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오영수 신인문학상 수상작품(2024)] 모네의 정원 -이미경

2024-05-16     고은정 기자

 

수현은 연못을 등지고 열두 개의 이젤부터 세웠다. 새로운 위치였기에 새 캔버스들을 이젤 위에 놓았다. 팔레트와 물감들은 이미 가져다 놓았다. 물감과 캔버스, 햇빛과 연못 그리고 수현 자신……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관람객들은 정원 개장 전부터 도착해 끝이 보이지 않게 줄을 서 있었다. 미술사에 큰 획을 그으며 살아서도 죽은 후에도 명성을 날린 화가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며 작업했던 이 정원은 파리 외곽 지베르니에 있다. 화가의 그림에도 종종 등장한 이곳은 화가가 죽고 한동안 방치됐다가 화가의 생전 그대로 복원하며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화가의 그림 속 풍경에 실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해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려오고 있으며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와 있던 그 자가 일렬로 세워놓은 이젤들 앞을 지나 연못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로 갔다. 수현과 이젤들 앞을 지날 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더니 무릎―이라고 생각됐다―을 굽히고 자리를 잡을 땐 철커덩, 그 비슷한 소리가 났다. 메탈 소재에 눈, 코, 입, 손가락 같은 디테일은 일체 없이 이동을 위한 다리, 작업을 위한 손과 팔 그리고 관절 등 기능만 남긴 효율적인 모습이었다. 곧 수현도 이젤들 앞에 가 섰다. 결과적으로 연못을 바라보는 그 자와 숲을 바라보는 수현은 서로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셈이었다. 줄을 지어 걸어가던 관람객들이 앞 다퉈 행렬에서 빠져나와 순식간에 둘의 주변을 감쌌다. 겹겹이 둘러서서 둘을 주시하는 관람객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은 이제 익숙해 수현은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 자도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Monet′. 그것이 그 자의 이름이었다. 모네지만 모네가 아니다, 라고 수현은 이름의 의미를 추측했다. 혹은 모네가 아니지만 모네다, 일 수도 있다. 그 자는 인간도 아니었다. 인간이 아니라 제4세대 AC(Artificial Creativity)였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뇌의 완전한 이해는 AC에도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3D 스캐너로 유명 화가의 작품들을 스캔해 화풍만이 아니라 물감이 만들어낸 두께와 질감까지 데이터화 한 것은 이전과 비슷했다. AI와 구분지어 AC로 부르기 시작한 제3세대 AC는 여기서 한발 나갔다. 화가의 작품들만 스캔한 것이 아니라 아예 화가의 뇌 속으로 들어갔다. 창작자의 뇌 속에서 창작과정 중 일어나는 수백억 신경회로들의 패턴을 데이터화 해 습득하고 이를 개별 작가 작품들의 패턴과 조합했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결과를 3D 프린터로 출력했다. 예술은 창작자의 정신에서 나온다며 줄곧 AC 예술을 무시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든 것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 피카소, 렘브란트, 달리, 고흐…… 이미 죽고 없는 거장의 '신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인의 이전 작품들과도, 동시대의 작품들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었다. 모두 데이터의 힘이었다. 부족한 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4세대 AC는 그 점이 문제가 되어 시작되었다. 부족함이 부족하다는 것. 피카소가 자신의 최고 작품들만 일률적으로 찍어낸 것 같다고 할까. 결국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었으니 끝도 인간에게 맡기자는 의견이 등장했다. 시작처럼 끝, 출력도 인간의 터치, 인간의 '손맛'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다다른 것이 지금의 제4세대 AC다. 3D 프린터가 아니라 인간이 출력을 담당하는 인간과 AC의 협업 예술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주 창작자가 어느 쪽인가 하는 논란이 잠시 일긴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인공(artificial)이란 존재 자체가 시작부터 이미 예술을 품고 있었다고, 자조가 아니라 진심으로 주장하는 이들도 생겼다. 새로운 예술의 본질인 넓어진 지평 자체가 바로 그들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아예 인간보다 AC 예술이 낫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등장했는데 작품에 누를 끼치는 예술가의 인성이나 도덕성 따위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떤 이유로든 이제 AC, 그리고 AC와 인간의 협업은 거스를 수 없는 예술의 한 양태가 되었다.

