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하나하나 열정과 애정 …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
[울산문예회관 고 박흥대·정기홍 작가 회고전 _두 거장의 가족을 만나다]
울산지역에서 오랫동안 창작활동을 펼치며 많은 작품을 남긴 고 박흥대 작가와 고 정기홍 작가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이 지난 18일부터 26일까지 전시실 전관에서 개최하는 이번 회고전은 두 작고 예술가의 창작 작업을 재조명하기 위한 전시로, 작고한 후 첫 회고전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박흥대 서양화가는 1981~1982년 제3대 울산미술협회 지부장을 역임했고, 1972년 일요화가회 창립해 활동하며 한국예총 공로상, 울산광역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정기홍 조각가는 1993~1996년 제10대 울산미술협회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예총 공로상, 울산광역시 예술인 공로상을 받았다.
본지는 매일 전시장을 찾아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 두 작고 작가 가족들을 만나봤다.
전시해설 나선 고 박흥대 화가 큰 아들 내외
늘 그림 그리시느라 가족여행 거의 못 가
과묵 하셨지만 작품에 ‘가족애’ 많이 표현
달구야 시리즈 할머님에 대한 그리움 담겨
고 박흥대 서양화가의 서양화 및 드로잉작품 95점이 전시된 제 1·4전시장에는 큰 아들 박배운(61)씨와 큰며느리 권미애(56)씨가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작가님 작품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아기자기한 스티커는 손녀분이 붙인 건가요?
"아닙니다. 하하. 다 아버지가 붙이신 거예요. 나이프, 돌멩이, 스티커 등 다양한 오브제를 많이 사용하셨어요. 재밌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그러신 것 같아요. 아버지는 절에서 볼 수 있는 목어, 연꽃 등을 많이 그리셨는데 사실 천주교셨거든요. '월평성당' 첫 성당 표지를 그리실 만큼 독실하셨어요. 매일 어딘가를 방문하셔서 소재를 찾고 그림에 사용하셨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그림에 '하늘이 시여'라는 글자도 많이 넣으셨더라고요. 아버지는 그림에 연도를 안 남겼다는 특징도 있으시네요."
-'어허라 달구야' 시리즈는?
"2000년대부터 오랫동안 '어허라 달구야' 시리즈를 만드셨어요. '어허라 달구야'는 땅을 평평하게 다지려고 여럿이 힘을 모을 때 넣는 추임새입니다. 추임새처럼 작품들이 밝으면서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터치들이 보여요. 이 시리즈를 자세히 보면 산(山)의 형태가 많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여성의 가슴을 표현한 것이에요.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것 같은데 이렇게 표현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해요."
-박흥대 작가님, 어떤 화가면서 어떤 아버지였나요?
"유머스럽지는 않지만 자상한 아버지로 기억됩니다. 정말 과묵하셨어요. 교직에 계셨는데 사실 돈을 벌고 그림을 그리려고 하신 거예요. 살아생전 정말 그림에만 몰두하셔서 가족에게 살갑지는 않으셨지만 그림에 가족 대한 사랑을 많이 표현하셨더라고요. 하나 기억에 남는 일화는 매일 그림을 그리러 나가셔서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본 적이 거의 없어요. 한 날은 석남사에 가신다고 하셔서 따라갔는데 흐르는 계곡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시더라고요. 그 뒤로 따라간 적이 없어요."
-작품이 많은데 어떻게 보관하고 계신가요?
"아버지가 아프시면서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요. 주택에 살 때는 2층 작업실에 작품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사하면서 남겨둘 작품 빼고 나머지는 저희에게 찢어서 버리도록 하셨어요. 저희가 몰래 숨길까 봐 보는 앞에서 다 버리도록 하셨어요. 리어카 2개 정도 되는 양을. 남은 작품은 아파트 방 한 칸에 앵글을 만들어 보관 중입니다. 이번 회고전에는 투병하시며 그렸던 마지막 그림도 있어요. 울산대학교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이더라고요..."
"돌아가시기 전 개인전을 준비하셨는데 돌아가시면서 선보이지 못한 미발표작 20점도 이번 회고전을 통해 보여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회고전을 준비해 주신 관계자분들과 소장하시던 그림을 전시하도록 가져다주신 분들, 또 저희 아버지를 오랫동안 기억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찾아뵙길 바랍니다."
매일 관람객 맞이 고 정기홍 조각가 부인
자연으로부터 시리즈 두 딸에 대한 사랑 가득
무거운 재료로 작업하느라 손가락 부상 잦아
꿈이었던 조각공원 · 유작전 열게 돼 기뻐
고 정기홍 조각가의 부인인 최윤주씨도 매일 오전 10시 회관으로 나와 전시장을 방문하는 시민들과 작가의 동료, 제자들을 반기고 있었다. 정기홍 조각가의 작품은 제 2·3전시장과 야외전시장에서 각각 실내작품 90점, 야외 대형조각품 15점 등 총 105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최윤주씨는 "이렇게라도 선생님의 꿈이었던 조각공원을 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많은 조각 작품을 남기셨는데, 대표작은 어떤 것 인가요?
"씨앗이 발아되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자연으로부터 시리즈'는 '씨앗'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대리석, 화강암 등으로 씨앗의 모양을 만든 작품이 여럿 있어요. 이 씨앗이 발아해서 줄기를 올리고, 떡잎을 펼쳐 많은 작품이 탄생한 것 같아요. 야외전시장에는 딸들을 생각하며 만든 '자연으로부터민지'와 '자연으로부터여진'이 있어요. 큰딸과 둘째 딸 태어났을 때 선생님이 작품을 만들고 당시 카탈로그 이름도 아이들의 이름을 넣어 전시할 만큼 딸들을 사랑을 표현했어요. 타지에 있는 딸들도 주말에 보고 아버지 생각 많이 했죠."
-오랜 세월 조각을 해오셨습니다. 정기홍 서양화가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초창기에는 평면을 했었는데 이후 회화와 조각 사이를 오가다가 8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조각을 했던 것 같아요. 대리석, 브론즈, 스테인리스, 오석 등 다양한 재료로 조각을 해서 무게가 무겁다 보니 손가락을 자주 다치셨어요. 저도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관리하다 깁스를 3번이나 했어요. 신춘희 시인이 선생님은 '규칙적이지 못하다'고 했는데 나름 그만의 규칙은 있었어요, 미국인처럼 살았거든요. 주로 밤에 조각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작가의 꿈이었던 조각공원. 유작전을 위해 모든 작품을 갖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실은 울주군 범서 선바위 쪽에 있어요. 작품을 만들고 나면 자연과 어울리게 작품을 배치해두곤 했어요. 한평생 조각을 해서 선생님의 꿈이었던 조각공원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언제가 한 번은 유작전을 하려고 작품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 단 하나도 판매하지 않고 가족들이 선바위를 찾아 닦아주면서 관리하고 있었죠. 전시를 하면서 몇 점 판매가 됐어요.
"한 사람의 인생을 바친 예술을 한자리에 보여줄 수 있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9일이라는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한 작가의 평생 보여주기는 어렵지만 전시 첫날부터 많은 시민분과 선생님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찾아주신 것에도 정말 감사합니다.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다시 선바위에 가져다 둘 생각입니다."
이번 회고전은 오는 26일까지 열리며, 전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울산문화예술회관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문의 052-226-8251~4. 정수진 기자 ssjin3030@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