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명태는 알아도 명태균은 모른다
정치사 곳곳에 등장하는 브로커 현란한 입으로 불안심리 이용해 사실관계 밝혀 정치판 퇴출해야
현란한 혀끝으로 신임을 얻은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한세기 전 망국의 역사 속에도 혀끝으로 국정을 농단한 일이 있었다. 명성황후, 민비의 여인 진령이다. 1882년 임오년 6월 구식군대 군인들이 총을 들었다. 13개월의 체불 끝에 받은 녹봉이 쌀 한 가마였는데 열어보니 모래가 8할이었다. 녹봉을 주던 책임자가 황후의 일가다. 민비 일족을 궁에서 쳐내려던 흥선의 음모가 배경으로 깔린 임오군란의 내막이다. 시아비 흥선의 쿠데타에 야반도주한 민비는 일족이었던 민응식의 도움으로 충주 장호원에 숨었다. 비가 위기의 은둔시절을 보낼 때 장호원에서 묘령의 여인을 만났다. 그가 바로 조선의 망국에 젓가락 하나쯤은 보탠 무당 박창렬이다. 후일 진령군으로 불린 박창렬은 불안에 휩싸인 민비에게 8월 보름 환궁한다고 날을 찍었다. 흥선의 집권이 청나라의 개입으로 두달도 채 되지 않아 끝난뒤 환궁한 민비는 무녀 박창렬을 밤 몰래 궁으로 불렀다.
민비의 치맛폭을 뒷배로 삼아 고종으로부터 진령군이라는 군호까지 받은 충주 무녀 박창렬은 그 길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대한제국 이후 명성황후가 된 민비는 무속과 점술에 빠져 있었다. 부창부수라고 고종 역시 점술에 귀를 쫑긋하는 군왕이었다. 자신을 관운장의 딸이라 칭하는 무녀가 황제부부를 쥐락펴락하던 암울한 정국이었다. 사실 유무는 알수없지만 그 무렵 고종과 민비의 꿈에 관운장이 나타나 나라를 살려낸다는 믿음이 민간에 퍼졌다. 진령군의 술수였다. 무녀는 황제부부의 꿈을 뒷배로 사당을 짓고 이를 북묘라 칭했다. 실제 역사 기록에 이 북묘는 고종과 세자가 함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진령은 북묘에서 정인을 나라를 구할 동자로 둔갑시켜 수양아들로 칭하며 왕과 비를 농락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쌀 한 섬과 돈 열 냥씩 바치면 나라가 평안하다’는 계시록을 적어 고종에게 옥쇄를 찍게했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다니 입이 벌어질 이야기다.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은 "북묘의 요망한 계집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렸지만 왜의 잡배들이 황후를 난자할 때까지 진령의 요술은 대한제국의 부끄러운 국정농단의 역사로 남았다. 고종이 충신의 직언을 들어 요녀를 처단했다면 대한제국의 마지막 장면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나오는 이유다.
요녀 진령의 이야기는 이 땅의 무속인들이나 신묘한 인물들을 사기꾼 비스무리한 이들과 함께 엮어 손가락질 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안심리를 강보에 싸고 있다. 이성이 불안에 눌리는 시간동안 현란한 혀끝은 달콤한 사탕같다. 그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순간 인간은 불안을 이용한 자들에게 조종 당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가가 느닷없이 마른 명태 두들기는 소리로 요란하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총선 개입 의혹 핵심 인물로 지목된 명태균 이야기다. 명씨는 자신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한 달이면 (대통령이)하야하고 탄핵일텐데 감당되겠나"라며 목젖을 세우고 있다. 대통령 부부와 연결고리로 인터넷 언론에 등장한 명씨는 야당의 먹잇감에 좌파 언론의 호재가 돼 날마다 거물급으로 성장 중이다. 그와 연루된 정치인도 매일 아침 새로운 명단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부부를 시작으로 김종인 이준석은 물론 안철수와 오세훈에 이어 홍준표까지 총망라 됐다.
내용도 가당찮다. 명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종인 전 위원장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했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왜 자신이 당대표 됐는지 모른다"면서 "그 친구는 정말 똑똑하고 사람의 눈과 귀를 움직이는 천부적 자질이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감동의 정치를 할 줄 모른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준석과 김영선의 경남 칠불사 회동에 명씨가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며칠전 중앙 유력 언론의 인터뷰에서 명씨는 스스로를 "닭을 주문 받으면 봉황을 납품하는 사람"이라며 "최재형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라", "3명에게 같은 일을 맡긴 뒤 비교분석하라"는 조언을 대통령 부부에게 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까지의 팩트체크를 종합하면 명태균은 분명 대통령 부부와 일정부분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로 보인다. 그 연결고리가 경남에 기반을 둔 김영선 전 의원이고 명씨 역시 경남을 기반으로 여론조사업체를 차려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경남 창녕 출신 명태균은 휴대폰 대리점을 시작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휴대폰 대리점이 전화번호부 관련 텔레마케팅 사업으로 확장됐다는 말도 있다. 이후 수도권 여론조사 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미래한국연구소’를 차리고 경남의 인터넷 언론 매체에서 활동한 이력으로 정치권과 연결됐다고 한다.
이 정도의 이력으로 어떻게 여권 정치인들의 비선 실세로 자리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주무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여론조사에 해답이 있다.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정치해석으로 통해 불안심리의 정치인들을 혀끝으로 휘둘렀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여론을 읽는 흐름이 특별하다니 색다른 역술인이라느니 여러 설이 있지만 오히려 브로커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명태균과 정치권의 연루설이 퍼지자 관련자들은 하나같이 모르는 인물이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김종인은 식사자리에 갔더니 함께 있어 인사한게 전부라고 했고 이준석은 아예 입을 닫고 있다.
홍준표는 명씨를 선거 브로커라며 즉각수사하라고 오히려 눈을 부라린다. 안철수의 해명은 압권이다. 명태는 알아도 명태균은 모른단다. 이래저래 당분간 우리 정치판에는 명태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할 듯하다. 문제는 두들긴 명태에서 떨어져 나온 오만가지 안주감들로 만들어낼 요란한 잔치상과 무성한 뒷말이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