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울산대표 랜드마크 '공업탑' 이젠 보고 느낄수 있는 곳으로

1967년 경제개발 5개년사업 성공 기념 높이 23.5m…승리·평화·공업 등 상징 당시 울산공단 향하는 모든 차량 지나쳐 5·16 혁명 정부 치적 홍보 위치 적합 1980년대 자가용시대 교통사고 빈발 교통신호 시스템·교차로 방식 도입 전국 유일 5차로형 ‘공업탑 로터리’ 교통사고·보험사기 1위 스팟 악명 보행자 이동동선 과다 등 불편 평면교차로 개선 요구 빗발쳐 이전 입지 등 공론화 거쳐 영구보존 검토 행방불명된 부산탑 반면교사 삼아 울산도 시대 흐름 맞춰 논의 시작해야

2025-01-01     조혜정 기자
공업탑 전경.

 

트램 도입으로 공업탑 이전 공론화 ‘본궤도’ 

공업탑은 동해의 작은 어촌마을이던 울산이 산업도시로 우뚝 서고, 빈곤의 대한민국이 수출강국으로 실현되던 역사적 전환의 순간이자 상징 그 자체다. 울산의 대표적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인 공업탑은 2029년 1월 울산도시철도(트램) 1호선 개통을 앞두고 '이전' 공론화 본궤도에 올랐다. 전국 유일의 '5차로형' 회전식 로터리인 공업탑은 '교통사고 1위', '보험사기 1위' 스팟으로 악명이 자자해 이미 오래 전부터 교통체계를 평면 교차로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김두겸 시장은 민선 8기 울산시 출범 후 처음으로 공업탑 이슈를 1호 공론화 안건으로 올렸다. 역사성을 재조명하고 공업탑 구조물이 과연 이전 가능한지 진단하면서, 이전 필요성에 대한 시민 의견도 구해보는 동시에, 이전 입지로는 어디가 적합한지 공론화 절차를 거쳐보겠다는 거다. 공업탑에는 단순 철거한 신복로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역사성이 깃들어있는 만큼 '영구보존을 위한 이전'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1960년대 울산 공업탑 주변 남쪽에서 북쪽으로 본 전경. 멀리 함월산과 중구, 태화강 제방, 현재의 신정동, 중앙 왼쪽에 울산공고, 공업탑 옆 울산여고 위치. 울산시 제공

 

 "민족중흥 교훈 후세에 기리 전하라"

 공업탑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1962~1966) 사업의 성공적인 완수를 기념하기 위해 1967년 4월 20일 건립됐다. 정식명칭은 '울산공업센타 기념탑'이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울산공업센타 기공식 치사문에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신생 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 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울산공업도시의 건설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 할 상징적 웅도(雄圖)이며..."라고 썼다. 

 또 울산공업센타기념탑 건립 취지문에는 "신라 천년의 슬기로운 역사가 담겨져 있는 이 터전에...겨레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기념탑을 세우고 선언문과 치사문을 수록하여 땀 흘려 이룩한 민족 중흥의 교훈을 기리 후세에 전하고자 합니다"라는 문구가 세겨져 있다. 

 울산시가 공업탑 '영구보존을 위한 이전' 공론화 절차에 착수한 이유다. 

 공업탑은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한 조각가 박칠성(1929-2017)씨가 설계하고 시공했다. 그는 울산 공업탑 뿐 아니라 부산 서면탑, 강원도 3·8선 수복탑, 대전탑 등도 디자인했다. 예산은 500만원으로 청와대와 울산시가 부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업탑 중 여신상은 '승리', 산업역군상은 '공업센터 건설', 5개의 기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50만 인구', 지구본·월계수는 '평화', 바닥의 톱니바퀴는 '공업'을 상징한다. 탑의 높이는 23.5m로 지금은 탑보다 높은 건물(최고 39층)로 둘러싸여 존재감이 옅어졌다. 

 당시 박칠성 조각가의 부인은 첫 아들을 임신한 상태에서 성남동, 옥교동 시장을 오가며 인부들에게 밥을 지어 먹였고, 현장에 군용 텐트를 치고 함께 공사에 매진했다. 박칠성씨는 훗날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장과의 인터뷰에서 "나라가 가난해 공업탑을 세울 때 여인상을 화강석이 아닌 시멘트로 시공해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탑 준공식에는 대통령도 참석하기로 했지만 5비료공장의 사카린 밀수사건 때문에 총리가 왔다.

