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 외면한 임기응변식 거짓 해명 논란만 키웠다
[원전, 1조원대 ESS 건설 프로젝트 '갑질' 논란] 실시설계 업무 사업자가 대행? 입찰공고 전 공사기간 적정성 검토 전문가 자문 의무사항 아니다? 기자 질의에 법 자의석 해석 답변 토목건설 하청 울산지역 중견업체 "설계변경으로 공사비 눈덩이 발주처와 인정 협의 이뤄지지 않아 기성금 정산 못해 줄줄이 피해"
▷속보=약 1조원대 ESS(에너지저장장치) 건설 프로젝트 준공을 앞두고 '갑질'의혹(본지 8월28일자 1면 보도)에 휩싸인 한국전력이 뒤늦게 해명에 나섰는데 현행법을 외면한 자의적 해석을 내놔 법위반은 물론 발주처로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논란만 부채질했다.
울산의 한 중견 전문건설업체는 한전과 원청의 갈등이 법적 소송이 불가피한 지경으로 치닫는 동안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회사가 회생 불가 상황에 직면했다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는데, 사정이 비슷한 업체가 한두곳이 아니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28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한전이 경남 밀양(부북)·전북 남원(신남원)·경북 영천·충남 예산·경남 함양 등 전국 5개 변전소 유휴부지 등에 원자력발전소 1기와 맞먹는 970㎿(메가와트) 규모로 추진해온 '계통안정화 ESS 건설 사업'은 현재 준공처리가 진행 중이다.
지난 2022년 12월부터 체약체결이 이뤄지기 시작해 빠른 현장은 작년 12월, 늦은 현장은 올해 6월 건축공사를 준공했고 이후 가압(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투입)에 들어갔다. 최근 들어선 시운전도 마무리 단계다.
공사 준공은 당장 코 앞이지만 출발점인 공청회 단계서부터 공사기간 산정, 낙찰자선정, 업무수행, 실시설계 인허가 주체, 건축공사 시공주체 변경 등 공사대금 정산과 직결되는 민감한 이슈들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한채 여러 제도를 짜깁기하는 혼용안으로 계약을 체결하다보니 결국 문제가 곪아 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는 △자재 구매계약에 맞는 '종합낙찰제'가 이번 ESS 건설 토목건축 낙찰자선정 방식에 적용 △민간 대규모 사업을 운용할 때 적용해야 할 'EPC'(설계·조달·건설 통합관리) 방식을 종합낙찰제와 혼용해 이번 ESS 사업에 도입 △건설기술진흥법에서 명시한 '공사기간 적정성 심의' 의무(공사비 100억원 이상 건설공사 발주시) 절차 생략 △건설산업기본법에서 계약무효에 해당하는 사례로 적시한 발주처의 불공정 행위 등이다.
전국 5개 ESS 건설 현장 중 4개 현장의 사업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제3장(도급계약 및 하도급계약)에는 △계약 체결 후 설계변경이나 경제상황 변동으로 계약금액 변경 사유가 발생했는데도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인정하지 않고 계약 상대방에게 부담을 떠넘기거나 △계약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당사자끼리 다툼이 생겼는데도 일방적으로 계약내용을 정해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고 △법에서 인정한 상대방의 권리를 상당한 이유없이 배제하거나 침해할 경우 계약무효 사유라고 적시돼 있는데 발주처인 한전이 3장에 열거된 거의 모든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 이들 사업자는 또 한전이 건설기술진흥법에서 △고강도 근로방지 차원에서 적합한 설계기간(설계시공 일괄입찰 5개월 이상, 기술제안 입찰 4개월 이상)을 검토하도록 규정한 조항 역시 어겼다고 했다.
경남 밀양 ESS 건설 현장에서 토목건설 시공 하청을 맡은 울산의 한 중견 전문건설업체 임원은 현재 회사가 회생 불가에 가까운 위기를 겪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임원은 "우리 회사는 지역 전문건설업체 중 실적으로 치면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중견업체지만 누적된 재정적자로 작년 연말 기업회생을 신청하게 됐다"며 "그러다 비슷한 시기 밀양 ESS 건설 시공 하청을 제안받았고 계약금액이 60억원 가까이 되길래 회사를 정상화할 기회라고 생각했지, 회생불가의 수렁이 될 줄 알았겠느냐"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계약금액은 60억원 정도 되지만 잦은 설계변경으로 투입비는 80억원을 훌쩍 넘었고 이 마저도 발주처와 원청간 설계변경 인정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계약금액 변경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원청은 원청대로 적자가 100억원대의 적자를 봤고 기성금 정산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하청까지 줄줄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현장의 대표사 관계자는 "현재로선 설계변경이 쟁점인데 한전은 'EPC방식에선 실시설계 주체인 사업자가 손해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우리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하지만 공청회 자료를 보면 한전이 실시설계해 인허가를 받았다는 내용, 더 구체적으론 제어동 토건, 변전기초, 소방시설공사, ESS기초, 1차전력구까지 한전이 설계했다고 분명히 적혀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전은 기자가 보낸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실시설계 인허가는 발주처 명의로 받았지만 건축법에 따라 사업자가 해당 업무를 대행했고 △입찰공고 전 공사기간 적정성 검토는 했지만 전문가 자문은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 경우 의무사항은 아니다는 등의 취지로 해명했다.
이를 두고 사업자들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임기응변식 거짓 답변에 불과하다"며 "언론에는 '사업자와 협의 중에 있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에겐 '소송으로 가자'는 식으로 법적 대응을 유도하면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는데 현재로썬 소송은 물론 분쟁조정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카드까지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jhj74@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