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의 해양평전-끝] 이승만, 대마도 영유권 도전

일본에 대마도 반환 요구 등 꾸준한 노력 카이로선언 이전 미국에 한일역사 피력 독도 시비, 대마도 영토 분쟁 저지 술책 정쟁 일삼는 정치인들이 관심 없어 걱정

2024-10-28     김동수 관세사·경영학박사
대마도와 독도 사수의 플랫카드를 들고 시위했던 일본인들이었는데 대마도는 어느때부터 슬그머니 거두어들였다.

 

김동수 관세사·경영학박사

 지난 2005년, 미국 국무부가 국제관례에 따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정부가 대마도에 관한 외교문서에 다음 내용이 있다. 「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 Korea request that Japan 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it to the Republic of Korea 이런 사실을 고려해 일본은 이제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칭, 청구를 포기하고, 대마도를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문서에 따라 1951년 7월 9일, 주미 양유찬 대사에게 미국 덜레스 국무장관을 만나 대마도의 영유권을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그것은 한국의 정당한 외교적 절차였다. 그렇다. 한국은 옛날부터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탈한 적이 없다. 그 점에서 한국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평화적인 외교채널로 이 문제를 거듭 제기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외교 절차였다.

 미 국무부는 최근에 이 문서와 관련된 다음 문서도 공개했는데, 그것은 당시 주미 양유찬 한국 대사가 미 국무부를 방문해 정식으로 대마도 영유권 문제를 제기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한국은 정의(正義)가 국제평화(國際平和)의 영구한 기반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대마도의 영토적 지위에 대한 완전한 검토를 다시 할 것을 요청한다(1951년 4월 27일)…」 이 문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일본이 사할린의 남쪽 절반과 모든 부속 도서, 그리고 쿠릴열도를 소련에 넘겨주도록 명령받은 점을 지적하면서 일본은 대마도에 대해서도 모든 권리, 호칭, 청구를 포기하고,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는 도전(挑戰)적인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대마도 반환요구를 한 것은 돌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닐 거라는 암시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이승만의 대마도 영유권 회복 도전에 대해 일부 비판자들은 그것은 우리 한반도가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있을 때 이승만 개인의 영토회복의 환상이라고 비판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 도전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7,000만 한국인의 뼈아픈 대마도 영유권 인식이다. 

 여기에서 주시할 점이 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때 세계적으로 한국만이 식민국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전승국(戰勝國)인 미·중·러·영의 카이로 회담에서 전승국 정상들이 거론한 수많은 식민지 중 유독 한국(Korea)을 지목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언급을 하면서 독립을 보장 합의한 것이다. 그것도 국제협약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공동선언에서! 한국이 이렇게 특별하게 등장한 것에 대해 오늘날 그 배경이 드러나고 있는데 카이로선언 탄생의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한국의 이승만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카이로선언의 공로자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그의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이지만, 홉킨스의 등 뒤에는 Korea의 이승만이 있었던 것이다. 즉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끈질기게 전개한 이승만의 Korea 독립운동이 카이로 회담을 가져왔다. 이 당시 국제 외교가를 살펴볼 때 한국(정치)인들 중 F.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홉킨스에게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사를 들면서 간곡하게 전할 사람은 당시 5,000만 한국인들 중 이승만 이외에는 한 사람도 없는 실정이었다. 이승만은 1941년 자신이 직접 펴낸 영문 저서 『일본내막기(日本內幕記·Japan Inside Out : The Challenge of Today)』를 그와 절친한 홉킨스를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엘리너 여사에게 보내면서 미국이 1882년 조선과 체결한 조미수호(朝美守護)통상조약을 무시하고 1905년부터 일본의 한국 병합을 허용한 미국의 잘못된 역사를 상기시켰고, 일제(日帝)가 한국을 병합하고 한국인을 노예 취급하고, 심지어 제암리 사건(1919)을 일으켜 한국의 기독교도들을 무참하게 불태워 죽인 만행을 폭로했다. 

 이승만은 카이로선언 이전부터 세 차례나 F.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도 편지 등으로 한국과 일본 간의 역사 정보를 보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독도와 대마도가 선사(先史)시대부터 우리 영토임을 밝혀냈고, 『일본내막기』에서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한국과 일본 간의 해상경계(海上境界)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 경계선은 독도, 대마도는 물론 이키섬도 우리 영토로 하는 해양경계선이었다.

 여기에 꼭 지적하는 것은 한국은 일본이 독도(獨島)를 두고 계속 시비(是非)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진짜 이유를 갈파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인들의 시선(視線)을 독도(죽도·竹島))에만 집중되도록 해 대마도까지 한국 영토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술책이다. 즉 오늘도 일본이 독도를 두고 계속 시비하는 것은 독도 영유권 밀당에서 한국에게 밀리면 대마도도 못 지킨다는 속앓이에 지나지 않다. 이승만이 집권 후 불과 사흘 뒤(1948년 8월 18일)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고, 다음 해 1월 8일의 년두(年頭) 기자회견에서 재차 일본의 대마도 반환과 함께 지난날 임진왜란의 배상까지 요구하는 선언을 했을 때 일본은 ‘올 것이 오는구나'하고 경악했고, 그러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대마도를 덮어야 하겠다는 전략을 꾸몄다. 

 즉 그들은 한국인들이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기에 전심(全心)을 다 하게 하면 ‘대마도에 대한 한국의 영토 주장은 논란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정리하면 일본은 독도가 한국령으로 인정된다면 대마도 역시 당연히 한국령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됨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 정치인들은 어제도 오늘도 당파싸움 하느라고 이같은 일본의 교활한 대마도 술책을 모르고 있다. 아니 관심이 없다. 참으로 안타깝다.  김동수 관세사·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