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전호후랑의 형국이 된 인구절벽
과거 산아제한 정책 반세기만에 좌초 정부 인구소멸 대응 불구 국민들 불신 난제 극복위해 모두 지혜 모아야 할때
별로 오랜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니다. 방송 신문 그리고 골목마다 붙은 표어에는 살벌한 문구들이 넘쳐났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만원이다 등 정부와 민간 단체가 모두 나서서 인구 폭발을 경계하고 다산을 무식의 결과인 것처럼 몰아갔다.
필자도 베이비 부머의 일원으로 산아제한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초대받지 않은 손님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병원이 귀하고 보건소가 대다수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던 시절, 철없던 동네 꼬마들은 부모들이 장농 위에 깊이 숨겨둔 보건소표 피임 기구를 들고나와 하나같이 물풍선을 만들어 양손에 들고 깔깔대며 골목을 누비곤 했다. 어른들의 난감한 웃음과 묘한 표정, 그리고 가난과 희망이 혼재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혼자 쓴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러나 정부의 모든 조직이 나서고 관변단체와 시민사회 조직이 총동원된 결과 산아제한의 배는 항구를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지만, 다가올 미래를 보지 못하고 온갖 무리수를 동원한 선장과 선원들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불과 반세기 만에 배는 인구절벽이라는 태풍 속에 좌초했고 처음 출발과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늘 그렇듯 정부를 비롯한 그 어떤 기관이나 단체도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거나 실패의 책임을 말하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지난 역사에서 보듯 정책 오류와 실패를 감당하고 극복하는 주체는 늘 국민이었다. 더더구나 기막힌 일은 2024년 현재 비상시국이 된 인구 소멸의 책임을 20·30대의 무책임과 이기심으로 돌리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몰지각한 행동이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온갖 사회구조와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들에게 인구소멸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청년세대의 비웃음이 낭자한 가운데 국민으로부터 불신받고 지속 가능성 없는 일회성 정책, 정책 실패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십 리도 못가 발병나는 불신 가득한 일 처리를 믿고 과연 이 땅의 미래 세대들이 움직이겠는가? 길을 잃었으면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인구절벽과 소멸을 걱정하는 소리가 천지에 가득한 가운데 일부 긍정적 신호도 있다. 6월 19일 정부는 저출생 등 인구 감소에 따른 ‘인구 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저출생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히며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3대 핵심 분야로 일 가정 양립, 양육, 주거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기업규모,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일하면서 필요한 시기에 출산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현재 6.8%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임기 내 50% 수준으로 높이고 육아휴직 급여도 첫 3개월은 월 25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퍼블릭 케어로 전환해 0세부터 11세까지 국가 책임주의를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주거 문제는 ‘원하는 주택을 우선 분양 받을 수 있게 하고 추가 청약 기회와 신생아 특별공급을 늘리겠다, 신혼부부에게 저리로 주택매입과 전세자금을 대출하고 출산 때마다 추가 우대금리도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저출생 문제는 수도권 집중, 높은 불안과 경쟁압력 등 사회 구조·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3대 핵심 분야만 집중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난제’라며 ‘지역 균형 정책과 고용,연금, 교육, 의료개혁을 포함한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구 감소와 관련한 자료에서 보면 2016년 40만6,000명이던 신생아 수가 2022년 24만 9,000명이었고 같은 기간 출산률은 1.17명에서 0.78명으로 감소했다.
이런 결과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정책을 전담하는 부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고 지난 7월 4일 국회 박성민 의원(울산 중구)은 고령사회 및 인구정책의 수립 총괄, 청소년과 가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할 저출산 대응기획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 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인구 비상사태 선언 후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인구 위기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수록 국가 위기는 매우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인구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법안을 발의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앞뒤가 맞지 않던 혼 분식 장려 운동,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엄청난 예산만 쏟아부은 인구정책, 정책 실패에 후안무치하던 정책 당국의 행태로부터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고 변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국민은 듣고 싶다.
아울러 정부 정책에 대한 낮은 지지율과 거대 야당과의 불협화음과 견재 속에 정부와 대통령이 밝힌 정책 목표를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지 밝혀주기를 바란다.
인구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만큼 시급한 저출생 문제, 앞문에는 호랑이요 뒷문에는 이리가 이빨을 드러낸 전호후랑(前虎後狼)의 형국이 된 인구 소멸 위기, 이 난제의 극복을 위해 정부와 국민 모두의 지혜를 한곳으로 모아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조경환 태양복지재단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