수현은 수련 씨앗과도 같은 칩을 오른쪽 관자놀이에 부착한 후 다시 모자를 썼다. 밀짚으로 만든 모자였다. 화가도 야외에서 작업할 때면 즐겨 썼다고 했다. 화가처럼 보이기 위해 쓴 것은 아니다. 그래봤자 사람들은 화가는 엉뚱하게 숲을 보고 있는 자신이 아니라 정확히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 그 자라는 걸 모두 알고 있을 테니. 수현은 조수(助手), 말 그대로 그 자를 도와주는 '손'에 불과한 존재였다. AC의 조수인 수현에게 필요한 건 창의성이나 재능이 아니었다. 그림 그리기를 꽤 좋아했지만 자신의 그것이 재능이 아니라 재주에 그칠 뿐임을 일찌감치 예감한 수현은 미대에 가려고도 않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화방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신장개업이나 이사 선물로 좋을 풍경화들을 밤낮 없이 그렸다. 이사철 등 벌이가 좋을 땐 일주일에 100호 사이즈 풍경화 일곱 개를 그린 적도 있었다. 딱 두어 번, 거절할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가 대가들의 풍경화를 모사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발각되었고 그때 감옥 대신 이곳을 선택했다. 

칩을 부착하자 눈앞의 너도밤나무 숲이 사라지고 그 자가 바라보고 있는 연못이 수현의 눈앞에 펼쳐졌다. 새벽에 노를 저어 다니며 자신이 직접 위치를 배치한 수련과 그때 본 꽃망울들이 보였다. 꽃망울은 당장이라도 벌어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곧이어 수현의 눈앞에 펼쳐진 수면은 수현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앞으로도 볼 수 없을 색채와 형태들로 쪼개지고 변형되었다. 그 자의 시각이면서 본래 그 자인 화가의 시각일 터였다. 수현의 시각은 아니었다. 수현은 자신의 맨눈으론 도저히 볼 수 없는 대로 연못을 보며 팔레트에 물감을 짰다.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 자도, 당연히 화가의 패턴도 아니었다. 직접 캔버스에 몇 번이고 물감을 덧칠해, 짧고 빠르게, 겹겹의 색채로 빛의 산란을 표현하는 것이 화가의 붓질 패턴이었다. 

그 자와 연결된 수련 씨앗 칩이 수현의 시신경뿐 아니라 팔과 손도 빠르게 장악하며 점점 수현은, 그 자는 아니지만 그 자의 손이 되어갔다. 자신이었지만 자신이 아니게 되어갔다. 

*

수면은 희뿌연 물안개에 싸여 있었다. 견고해 보여도 막상 닿으면 저항 없이 흩어지는 하얀 장막을 흩뜨리며 수현이 탄 나룻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물안개 아래 포복해 있던 물이 수현이 젓는 노 끝에 걸려 자꾸 뒤로 밀려갔다. 종종 연초록의 실핏줄 뭉치 같은 수초가 노 끝에 걸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수현은 그것을 건져 수통에 모았다. 

