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발행 최초 불교잡지, 울산 출신들이 제작 주도했다

1920년 통도사 창간 ‘축산보림’ 울산·진주 중심 청년·계몽운동 이종천씨 편집인으로 주요 역할 이 추천 받아 주필 맡은 박병호 울산군청 근무 등 이력 민족운동 외솔 선생 글 게재 등 종합지 지향 한국 최초 추리소설 ‘혈가사’ 등 우리문학사 유의미 글 2편도 주목

2024-04-07     고은정
1920년 사찰 첫 불교잡지 <축산보림>창간호 표지 =통도사
 

 

 

 

1920년 사찰 첫 불교잡지 <축산보림>제 5호 목차=통도사
 

 

1920년대 사찰에서 만든 첫 불교잡지 '축산보림'이 울산사람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제작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축산보림'은 1920년 1월 통도사에서 창간한 사찰 잡지다. '축산'은 영축산, 보림은 '보배의 숲'이라는 의미다.

7일 김종진이 쓴 <근대 불교잡지의 문화사> 등 불교학계의 불교잡지에 대한 연구성과에 따르면,  6호까지 발간한 이 잡지는 젊은 유학파들이 편집진으로 참여했다. 이보다 앞서 '원종(圓宗)'(1910), '조선불교월보(朝鮮佛敎月報'(1912), '해동불보(海東佛報'(1913), '유심(唯心'(1918) 등 불교 잡지들이 다수 나왔지만, 사찰에서 발행한 사례는 '축산보림'이 처음이다.

식민지하 조선불교와 민족의 진로를 모색한 근대 잡지인 데다 시대상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몽지여서, 불교계에서는 후대에까지 물려줄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게 불교계의 평가다.

이 잡지의 발행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통도사 주지였던 구하 스님(1872~1965)이었고, 울산 출신 이종천(1890~1928)이 편집인으로, 박병호(1888~1937)가 주필을 담당했다.

이종천은 고성 옥천사로 출가해 구하 스님의 후원으로 1919년 일본 동양대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축산보림' 편집인 이외에도 동래고보 교사, 진명학교 교사를 지냈는데, 울산과 진주를 중심으로 청년운동과 주민계몽을 펼치며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종천의 추천으로 입사한 주필 박병호는 울산을 중심으로 청년운동과 민족계몽사업에 앞장섰다. 3·1운동 직후 울산청년회를 조직해 민족운동을 펼쳤는데, 당시 울산군청 서기, 동아일보 주재기자, 민우회 총무를 지냈다. 1923년에는 해영학원을 설립해 중등교육을 실시했고 울산 왜성 복원 반대 운동과 더불어 '전기료 인하를 위한 시민대회'를 개최해 일제에 저항했다.

이종천, 박병호 외 강성찬 기자 등 젊은 필자들로 구성된 '축산보림'은 각종 논설로부터 문예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사를 수록했다. 특히 '축산보림'이 '사찰잡지'를 넘어 '종합잡지'를 지향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선불교 교정(敎正)과 중앙불전(지금의 동국대) 교장을 지낸 석전 박한영 스님 글이 실렸으며, 한글학자인 울산 출신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의 글('오인(吾人)의 급선무(急先務)는 하(何)인가')도 게재했다. 이밖에 손정수 울산청년회 총무도 필진으로 참여했다.

불교계에서는 무엇보다 '축산보림'에 한국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두 편의 글을 실린 것을 주목한다. 하나는 최초의 국문학사로 평가받는 1922년 안확의 '조선문학사'보다 2년 앞선 이종천의 '조선문학사개론'으로, 학계에서는 국문학사 연구의 기원을 앞당길 수 있는 연구로 보고 있다.

또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로 평가받는 박병호의 '혈가사(血袈裟)'가 게재됐다. '혈가사'는 경성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히는 탐정들의 활약을 통해 식민지 상황을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1926년 단행본으로 나왔지만, 발간 직후 일제 당국에 의해 압수됐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김성연 연구초빙교수는지방 사찰에서 발행한 첫 잡지인데다, 식민지하 조선불교와 민족의 진로를 모색한 근대 잡지여서 불교계에서는 가치를 크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통도사는 사보(寺報)의 제호를 '등불', '보궁', '통도'에 이어, 올해 1월호부터 '축산보림'으로 변경해 발간하고 있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