1980년대 태화로터리 교통체증 상황. 공업탑로터리에서 부터 시작된 체증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시 제공

 

  1967년'경제개발 기념 최적' 입지 

 1967년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공업탑 자리야말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성공을 기념하는 공업탑을 세우기에는 최적의 입지였다.

 당시 도시계획상 공업탑 위치의 명칭은 '6호 광장'(4,500㎡)으로 표기돼 있다. 울산 최초의 도시계획은 1962년 5월 14일 결정 고시됐는데, 6호 광장은 7번국도와 공단을 직접 연결하는 문수로·수암로·봉월로가 교차하고 울산공단으로 향하는 모든 차량이 이 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당시 관점에서는 5·16 혁명정부의 치적을 홍보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도로기반만 갖춰졌지, 탑을 세울 무렵 공업탑 일대는 허허벌판이었다. 소정마을의 민가 몇 채가 있었을 뿐  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던 월봉2공구를 제외하면 전답과 임야 등 자연 상태 그대로였다. 중앙병원이 있는 일대도 70년대까지 배 과수원이 있었다. 70년대 말까지도 대공원 방향 광장 주위에는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1966년 말 울산의 등록자동차 대수 역시 525대에 불과했다. 그 당시 어느 누가 2023년 울산의 자동차 등록대수가 1,140배나 증가(59만9,266대)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1980년대 말 본격적인 자가용 시대가 도래하자 6호 광장은 자동차 통행이 어려워지고 교통사고가 빈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탑 주변 회전반경을 키우는 조치가 등장했고, 이어 교통 신호 시스템이 도입됐으며, 탑 때문에 교차로 방식 도입이 어려워지자 공업탑 철거 논의가 이어졌다. 

 

  교통·보행지옥 ‘악명 1위’ 공업탑

 공업탑 로터리를 평면교차로로 전환하면 목적지까지 빙 둘러가야하는 보행자의 이동 불편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 공업탑 로터리는 횡단보도가 로터리 외부로 이격 설치되다보니 이동동선이 과다하다. 이 때문에 보행자는 920m를 걸어야 해 평균 19분이 소요된다. 만약 평면교차로로 전환될 경우 이동동선은 330m, 이동시간은 7분으로 줄어들 수 있다.

 현재 전국 57개 로터리 중 신호체계를 운영하는 곳은 울산 공업탑 로터리와 태화로터리 단 두 곳 뿐이다. 이 중 '5차로형' 회전식 로터리는 공업탑이 유일하다.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18년 26건, 2019년 23건, 2020년 26건, 2021년 33건, 2022년 42건으로 최근 5년간 16건 증가했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 교통사고'도 총 43건이 발생(2021년 9월~2024년 9월)해 전국 교차로 중 1위를 기록했다. 

   부산탑 철거 반면교사 삼아야

 부산시는 직할시 승격을 기념해 1963년 서면로터리에 ‘부산탑’을 랜드마크로 세웠다. 하지만 이후 교통체증이 문제가 되자 1981년 지하철 공사를 위해 부산탑을 과감하게 철거, 평면교차로를 도입한데 이어 BRT(중앙버스전용차로)를 성공적으로 개통했고, 현재 트램을 구상하는 단계다.

 울산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로터리는 평면교차로로 운전자는 안전하게, 보행자는 편리하게 하는 교통체제로 전환하는 논의를 시작할 때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부산 서면로터리 이전 이후 '행방불명'된 부산의 상징 부산탑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당시 부산시가 부산탑 탑신 등을 분리해 박물관 수장고 등지로 보냈는데 한참 뒤 이 탑신 등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을 한 결과 박물관 뒷뜰에서 봤다는 증언이 나오긴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울산역사연구소 한삼건 소장은 "1967년 정유공장과 자동차 공장을 지으면서 불과 20년 뒤 시민 누구나 자가용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 못했던 것을 탓할 수도 없고, (그 당시 6호 광장에 세운 탑때문에) 교통에 방해된다고 탓하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다"며 "도시는 변화하기 때문에 마침내 트램도 도입하게 된 만큼 공업탑은 매일 수만대의 차량이 회전하는 교통섬 한 복판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건립취지문, 선언문, 치사문과 제2선언문까지 정성들여 새겼지만 우리 국민 누구도 공업탑 가까이에 가서 직접 만져보고 읽어볼 수 없기 때문에 탑의 가치나 상징성이 점차 옅어지고, 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애물단지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제 국민 누구나 가까이에서 공업탑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위치를 찾아서 이전한다면 공업탑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