수현은 다시 똑바로 서서 두 손으로 노를 잡고 물을 밀어내는 데 집중했다. 등나무로 뒤덮인 초록의 나무다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꽃이 진 지 오래인데도 다가갈수록 공기에 등꽃 냄새가 묻어오는 것 같았다. 마침내 머리 위로 다가온 다리를 지날 땐 조금 전 수초를 건질 때처럼 허리를 숙이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배 바닥에 등이 닿을 만큼 누운 자세로 계속 노를 저었다. 다리를 지나 몸을 일으키자 곧 수련들이 보였다. 수련들은 물안개에 싸인 채 무리를 지어 혹은 홀로 떠 있었다. 수현은 노를 재게 저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물안개 속에 감춰져 있던 꽃망울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다. 붙어서 나란히 피어 있는 두 꽃망울은 채 벌어지지 않은 채였다. 내일 아침 수현이 한창 작업을 할 즈음이면 멋지게 만개해 있을 것이다. 만개한다면 두 송이 모두 눈이 시리도록 하얀 빛이리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수련과 연꽃도 구분 못 할 정도로 수현은 식물에 무지했다. 수련이 물 위의 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밤이면 꽃잎을 오므리고 잠든다 해서 수련(睡蓮)이라는 것도 전엔 알지 못했다. 부랴부랴 수련 재배법을 비롯하여 원예와 식물학 책들까지 구해 탐독했다. 적당한 식물을 발견하면 세계 어디서라도 씨앗과 구근을 구해와 본관 쪽 화단과 연못 주변에 심었다. 연못에는 다른 수생 식물도 몇 번 시도했으나 흰 수련만큼 이곳에 어울리는 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화가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제 수현은 꽃망울만 보아도 개화 후 꽃의 크기, 수명―보통 3일이지만 그보다 길거나 짧게 피는 것도 있다―, 잘하면 향기의 강도까지 가늠할 수 있었다. 

수련들은 모두 심을 때 의도했던 것처럼 연못에 넓게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심을 수도 있었지만 수현이 선호한 것은 불규칙한 쪽이었다. 그 편이 자연스러워 보였으며, 바로 그 이유로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화가 역시 그러했으리라 수현은 짐작했다. 그 자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물안개가 걷히고 풍광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눈길 닿는 어디나 초록빛이었지만 그 안에서 모두 조금씩 달랐다. 수면에 늘어진 수양버들은 다치기 쉬워 보이는 연초록, 등나무로 덮인 일본식 나무다리는 쨍한 진초록, 배 밑에서 찰랑이는 물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이 두터운 초록, 그 초록의 수면에 거울인 듯 비춰진 이 모든 초록들까지…… 화가가 몰두한 건 아마 수련보다는 수면이었을 테고 정원사인 수현이 관리하는 것도 그래서 수련보다 수면이다. 수현은 매일 거울을 닦듯 연못의 수면을 관리했다. 뜰채로 수초뿐 아니라 물이끼도 건져냈는데 그래야 수면이 흠 없이 빛을 반사해낼 수 있었다. 황변의 기미를 보이는 잎들과 꽃이 진 꽃대도 발견하는 대로 가위로 잘라냈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 썩어 투명해야 할 수면을 탁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수련들이 너무 조밀하게 피어 수면을 가리면 솎아냈고 반대로 물 밖의 풍경만 지루하게 수면에 비칠 때에는 일부러 멀리서 하얗게 꽃 핀 수련을 가져와 지루한 풍경에 악센트를 찍었다. 하늘이 비치면 구름이 그 역할을 대신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치 그림의 구도를 잡듯 수현은 수면에 비친 풍경과 수면에 뜬 수련의 위치를 신중하게 배치했다. 간간이 바람도 없이 수면이 파문을 만들었다. 

*

달팽이였다. 느려 터진 주제에 잘도 제 길을 가고 있는 그것은. 정원 일을 마치고 본관의 사육장 쪽으로 가던 지하 터널에서였다. 수풀은커녕 물기도 거의 없는 그곳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본관에서 연못 정원으로 가기 위해 관람객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걸어서 지나가는 이 좁고 긴 터널에서 어떻게 밟히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그게 가장 놀라웠다. 

잠시 내려다보던 수현은 아예 쭈그려 앉았다. 달팽이는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연자줏빛 나선을 힘겹게 업고서 재색의 시멘트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시간을 삼키며. 잘 들여다봐야 보이는 앙증맞은 두 뿔은 안테나처럼도 보였다. 향하는 목적지는 알 수 없었는데 본관의 화단 아니면 연못 쪽 어디라도 큰일이었다. 이 속도라면 도착은커녕 내일도 새벽부터 들이닥칠 관람객들의 발길에 언제 부서지는지도 모르게 부서지고 말 것이었다. 두 번의 요행은 없다. 

