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단위로 바뀌는 자세... 긴박한 스케치 소리만이
[울산 공개 누드 크로키 시연회 가보니] 화가 · 동호회 회원 등 40여명 참석 남녀 전문모델 초청 2시간여 진행 지방서 접하기 힘든 장르 값진 경험 오늘까지 울산문예회관 작품 전시
모델들이 마치 다양한 표정과 함께 연기나 무용하듯 다양한 자세를 취하자, 화가들의 손놀림은 빨라졌다.
울산에서 10여 년 만에 공개 누드 크로키 시연회가 열렸다.
지난 26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카페 '바벨드림' 별관에서 진행된 '공개 누드 크로키 시연회'는 서양화가 권영태와 '바벨드림' 김명규 대표가 누드 작업에 대한 쉬운 접근과 바른 이해를 위해 마련했다.
울산지역 미술협회 및 틈크로키 회원 40여 명이 참한 시연회는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창문에 A4용지를 붙여 가리고 문을 걸어 잠근 뒤 2시간가량 진행됐다.
참여 화가들은 카페 내부와 테라스 주위에 이젤을 세우거나 바닥에 자리를 잡는 등 동그랗게 모여 크로키는 4B연필, 파스텔, 붓펜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그렸다.
시연회 앞서 모델 예술모델협동조합 소속 예술모델 이정민, 오밀비 씨가 인사를 나누고 진행 순서를 설명했고, 권영태 서양화가는 "바뀌는 동작을 그리는 데 급급해하기보다는 음악에 맞춰 선과 터치로 인체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보세요"라고 조언했다.
크로키가 시작되고 모델이 가운을 벗고 음악에 맞춰 자세를 취하자, 회원들은 도화지에 바쁘게 모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준비해 온 음악과 타이머를 두고 남, 녀 모델이 내외부를 번갈아 가며 20분 동안 3분씩 여러 자세를 선보였고, 그 후 듀엣으로 7분씩 4개의 자세를 취했다.
회원들은 저마다 스타일 대로 동작을 크게 크게 그리기도 하고 모델의 표정이나 손가락까지 세심하게 그려나갔다. 한 번은 연필로 그렸다가 다음 동작에는 파스텔로 음영을 넣으며 그리기도 했고, 모델의 자세에 따라 색을 바꿔가며 데생했다.
모델 오밀비 씨는 "즉흥적으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음악을 고르고 이야기를 만들어 연출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라며 "자세를 잡고 있을 때는 단지 멈춰 있는 게 아니라 호흡을 잡으며 음악과 현장 분위기를 느낀다"고 알려줬다.
쉬는 시간에는 모델들과 회원들이 크로키를 함께 보며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시연회에 참여한 신윤아 씨는 "평소 모델, 보디빌더 등을 사진으로 연습만 해보다가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리니 확실히 크로키에 생동감이 있다"며 "누드모델을 보는 게 부끄러울 것 같았는데 어떤 자세를 보여줄지 몰라 긴장됐고, 3분이 3초처럼 흘러갔다"고 말했다.
시연회가 마무리되자 모델 이정민 씨는 "한 번 더 듀엣으로 음악에 맞춰 1분마다 자세를 바꿔볼 테니 움직임을 빠르게 잡아보시길 바란다"며 제안했다.
1분마다 두 모델이 자세를 바꾸니 처음에는 당황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이내 도화지 넘어가는 소리만 나며 회원들은 크로키 그리기에 빠르게 집중했다.
2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된 시연회가 끝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마무리했다.
행사를 마련한 권영태 서양화가는 "누드 크로키는 예상치 못한 인간의 육체를 조각하거나 묘사하며, 복잡한 움직임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의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며 "아직 누드 크로키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고, 전문모델이 지방에는 드물어 하기 힘든 경험인데 값진 시간이었고, 앞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작업한 작품들은 울산문화예술회관 제2, 3전시장 제 17회 좋은사람들전에 29일까지 함께 전시된다.
정수진 기자 ssjin3030@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