔배기 소나무는 우리가 목욕하고 물고기 잡을 때만 해도 푸른 기운을 띠면서 싱싱했는데 지금은 노송이 돼있었다. 더욱이 소나무 인근에 자동차길과 산책로가 생기면서 소나무가 도로 중간에 놓이는 형국이 되었다."라고 기억했다. 솔배기는 비보림으로 동네에서 돌아 나가는 물길이 보이면 마치 재산이 물에 떠내려간다는 미신으로 심은 솔이다. 솔배기 그늘 의자에 앉아 섬 배기 흔적을 상상해 봤다. 돌아오는 길에는 구태여 입암 송현(松峴)으로 돌아서 천상(川上)으로 돌아왔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