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울산여지도-53] 돋질, 아무도 모르지만 스스로 수호신이 된 산

한반도 동남부 백두정기 맺힌 땅 남양지맥의 기가 모인 영험한 산 찌굼이 도깨비 등 이야기도 전해

2024-07-10     김진영 논설실장
김진영 논설실장

 장마의 한 가운데 쯤이면 웅~웅~소리를 내는 산이 있다. 100리를 달려온 태화의 물길이 동해와 하나되는 길목에 뭉퉁하게 앉은 산이다. 돋질, 해발 89.2m의 등성이는 산이라는 이름이 어색하게 들리지만 역사는 깊다. 산의 모습이 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어 돗질산·저두산(猪頭山) 등으로 불리다 최근에 표기법을 통일해 ‘돋질산’으로 명명됐다. 돗, 돋은 돼지를 뜻한다. 100m도 안되는 산이지만 정상에 서면 울산의 1만년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남 방향으로 조선소가 지척이고 석유화학단지에서 쉼없이 연기가 뭉글거린다. 북서로 눈을 돌리면 도심과 도산성이 잔잔하고 태화강국가정원 너머 함월과 영남알프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돋질에 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경이롭다. 손을 뻗으면 대한민국 산업의 맥박이 꿈틀대는 땅인데 고개만 돌리면 새로운 도시가 우뚝하다. 공업입국으로 대한의 가난을 떨쳐낸 심장과 그 댓가로 일군 새로운 도시가 극명한 대비를 보이며 펼쳐진다. 오늘 울산여지도가 찾은 곳이 바로 그 맥박이 펄떡이는 땅 돋질이다. 

 울산과 동해가 이어지는 지점에 이정표처럼 마침표를 찍은 땅 돋질은 엄연히 산이다. 낙동정맥인 정족산에서 갈라져 남암산과 영축산, 신선산으로 이어진 남양지맥의 끝자락에 당당하게 가부좌를 튼 이 산은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오랜 세월 이 산을 지킨 띠고딩 이야기와 도깨비 전설이 그 증좌다. 

 울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돋질산은 낯설다.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디라고 손가락을 가르키면 갸우뚱하며 생소한 산이 돋질이다. 실제 돋질은 열에 일곱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채 자리한 산이다. 삼산이 개발되고 공단의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우면서 존재감이 사라진 산이지만 그래도 국제무역항 시절부터 납도의 폭죽이 요란했던 오늘까지 묵묵히 그 현장을 지켜낸 울산의 지킴이다. 

 돋질산은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땅이지만 그만큼 신비로운 이야기가 많은 산이다. 울산에서 제법 오래 산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었을 이병철 회장의 별장 공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흔히 이병철 별장터로 불리는 이 땅은 돋질산 정상 부근에 있다. 지금은 롯데정밀화학이 가꿔놓은 정원 속에 들어있지만 그 뿌리는 지난 1964년 들어선 한국비료공업이다. 흔히 ‘한비’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 회사는 삼성의 뿌리 기업 중 하나다.

 돋질산에는 띠고딩이 살고 있다. 띠고딩은 오랜 세월 돋질산을 지켜온 수호신 같은 존재다. 경상도에서 찌굼이라 하는 수호신은 지킴이의 옛말이다. 오래전부터 울산 사람들은 돋질산 지킴이인 띠고딩이 울면 하늘이 내리는 천벌을 경계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장마가 한창일 때 띠고딩은 밤새 울음소리를 내는 일이 잦았다. 큰 물들면 반드시 물에 빠져 죽는 이가 있기 마련이기에 큰 물을 경계하는 옛사람들의 경계심이 만든 이야기로 보인다. 그만큼 울산사람들에게 돋질은 신령스러운 산이었고 수호신 하나가 산 속에 몸을 숨기고 또아리를 틀었다고 믿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한비시절 별장 공사 사건이다. 한비가 돋질산 아래 터를 잡고 잘나가던 시절 태화들과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정상 부근에 별장격인 영빈관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는 한참 진행되다 중단됐다. 별장 공사 도중에 그 유명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공사현장에서 인부가 즉사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중장비가 바위를 건드리는 순간 누런 황구렁이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를 본 이들이 죽거나 시름시름 앓았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돋질산과 그 아래 땅은 대한민국 공업화를 고스란히 받아낸 산모같은 땅이다. 1962년 울산이 공업입국의 상징으로 점찍힌 뒤 팔도의 사람이 울산에 모여들었다. 8만의 인구가 100만으로 불어나던 시간, 산업화와 도시화가 남긴 온갖 쓰레기는 돋질산 아래 매립장으로 왔다. 도시의 오물을 꾸역꾸역 파묻은 땅이 다시 15년간 안정화 기간을 거쳐 국제적인 정원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매립장 사이로 여천천의 샛강이 흐른다. 땅 속에 무엇이 있든 매립장 위의 초지는 철마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진다. 

 낮은 산이지만 돋질의 정상 부근에는 이야깃 거리가 많다. 북쪽 봉우리에는 국토 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있고 언제 들어선지 알 수 없는 군사시설도 폐허로 남아 있다. 남쪽 아래로 눈을 돌리면 롯데정밀화학이 울타리를 친 금단의 땅이다. 이 땅의 안쪽에는 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져 벚꽃천지의 세상이  펼쳐지지만 재벌이 금줄을 친 탓에 울산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 산에는 누구나 들어본 춘향설화와 연이 닿은 전설이 전한다. 바로 기녀 월앵과 호동이의 사랑이야기다. 신분과 패관의 욕정에 이승에서 맺지 못한 두 젊은 혼을 돋질산 도깨비가 맺어 준 이야기는 이 땅을 지키는 이무기나 도깨비 모두가 민초의 삶과 함께하는 벗이었음을 증명한다. 여기서 잠깐, 울산의 도깨비는 모두가 민중의 수호신이다. 지금도 가끔 뿔이 달리고 이가 튀어나오며 불쾌하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는 도깨비는 우리 것이 아니다. 일제가 자기네 문화에 전하는 오니라는 도깨비 귀신을 일제 강점기때 우리의 도깨비로 연결한 왜곡이다. 

 마지막 팁 하나, 돋질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백두의 정기가 마지막으로 맺힌 샘이 존재했고 그 샘물을 마신 왕과 두 아들이 나라를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불사국과 삼왕봉 이야기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삼산벌의 왕생 설화나 두왕골의 대마도 왕 이야기 같은 신성한 땅의 기세를 등에 업은 민중신화다. 그만큼 이 땅이 신비롭기에 언젠가 아기장수 같은 이가 민초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바람으로 읽힌다. 믿거나 말거나다. 김진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