수현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달팽이의 연자줏빛 집―등 같다고도 생각했다―을 잡아 들어올렸다. 집에서 몸이 떨어지지 않을까 다른 손으로 그 밑을 받쳤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은 집 속으로 더 꼭 숨어버렸다. 덩그러니 연자줏빛 나선만 남은 그것을 손바닥 위에 놓았다. 무게도 감촉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거기 있는 달팽이가 놀라지 않도록 수현은 아주 천천히 일어섰다. 조금 전 자기 주변의 시간을 삼키며 멈춘 것 같지만 분명히 나아가던 바로 이 달팽이처럼.

터널 양쪽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본관 쪽으로 향하는 출입구와 방금 자신이 온 연못 쪽이었다. 저녁의 사위어가는 빛이라 환하지도, 수현이 서 있는 곳까지 와 닿지도 않았다. 본관 쪽 출입구가 조금 더 가까웠지만 수현은 연못 쪽으로 몸을 돌렸다. 본관의 화단은 가끔 사육장에서 풀어놓는 닭들이 무차별한 부리로 온통 쪼아버릴까 염려가 되었다. 한 손으로도 충분한 그것을 두 손으로 받친 채 수현은 연못의 출입구 쪽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걸음을 떼었다. 

*

아버지의 유품은 아버지의 부고보다 먼저 수현에게 도착했다. 연못 가장자리 개양귀비들 아래 달팽이를 놓아두고 조금 늦게 숙소로 돌아왔을 때였다. 파손방지 포장이 되어 현관문에 기대어져 있는 소포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3D 팩스가 보편화된 지 오래인데도 아버지는 굳이 예전 방식을 택해 자신을 수고롭게 한 것이다. 

수현은 두 팔을 한껏 벌려야 겨우 잡을 수 있는 소포를 힘겹게 들어 현관문 안에 들여만 놓고 평소대로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샤워를 하고 샤워 후에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렌지에서 막 꺼낸 저녁을 먹었다. 살이 좀 붙는 것 같아 탄수화물을 줄이고 고기 위주로 준비한 식단이었다. 평소였다면 한 시간쯤 더 TV를 보았을 텐데 오늘은 화장실에 다녀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보낸 소포는 현관문 앞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동생한테 전화가 걸려온 건 잠이 들고 두어 시간 지났을 때였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부고도 비슷한 시간이었다. 그땐 자신이 병원에 있고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건 동생이었지만. 

잠들기 전 TV로 보았던 모니터에 동생의 얼굴이 떴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게 지난봄이었으니 거의 5개월 만이었다. 고국에 있을 때도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던 동생은 그동안 조금 살이 빠진 것 같았다. 두 살 터울의 자매를 쌍둥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둘은 닮았는데 조금 여윈 자신처럼 보이는 동생의 얼굴은 왠지 침울해 보였다. 수현과 눈이 마주치고도 한동안 말을 않고 쳐다만 보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빠가 가셨어.

가시다니 어딜? 수현은 하마터면 그렇게 되물을 뻔했다. 폐암이라고 했다. 싫다고 했으나 사실 두려워한 아버지는 몸 안에 바이오센서 삽입을 거부했고 결국 말기가 되도록 자신의 병을 알아채지 못했다. 진단 이후에도 폐와 주변 장기만 교체하면 충분히 삶을 연장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전에 가고 말았다. 동생이 이제야 아버지의 병을 알린 건 수현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이 그만큼 갑작스러웠다고 했다. 수현에게 알릴 시기를 가늠하고 있을 때 조금도 지체하기 싫다는 듯 그냥 가버리셨다고. 

자살인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이제는 아버지의 유품이 된 소포를 쳐다보았다. 아까 놓아둔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발송 날짜를 확인했다. 진단을 받았다고 한 그날 오후의 소인이 찍혀 있었다. 한사코 입원 날짜를 하루만 미뤘다더니 이것이 이유였던 모양이다. 입원 날짜까지 미루며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내려 한 건 무엇일까? 자신이 포장도 풀지 않고 내버려뒀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서걱거렸다. 

