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정치무협] 구금된 보수석열 우파재건 밀지

을사무림 탄핵대회전 -3- 강호 역사 첫 두령 구속후 민심 변화 좌성마방 직선공격 역풍 맞고 휘청 우파결집에 힘 얻은 용산, 비책 찾아

2025-01-19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삽화  배호

 

# 공수감찰 설계 양산문공 박장대소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보수석열이 배신동운의 손에 체포된 새벽, 걸래청래는 평산서가로 달려갔다. 이중재명에게 먼저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달랑찬대가 이미 좌성마방 두령실에 들어갔다는 전언이다. 걸래는 한참 하늘을 올려다 보더니 말 고삐를 남쪽으로 돌렸다. 양산문공에게 가야한다. 문공이 재인통부 시절 강남조국과 골몰궁리로 만든 공수감찰 덕에 보수석열의 체포가 가능한 것 아닌가. 경남경수를 불러 평산서가 옆 주막에서 질펀하게 한잔 올리는 게 후일을 위해 절묘한 행보라 생각 했다. 걸래청래가 누군가. 좌성나발계의 두령으로 계룡거사가 일찍 영웅이 올 징조를 가진 인물이라 걸래(傑來)의 호를 붙여준 인물 아닌가.  

 배신동운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한남신궁을 유린한 직후 서부재판소에 보수석열의 구금연장 인증을 받고 곧바로 내란수괴의 적멸증표를 신궁 앞에 걸었다. 강호 야전부대와 공수협객은 물론 치안포도의 수괴를 모조리 압송하고 무림감찰권을 움켜쥐었다. 

 일단 초반은 배신동운의 압승 분위기다. 일설에는 공수감찰 두령실에서 간헐적으로 동작나경과 울산기현, 강릉성동이 배신동운의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렸다는 설도 있었지만 일시경합에 단순분기 정도로 그쳤다는 후문이다. 

 촌선척마(寸善尺魔)의 기운이 좌성마방에 감돌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그 무렵이다. 걸래와 달랑이 공치사로 분주하자 좌성무사 무리 중에 발경발언이 난사했다. 견안지원(박지원)은 "걸희궁주도 끌어내라"고 고함을 질렀고 잔불행동 수괴라는 걸개를 건 백발민웅은 "보수석열의 목을 쳐라"며 잔불 열도를 부추겼다. 여기에 좌성마방 일부 석두들은 강호민초들의 통신접함인 가가오독(可假吾讀-카톡) 검열신수를 들고 나와 여론점검술로 보수부활을 뿌리부터 끊어야 한다고 야단이다. 이쯤되니 좌성마방에 구린내가 진동하는 분위기다. 

 보수석열 체포 이후 탄핵신공이 급소를 찌르자 좌성열도들은 흥분지수를 높였다. 임인년 춘삼월 강호대권을 간발지차로 내준 후 절치부심한 세월이 얼만가. 5년 수세로 대권탈환을 노리던 차에 특검신공으로 보수석열의 계엄자충을 유도해내지 않았나. 

 

# 계엄유발 진원 명태인가 좌성인가

 강호 평판가들은 보수석열의 계엄자충은 좌성마방의 스물아홉두 탄핵신공과 민석형제의 계엄구설, 달랑과 걸래의 걸희궁주 마타도어가 유도한 자승자박 신공이라 평했다. 걸희궁주의 특검잡수가 반복신공으로 목을 조이자 한남신궁에 어의무리가 연일 급파됐고 칠성산 신녀와 지리약방 약재도사들이 수시로 올라왔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결정타는 명태잡부의 육성단자가 강호에 퍼지는 시점부터였다. 영선할미의 여론조작 잡술이 명태잡부의 주도로 이뤄진 간계였음이 밝혀지자 한남신궁은 철문을 내렸다. 명태잡부가 창원감찰에 압송된 직후 걸희궁주는 통신단자를 아리수에 던졌다. 명태잡부가 누군가. 임인년 강호대권 직전이던 신축동지무렵부터 연줄이 닿아 수다잡담의 시절인연을 가진자 아닌가. 통신단자로 수다잡담이 늘어나자 명태의 교언영색술과 사이비점술은 지루함이 있었지만 선거철이 다가오니 여론지수 조작술이라는 특수권법으로 무장한 자를 내칠 수는 없었다. 

