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E등급’ 방어진국민아파트 철거 명령에 "절대 못 나가"
1983년 준공 5층 50세대 아파트 외벽 곳곳 갈라져 균열…붕괴 우려 지난해 안전진단 평가 ‘최하 E등급’ 동구, 철거 결정…6세대 버티는 중 아파트 총무 "입주민 무시 일방행정" 정치권 "행정 매입후 활용 검토를" 동구 "실거주지 확보 위해 노력"
41년 전 지어진 울산 동구 방어진국민아파트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안전진단 최하 E등급' 공동주택으로 올 연말 철거시한이 임박했지만 22세대 55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건물 붕괴를 우려한 행정당국은 이사 나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세대에는 벌금을 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60~70대 고령에 기초생활수급자인 주민이 상당수다보니 6세대는 '이사 불가'를 고수하며 완강히 버티는 분위기다.
12일 취재진이 찾아간 방어진국민아파트는 1983년에 준공된 5층짜리 아파트다. 총 50세대 1개동 규모의 노후 아파트로 건물 하단부는 물론 외벽 곳곳엔 쩍쩍 갈라진 균열이 눈에 띄었다. 쩍 벌어진 틈이 제법 넓어 주민들 사이에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겠다'는 불안 섞인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파트 측면엔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표지판도 부착돼 있다.
특히 주민들이 작년 민간의 한 기술원에 안전진단 평가를 의뢰한 결과 최하 등급인 'E등급'이 나왔다.
방어진국민아파트 건물 안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2021년부터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보인다는 민원이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되자 동구청이 '시설물안전법상 제3종 시설물'로 지정했다. 이 아파트는 '준공된 지 15년이 넘은 공동주택' 기준에 해당됐는데, 이 경우 동구청은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 의해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 주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
이를 시작으로 지난 2022년에는 정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작년엔 최하인 'E등급'을 받았다. 건축물 내력 상실과 침하가 주된 이유였다. 이 말은 1년마다 정밀 안전진단 결과 등급이 1단계씩 떨어질 정도로 붕괴위험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동구는 아파트 철거를 결정, 1차로 올해 8월 15일까지 이사할 것을 계고하고 나섰다.
실제 동구는 지난 7월 중순께 이 아파트 각 세대에 발송한 '긴급조치 행정명령 촉구(1차)' 공문을 통해 8월15일까지 대피명령을 어기면 △1차 30만원 △2차 50만원 △3차 1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명시했다. 대피명령을 방해하면 '재난안전법 시행령' 과태료 부과규정에 따라 최대 200만원의 벌금을 물릴 수도 있다고도 못 박았다.
하지만 전체 50세대 중 절반에 가까운 22세대 55명의 주민은 여전히 붕괴위험을 안고 이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있다. 동구는 철거시한을 올 연말까지로 한 번 더 연장하고 주민들을 찾아가 방문설득에 나섰지만 갈수록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사를 계획 중인 세대도 더러 있고, 기자가 아파트로 취재갔을 때 마침 이사하던 주민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6세대는 "절대 못 나간다"며 완강히 버티는 중이다.
이날 방어진국민아파트 총무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동구청은 올 연말 아파트 철거를 강행할 태세인데 이는 입주민은 안중에도 없는 일방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아파트에 살던 25세대는 처음 집 살 때 받았던 대출금을 지금까지도 상환하고 있는 상태인데 행정기관이 '붕괴위험이 있으니 당장 집을 빼라'고 하면 과연 '예'하고 나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라며 "저도 대출금이 3,000만원 정도 남아 있고, 심지어 어떤 집은 1억 5,000만원 대출을 내 이사왔는데 이후 정밀 안전진단이 이뤄지면서 아파트 가격이 폭락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주민도 있다"고 사연을 전했다.
자부담해야 하는 철거비용도 문제 삼았다. 그는 "철거비용이 최소 5억원 드는데 주민들이 나눠 내야하고, 그 몫으로 세대 당 약 12.7평의 의미 없는 땅을 받는다"면서 "당장엔 행정에서 지원하는 LH임대주택에서 2년 산다쳐도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한숨 쉬었다.
이처럼 이사를 거부하는 주민이 상당수에 달하자 동구는 지난달부터 아파트 각 세대를 직접 찾아가는 방문 전수조사에 나서봤지만 몇몇 세대는 아예 문 조차 열어주지 않으며 대화를 거부했다. 지난 7월 우편발송한 행정명령이 되레 주민 역린을 건드리며 반발을 산 셈이다.
임채윤 동구의원은 "현재 거주 중인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비가 새고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철거시한을 올 연말까지로 정해두고 지켜보기만 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며 "재난대응으로 접근해야 하고, 입주민 소득이 적어 현실적으로 이주가 어려운 것도 사실인 만큼 행정에서 매입한 뒤 추후 활용 방안을 찾는 식의 다각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구 관계자는 "이사 비용으로 150만원을 지원하고 있고, 주거 이전을 위해 LH와 주택 임대계약을 추가로 체결하며 물량을 계속 확보하는 중"이라며 "또 이주비 융자 지원도 하고 있는데 보증금의 70%까지 대출(최대 한도 3,000만원)가능하도록 하는 등 실 거주지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 안전을 위해 계속 방문하는 등 협의를 이어나가겠다"고 부연했다.
김귀임 기자 kiu2665@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