오픈 버튼을 눌렀다. 내용물은 스티로폼으로 한 번 더 싸여 있었다. 파손방지 포장으로 충분한데도 안심하지 못한 아버지의 손길이 분명했다. 수현은 손에 닿는 대로 스티로폼을 뜯었다. 뜯겨진 스티로폼 사이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페인트로 그린 낡은 영화 간판이었다. 

수현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처음은 영화 간판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컴퓨터 인쇄 사진이 나온 후 그림 간판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수작업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몇몇 사람들 덕분에, 무엇보다 당신의 고집 때문에 아버지는 레트로 영화관 등에서 근근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잠깐이었고 홀로그램 광고가 등장하면서 아버지도, 컴퓨터 인쇄도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 그 후부터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수현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대부분 술에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해 변해버린 세상을 탓하고 버림받은 자신을 미워했다. 

아버지가 보낸 건 초등학생이었던 수현이 영화관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던 날, 두 사람이 함께 그린 간판이었다. 방학에 맞추어 개봉하는 어린이용 영화를 위한 것이었으며, 어린 수현도 손꼽아 개봉을 기다렸다. 그때 아버지를 찾아간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수현과 또래였던 주인공이 AI 로봇을 조종해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인을 물리치고 평화를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로봇과 외계인이라는 클리셰 두 개를 말도 안 되게 엮은 스토리였지만 어린 수현은 꽤 재밌게 봤다. 영화 속 미래가 왔지만 지구는 외계인의 침략을 받지도, AI 로봇의 도움을 받은 자신이 지구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AC의 손이 되어 있을 뿐이다, 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수현은 또 떠올렸다. 어린 자신에게는 다소 큰 붓을 페인트 통에 담갔다 꺼내 외계인의 미끈한 머리통을 칠하며 아버지에게 물었었다. 

아빠가 화가야? 

붓에 묻힌 것이 물감이 아니라 페인트라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수현도 쳐다보지 않은 채 붓질을 계속했다. 아버지의 모습 역시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질 무렵 마침내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그러게 뭘까 아빠는……. 

자신의 재주가 재능이 되지 못함을 예감한 게 아마 그때라고, 그때 목격한 아버지의 쓸쓸한 웃음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건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아버지는 페인트로 간판 그리는 일을 접고 페인트로 벽과 건물을 칠하는 도장공이 되어 몇 년을 보냈다. 그림을 그리던 페인트로 칠만 하기에는 괴로웠던지 아버지는 도장공도 관두고 택시 운전과 경비 일을 차례로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무인차와 무인 방범시스템에 밀려 모두 해고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술만 마시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시작했던 일들이 하나같이 오래 가지 못했지만 이것만은 수현이 이곳으로 오는 날까지 계속됐다.

옆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잠이 깨어 화장실에 갈 때면 어김없이 들을 수 있는 그 자의 기척이었다. 관람객들을 위한 쇼에 불과했던 낮의 협업과 달리 비로소 그 자만의 진짜 작업을 시작하는 소리였다. 햇빛도, 수련도, 수면조차 보지 않은 채로.

 

 

*

당신은 가치가 있습니까? 

네.

당신은 가치가 있어 존재합니까? 

아니오. 

당신은 존재하므로 가치가 있습니까? 

네.

수현이 대답을 하면 맞은편의 AI가 곧바로 또 질문을 던졌다. 지베르니의 그 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외양의 의료용 AI였다. 인간의 모습과 닮을수록 오히려 인간들이 느끼는 거부감, 심지어 공포가 크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AI, AC 등을 인간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노력은 예전에 사라졌다. 이제 AI, AC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저 자신들과 닮았을 뿐이다. 

