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출생, 신춘문예 입상 등 잘못 기재된 '문학비' 곳곳에 ... 관리주체 없어 수정도 어려워
2024-05-21 정수진 기자
한국 단편소설의 거장 난계 오영수 선생은 울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문화자산 중의 하나다. 그동안 지역 언론과 학계의 노력으로 오영수의 문학세계와 일대기에 대한 정리가 상당부분 이뤄졌지만 과거에 세워진 문학비 등의 오류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21일 찾은 울산 남구문화원 입구에 세워진 '오영수문학비'. 이 문학비는 지난 1992년 당시 울산문화원이 꾸린 오영수문학비건립위원회가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오영수 선생 얼굴 조각과 소설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 뒤편에는 오영수 선생에 대한 짧은 설명이 적혀있는데, 출생년도는 1911년으로,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도 1949년으로 잘못 기록돼 있다.
오영수의 출생 연도는 여러 학자들이 당시 민적부와 학적부 등을 통해 1909년인 것으로 확인한 상태다.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머루」가 발표된 것도 1950년인 것도 확인됐다.
오영수의 태생지인 울주군 언양초등학교에 세워진 문학비(총동창회 제작) 뒤편에도 '1949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후 작가 생활'로 기록돼 있다.
오영수 선생의 잘못된 연보는 대표작 '갯마을' 배경지인 부산 기장에도 있다.
부산 기장 일광해수욕장 인근 강송교 앞 별님공원 입구에 세워진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 설명문에는 오영수 선생의 출생 연도가 1914년으로 적혀있다. '오영수 선생의 「머루」가 서울신문에 입선(1949)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특히 이곳 안내문엔 '큰 누이가 일광초등학교로 부임해 오자….'라고 적혀있는데, 당시 일광국민학교로 부임한 이는 오영수 선생의 큰누이가 아닌 아내 '김정선'씨다. 아내 김 씨가 일광에서 근무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고, 소설 갯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현재 '갯마을 문학비' 인근에서는 매년 '기장 갯마을 축제' 등이 열리고 있는 만큼 잘못된 연보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오영수 선생의 출생 연도와 관련해 일찍부터 1914년 혹은 1911년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는 오영수 선생 자신이 작품집 등에 통해 여러차례 밝혔기 때문이다.
오영수 선생은 1949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신천지」 9월호에 단편소설 '남이와 엿장수'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는데, 당시 자신을 도와준 스승이 1913년생이기에 제자가 스승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부담돼 1914년으로 출생 연도를 기록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호종이 '난계 오영수론' , 이재근이 '오영수 소설 연구'(목원대 박사 논문)을 통해 당시 '민적부'와 '언양공립보통학교 학적부'에 오영수 선생의 생년월일이 '명치사십이년이월십일일(明治四拾貳年貳月拾壹日)'이라고 기재된 사실을 확인하면서 논란이 마무리됐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연도와 관련해서도 1950년으로 정리된 상태다.
이연옥 전 오영수문학관장은 "오영수 선생의 「머루」는 1950년 작품이 출품된 것은 확인된다. 확실하지 않은 건 당시 입선인지, 당선인지 정도이다"고 밝혔다.
현재 3곳의 문학비를 세운 주체는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고, 각 지자체에서 떠맡아 관리하고 있다. 특히 시유지에 세워진 남구문화원 오영수문학비는 울산시 공공조형물 목록에도 빠져있어 오류를 수정할 주체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울산광역시 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과거 울산시 문화원 일때 문학비를 세운 것으로 확인은 되나 문화원이 없어지면서 관리 주체가 모호해졌다. 울산시와 논의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기장군 관계자는 "문학비 설치 이후 관리만 맡아 오고 있어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잘못 적힌 부분을 살펴보고 빠른 시일 내에 수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수진 기자 ssjin3030@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