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다운장에서

손짐작으로 덜어주는 흙 묻은 손에 정감 상인들 보며 활력 얻는 오일장서 장보기 내돈 냈지만 덤으로 정 받는 행복한 시간

2024-09-03     조정숙 시인
조정숙 시인

 오늘은 장날입니다. 1일과 6일에 열리는 동네 오일장입니다. 장은 1㎞정도의 소방도로에 서는데,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상품이 나옵니다. 국밥집, 국수집, 전과 술을 먹을 수 있는 난장도 있습니다.

 도심이라 깔끔하게 정리해 싸게 파는 마트가 있지만 채소나 과일, 생선은 될 수 있으면 오일장에서 삽니다. 저울에 달아서 1원까지 인쇄돼 나오는 가격표보다 손짐작으로 덜어주는 흙 묻은 손이 더 정이 갑니다. 밭에서 갓 뽑아온 야채의 싱싱함이 있는 장터와 사람 사는 냄새가 좋아서 오늘도 장으로 갑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합니다. 입구에는 수박과 참외를 실은 트럭이 보입니다. 아저씨는 비닐봉지에 참외를 담느라 바쁜 손을 움직이고 눈으로는 손님을 보며 외칩니다.

 "참외 사가이소. 달고 맛있는 참외 사가이소. 한 봉지에 5,000원입니다"

 조금 올라가니 좌판에 생선을 펴놓은 아저씨도 소리를 칩니다.

 "고등어 사이소. 바다에서 갓 잡은 기라요. 펄떡펄떡 뜁니다. 두 바리 5,000원입니다" 바다 냄새 나는 고등어, 갈치, 오징어 등 여러 생선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웃으며 그냥 지나치려 하자

 "사모님 오늘은 왜 그냥 가세요? 전부 싱싱합니다. 사 가세요" 합니다.

 톱밥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꽃게를 사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꽃게가 죽었나 봐요. 꼼짝도 안 해요"

 "죽긴요. 야들아, 일나라 일나라, 손님 왔대이 잠 깨라. 너거들 보고 죽었다 안카나" 하며 집게로 탁탁 두드립니다.

 "마수 해 주이소. 네 바리 만원입니다" 아저씨는 항상 ‘마리’를 ‘바리’로 발음을 합니다. 선잠 깬 꽃게가 기지개를 켭니다. 꽃게와 고등어를 샀는데 마수를 해줬다고 고등어를 한 마리 더 줍니다. 식구가 없어 안 줘도 된다고 해도 기어이 줍니다. 덤으로 받은 고등어 한 마리에 행복해집니다.

 옆에는 견과류를 파는 아저씨가 맛보라며 땅콩을 한 움쿰 줍니다. 지난 장에 사서 안 산다고 해도 괜찮다며 방금 볶았다고 먹어보라고 합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립니다. 뻥튀기가 다 돼 나오나 봅니다. 쌀, 보리, 옥수수, 말린 떡이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구경을 하며 가다 보니 모자가 진열된 점포에는 별의별 모자가 멋을 내며 걸려있습니다. 발만 있는 마네킹은 양말을 신고 거꾸로 서 있습니다. 날씬한 다리를 공중으로 하고 스타킹을 신은 다리 마네킹도 봐 달라고 뽐을 냅니다. 오백 원짜리 덧버선 열 개를 사고 사지도 안 할 모자를 예쁘다고 한번 써봅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혀 따라가니 동그란 도넛이 기름에 동동 떠서 몽실몽실 퍼져갑니다. 방금 튀긴 찹쌀 도넛 한 개를 먹고 5,000원어치는 포장을 해 달라고 합니다. 바로 옆에는 즉석 어묵들이 다채롭게 만들어져 질서를 잡고 누워 있습니다. 여기도 시식용이 있어 먹고 가라고 합니다.

 이어서 잡화상이 나타납니다. 고무줄, 실, 참빗, 호미, 낫, 나프탈렌, 싸리비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잡화상입니다. 심지어는 항아리, 촛대, 상, 짚신 등 골동품 같은 물건도 있습니다. 구경만 하는데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있는데 뒤에서 "와 이리 싸노, 지 맛대로 골라 두 소쿠리 5,000원"하는 버섯 장수 아저씨의 구수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예쁜 버섯이 소쿠리마다 담겨 쳐다봅니다.

 다음은 야채를 살 차례입니다. 손수 농사를 지어 팔러 나오는 할머니는 올해 구십입니다. 지난 장날에 안 보였는데 오늘은 나왔을까? 살짝 긴장이 됩니다. 저쪽에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할머니 앞에는 호박, 오이, 고추, 감자, 양파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습니다. 호박을 사며 지난 장에 보이지 않아 궁금했다고 하니 환하게 웃으며 나를 다 걱정해준다며 호박을 하나 더 줍니다. 불현듯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나서 계획에 없던 채소를 더 사고 아까 산 도넛을 잡숴보라고 몇 개 드렸습니다.

 장을 이십여 년 다니다 보니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곡식을 파는 할머니가 하늘로 갔습니다. 쌀과 잡곡, 고추, 메주, 마늘, 참기름까지 팔았고 무엇이든지 사면 덤으로 좁쌀을 봉지에 넣어 주며 밥에 넣어 먹으라고 했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깝습니다.

 삶이 힘들면 재래시장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편리한 대형 마트에 젊고 부유한 고객을 빼앗기고 뒤처지는 오일장이지만 상인들의 활력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비록 내 돈 주고 산 물건이지만 정을 덤으로 받은 다운장에서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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