질문들은 일종의 테스트였다. 수현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의 호출을 받았다. 수현의 신체와 정신 활동 모두를 모니터링 하는 바이오센서가 이상을 감지했다고 했다. 자살 징후 적색 알람이 떴다고. 노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자살은 시스템이 가장 강력히 대응하는 이슈 중 하나였다. 시도만으로 몇 달, 때론 몇 년씩 보호 감찰 대상이 되어 중앙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다. 자살의 원인과 징후는 다양해도 치료는 하나였다. 십 수 년 전 개발되어 뇌와 관련된 각종 신경계 질병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뇌 전기자극기 아타락시아, 일명 아타의 지속적 시술이 바로 그것이었다. 

뇌의 비밀이 거의 밝혀지면서 노력하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이제 노력하면 뇌를 바꿀 수 있다는 말로 대체되었다. 아마 손금 같은 모양이라고 대부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대전제는 예전과 똑같았다. 마음을 바꾸면 얼마든지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에서 마음을 바꾸면 얼마든지 당신의 뇌를 바꿀 수 있습니다! 로 달라졌을 뿐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마음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마음을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그래서 죽어도 뇌가 달라지지 않는 이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아타다.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함으로써 생각이나 감정에 작용하는 신경회로들을 부추기거나 억제하고 관련 신경전달물질들을 보충하거나 감소시킴으로써 아타는 뇌 활동의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렇게 되면 기분이나 마음, 결국 사람까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은 기분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좋은 신경전달물질은 기분을 좋게 만들고 기분이 좋아지면 그 결과 또다시 좋은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한다. 역시 대부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들은 돈과 같은 모양이라고, 많은 자가 그 많음으로 더 많은 걸 갖게 되는 것처럼, 편리한 대로 생각했다. 

제 효율성이 떨어졌습니까?

이번엔 수현이 물었다. 바이오센서가 무엇 때문에 이상을 감지했는지 자신도 알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반대로 잠이 쏟아져 새벽 정원 일은 물론 그 자와의 협업도 예전처럼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한 번에 예닐곱 개의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던 것이 이제는 한 작품도 제대로 작업하기가 힘들었다. 몸이 말할 수 없이 고되면서 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들이 자꾸 밀려들었다. 정원 일에건 그 자와의 협업에건 좋을 리 없었다. 

효율성은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이 문제일 뿐이라고 AI가 덧붙였다. 역시 매뉴얼대로였다. '인간'이 '당신'으로 살짝 바뀌었을 뿐 지난번과 유사했다. 매뉴얼이 느껴진다는 지난 버전에 대한 평가를 반영했는지 사용하는 어휘가 좀 더 개별적이고 군더더기 표현까지 추가되었지만 역시 매뉴얼대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긴 매뉴얼이 느껴지기는 과거 인간 의사나 상담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쓸모가 있는데도 가치가 없습니까? 

나는, 쓸모가 없는데도 가치가 있습니까?  

나는, 쓸모가 없는데도 존재해야 합니까?

........ 살아야 합니까?

되묻고 싶은 질문들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수현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얼굴이 없어 표정도 없는 AI는 아타 시술을 받고 시내에 나가 좋아하는 그림이라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나마 매뉴얼이 덜 느껴지는 제안이었고 그래서 수현은 그러기로 했다. 

*

샹젤리제 거리에서 다리 하나면 건너면 그 자의 신작 전시장이었다. 도착해서 수현이 먼저 본 건 입구에서 시위 중인 젊은 아티스트 무리였다. "유령의 부활을 멈춰라!" "예술을 인간에게, 미술관을 우리에게" 등의 구식 피켓을 든 그들은 미술관으로 들어가려는 관람객들에게 역시 옛날 방식의 전단지를 부지런히 나눠주고 있었다. 수현도 무심코 한 장을 받아 살피니 피켓에 적힌 문구와 비슷한 말들이 적혀 있었다. 수현은 전단지를 접어 가방에 넣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자의 신작 발표는 지난 가을에 이어 11개월 만이었다. 신작 발표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화가의 말년 걸작들을 대부분 소장 중인 이 미술관은 처음엔 그 자의 존재를 불쾌해했다. 그러나 결국 거장을 부활시킨 세계적 IT 기업 G사에 엄청난 돈을 내고 그 자의 신작을 사들여 지금처럼 화가의 탄생 200주년 이벤트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천대받던 길거리 미술이 나중엔 미술관에 초청되어 전시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 자의 절묘한 포지션도 한몫 했다. Monet′는 단지 Monet′일 뿐 단 한번이라도 본래의 화가인 척하지도, 화가와 별개인 척하지도 않았다. 화가가 있어서만이 자신이 가능하고, 자신의 존재는 화가를 더 빛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 자는 잘 알고 있었다. 단적으로 Monet′의 작품들은 결코 화가의 작품가를 호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류작이나 이름난 현존 작가들의 그것보다는 월등히 비쌌다. 

