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삼열의 풍수단상] 삼성 이병철 회장의 생가 (상)

국내 대기업 창업주 배출 ‘의령 솥바위’ 전설 흐르는 물 가운데 바위 우뚝…생기 머물게 해 유통업 시작 승승장구 명당기운 오롯이 받아

2024-04-24     양삼열 동국대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원 교수
양삼열 동국대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원 교수

 경남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에 가면 삼성그룹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1910~1987) 회장의 생가가 있다. 이 집은 대지면적 1,927㎡(578평)의 부지에 1851년 회장의 조부 이홍철이 지은 집이다. 이 마을은 그 당시 경주이씨 집성촌으로 호암은 17세에 결혼해 생가 바로 앞집에서 신혼생활을 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부자마을이 많고 인심까지 넉넉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소문난 의령에서는 부자가 많이 나는 이유를 남강에 있는 솥바위(정암·鼎巖)때문이라 생각해 이 지방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물처럼 여긴다. 

 솥은 예로부터 곡식 즉 재물을 뜻하고 솥바위 아래 3개의 다리는 3정승을 뜻해 사방 20리 안에서 정승에 버금가는 3명의 큰 부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이 이 지방에 전해져 왔다. 

 전설에 따르면, 한 도사가 이 솥바위를 한 참 바라본 뒤 주변 20리 인근에서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말이 전해진 뒤 솥바위 인근 마을에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된 창업주가 3명 태어났다.

 이 전설에 거론된 3명의 창업주는 모두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역경 속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낸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지세나 형세가 특출한 부분도 있지만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기 위한 이야기의 전승 효과라고 할 수도 있다.

 이병철 회장이 태어나 성장한 의령 중교리는 남강의 솥바위에서 약 8㎞ 떨어진 곳이고,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회장의 집은 7㎞,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 회장은 5㎞ 정도 떨어진 곳이다. 과연 이들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전설처럼 삼성, 엘지, 효성그룹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룬 대표적 기업으로 남강 가운데 자리 잡은 솥바위의 전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 풍수에서도 흐르는 물 가운데 흙무더기나 큰 바위가 있어 물길을 막아 유속을 늦춰주면 혈장에 생기를 머무르게 한다해 그 안쪽을 대 길지로 보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할아버지 때부터 의령에서 3,000석 이상 가는 부잣집으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청소년기에는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서울로 올라와 종로의 중동학교를 졸업했으며 이어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합격했으나 건강 때문에 중퇴하고 귀국한다. 

 그는 고향에서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 상경해 진로를 탐색하던 중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부친에게 지원받은 쌀 300석분의 토지를 기반으로 사업을 일으켜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창업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열어 유통업을 시작했고 이어 운수업에도 진출했으며, 1951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해 고철, 설탕, 비료 등을 수입과 수출을 하면서 승승장구해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삼성그룹에 이르렀다.

 삼성그룹이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부인 박두을 여사의 내조도 한몫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두을 여사는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으로 대구시 달성군 묘골마을의 만석꾼 지기의 부잣집 딸이었다. 

 시댁도 의령고을의 내로라하는 부자였지만 그의 아들 이맹희는, 어머니께서 늘 "시집이라고 와보니 집도 좁고 그렇게 가난해 보일 수가 없더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그녀는 십오륙세 되던 어느 날 시주하러 온 스님이 그의 관상을 보고 "처녀는 앞으로 왕비가 아니면 일국의 왕 못지않은 거부가 될 사람을 만나 그 안방마님이 되겠소"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스님의 말씀대로 대한민국 제일의 거부 안방마님이 됐고 94세까지의 천수를 누리면서 그의 타고난 재물복과 더불어 시종일관 훌륭한 내조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삼성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양삼열 동국대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