첫 번째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넓은 원형의 전시관에 지베르니 정원의 연못이 한눈에 펼쳐졌다. 몇 개의 대형 캔버스를 액자 없이, 간격도 없이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둥글게 붙여놓은 것은 모두 화가의 뜻이었다. 그리고 이 모두보다 화가가 중요시한 건 바로 조명이었다. 자신이 본 그대로 관람객도 보길 원했던 화가는 빛도 자신이 본 바로 그 빛을 원했다. 화가의 뜻대로 인공조명이 아니라 천장에서 자연광이 들어오게 설계된 전시장은 실제 지베르니의 정원처럼 고요하고 은은했다. 관람객들의 작은 속삭임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곳에 몰래 아버지가 남긴 영화 간판을 걸어두고 사라질까? 수현은 잠시 실없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전시관에는 여러 작품들이 개별 액자에 담겨 있었다. 대부분 수련을 그린 작품들이었다. 수현은 그 중 하나로 다가갔다. 몇 주 전 저녁에 노를 저으며 직접 목격한 꽃망울을 그 자의 눈과 손이 되어 그린 것이었다. 한동안 그림을 들여다보다 옆의 작품 안내판으로 눈을 돌렸다. BEFORE CLIMAX. 그것이 작품의 제목이었다. 누가 붙였을까? 자신이라도 그렇게 붙였을 것 같았다. 제목 아래 작가의 이름도 있었다. ARTIST Monet′. 자신의 이름은 없었다. 당연했다. 앤디 워홀이 그의 캠벨 수프를 찍어내던 프레스 기 이름까지 사람들이 알 필요는 없으니까. 

갑자기 수현은 지베르니 연못에 떠 있는 수련, 그 흰 꽃망울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림 속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다시 한번 그것을 보고 싶었다. 둘러볼 전시관들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수현은 서둘러 미술관을 나왔다. 시위는 그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

꽃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있을 리 없었다. 길어야 3일, 그것이 핀 수련 꽃의 수명이다. 그 후 피어났을 다른 꽃들도 해가 졌으므로 꼭꼭 꽃잎을 닫고 있었다. 낮에처럼 밤에도 자연광만을 원한 화가의 뜻에 따라 연못과 주변엔 가로등 하나 없이 캄캄했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시야에 보이는 건 거의 없었다. 노를 저어 가르고 나아가는 배 밑의 수면만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물소리뿐 사위는 고요했다. 새들은 풀벌레보다 늦게 일어나 일찍 잠들곤 했는데 지금은 잠들었는지 조용했다. 풀벌레 소리는 노 끝에 걸리는 물소리에 묻힐 만큼 작고 약했지만 잠시 노를 멈추고 귀 기울이면 한 번도 멈춘 적 없듯이 또다시 들려왔다. 희미하지만 비릿한 물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새들이 잠들자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풀벌레들처럼 보이는 것이 거의 없자 나머지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한 덩어리처럼 들려오는 소리들 가운데 자신이 알지도 모를 풀벌레 소리를 헤아리며 수현은 배 밑을 내려다보았다. 수면은 초록빛도, 푸른색도 아니고 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자세히 보면 연못 가장자리 수풀의 그림자가 검은 수면 위에 더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밤보다 검은 수면, 수면보다 더 검은 그림자…… 검음은 똑같지 않았다.

마침내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빛의 자락 하나가 가늘게 수면 위로 드리워졌다. 수현은 노를 저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달에서부터 드리워진 빛 자락은 계속 흔들렸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이대로 빛 자락을 따라 멈추지 않고 저어가면 달에 닿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현은 노 젓는 걸 멈추고 배 아래로 팔을 뻗어 흔들리는 빛에 손을 대보았다. 닿는 순간은 미지근했지만 금세 차가움이 느껴졌다. 손을 조금 젓자 아무런 저항 없이 빛은 물과 섞였다. 이번엔 물 쪽으로 팔을 뻗어 물과 빛을 섞었다. 검게만 보이던 물색은 달빛과 섞이자 남색 같기도, 더 짙은 검정 같기도, 심지어 낮에처럼 초록빛으로도 보였다. 신기했다. 화가의 그림에서 본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럼 자신을 섞어보면 어떨까? 문득 든 생각이었는데 단번에 수현을 사로잡았다. 

수현은 노를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배가 크지 않아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빠질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빛 덕분에 좀 전보다 많은 걸 볼 수 있었다. 밤이라 수면과 잘 구분되지 않지만 분명 거기 떠 있는 수련들, 더 이상 검은 수풀이 아니라 바람이 불 때마다 인사하듯 깊이 허리를 숙이는 수양버들, 낮에처럼 뚜렷이 구별되진 않지만 색색의 크고 작은 화초들…… 이것은 자신이 본 것이다. 풀벌레 소리는 언제나와 똑같았다. 비릿하던 물 냄새도 무뎌지지 않고 오히려 또렷해지고 있었다. 오랜 후에도 또렷하게 이 모든 걸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현은 연못의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속이 보이지 않는 수면은 어떤 것이 들어와도 받아들이며 흔들림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무던함이랄까 담담함이 수현은 꽤 마음에 들었다. 무정하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수현은 전자였다. 자신도 그와 같아질 수 있다면. 수현은 잠깐 그런 생각을 하고는 그새 검게 돌아간 물빛에 머리부터 조금씩 담갔다. 곧 물과 달빛과 자신이 섞여 하나가 될 것이다. 하나가 되어 새로운 색이 되고 풍경이 될 것이다. 그걸 자신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

뒤늦게 정원사의 죽음을 발견한 시스템은 당황했다. 그의 바이오센서에서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데이터에 기록된 그 어떤 자살의 징후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격동적이고 열락에 가까운 감정이 감지됐을 뿐이다. 이전 데이터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패턴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의견이 분분했다. 아타의 부작용이라는 측과 반대로 아타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어쨌든 시스템은 정원사의 사례를 새로운 패턴으로 데이터에 등록하고 좀 더 심도 있는 연구를 기약했다. 

AC의 조수였던 정원사의 죽음은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조용히 화제가 됐다. 젊은 아티스트인 여자도 그 중 하나였다. 여자는 정원사의 손길을 보기 위해, AC의 신작이 아니라, 미술관을 찾았다. 며칠 전까지 자신과 동료들이 시위를 하던 그 미술관이었다. 연작들을 하나로 파노라마처럼 둥글게 붙여놓은 첫 번째 전시관을 지나 두 번째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앞 전시관과 달리 액자에 걸어놓은 개별 작품들 중 먼저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이유는 가까이 가자 알 수 있었다. 채 피지 않은 수련 꽃망울도, 때로는 짙게, 때론 비치게 표현한 수면 때문도 아니었다. 막 벌어지려는 흰 꽃잎 한 장, 그 가장자리에 비밀처럼 자리한 무언가 때문이었다. 조금 더 눈을 가까이 대고 살폈다. 비밀 같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농담 쪽에 가까웠다. 어처구니없이 크고 미끈한 머리통의 외계인 같기도, 제 몸보다 큰 집을 이고 가는 달팽이처럼도 보였다. 엄지손톱보다도 작아 분명히는 알 수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