 동작나경이 대산의 열두비책을 전해온 시점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 명태잡부의 목소리에서 이상낌새를 느낀 걸희궁주가 동작나경을 불러 비책단자를 열었을 때 청포에 백색안료로 적은 비책은 딱 일곱자였다<수이책간우불용(數以策幹羽不用) - 대책을 거듭 올려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대산은 걸희궁주의 품성을 이미 읽고 있었다. 걸희가 미간을 찌푸리자 동작나경은 백색안료 옆줄에 청색으로 적은 작은 글씨를 짚었다. 바탕과 같은 색이라 미쳐 살피지 못했던 걸희는 자세히 청포를 더듬었다. <문졸속미도교지구야(聞拙速未睹巧之久也) - 졸지에 신속히 처리해야지 잔꾀로 오래 끌면 망조다.> 사태를 직감한 걸희궁주는 그날로 통신단자를 바꾸고 수다잡수도 중단했다. 명태잡부든 영선할미든 과거지사로 구설신술을 퍼뜨리면 시정잡배들이 과거지사로 출세지수를 삼겠다는 수작질이라 엄포하고 입단속에 열중했다.

 문제는 보수석열의 성급지수였다. 명태잡부가 석열의 강호시절 잡담잡설까지 녹취단자에 담아 재산목록으로 사용할 줄 몰랐던 터라 내상이 상당했다. 혼절과 분통으로 몇날을 보내던 차에 동료동훈이 걸희궁주의 특검잡수에 동조한다는 첩보가 오르자 분노지수가 극에 달했다.    

 

# 두령감금후 여론반등 우성마방

 아매리국 드런대공이 두 번째 두령에 취임하며 꼰대준표를 초청했다. 강호 무사 가운데 몇몇이 드런대공 초청을 받았다는 낭설이 돌았지만 실제 초청증표를 걸개로 건 자는 준표가 유일했다. 준표는 아매리국 비행선에 몸을 실으며 "드런이 나를 달구벌 두령 자격으로 불렀겠냐?"며 목청을 높였다. 멸공문수는 아매리국으로 떠나는 꼰대준표를 영상단자로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강호 두령 지지율은 이미 준표를 넘어섰다. 

 멸공문수는 공수감찰의 1호 구금처인 의왕별관으로 달려갔다. 보수석열이 옥중 밀지로 보수강호에 공수감찰의 좌성밀착설과 율법재판소의 좌편향성을 투쟁지침으로 올리자 전라좌성을 제외하고 팔도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호 우파 열혈 청년들의 봉기는 멸공문수의 사발통문(沙鉢通文)이 주효했다. 석열의 밀지는 감추고 통문의 익명성도 보장하는 절묘지수였다. 멸공문수는 석열 체포 직후 조사한 여론지수의 보고서를 들고 석열과 독대했다. 

 "좌성마방과 공수감찰의 협잡설이 사실로 확인되는 분위깁니다. 강호율법에 없는 공수감찰의 내란수사가 강호통부인 보수석열의 체포증표로 이어진 것이 보수결집을 이끌었다는 분석입니다. 무엇보다 청년 민심이 요동치는 것이 보수석열의 지지세 급등을 이끌었다니 이대로 가면 강호 절반은 탄핵반대로 돌아설 것이라 짐작됩니다.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강호 평판가들은 여론의 동향에 민감했다. 좌성나발에 얼굴을 알린 일부 평판가들은 보수석열의 결사항전에 민심이 동정여론을 보이는 일시 현상이라 폄하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상당수 여론이 보수석열 지지로 돌아서자 안구돌리기에 바빴던 단골나발 정치평판가들은 태도를 바꿨다. 얼마전까지 보수석열의 계엄신공을 잡수로 치부하던 이들이 돌연 "강호선출법으로 선발된 현직 대권두령을 망신잡수로 체포한 것은 공수감찰이 좌성마방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보여준 잡수"라며 새로운 논리를 폈다.

 멸공의 진언을 눈을 감은채 듣고 있던 석열은 보안을 의식한 듯 멸공에게 내이음(內耳音-귀속말)으로 속삭였다.

 "현중거사가 비책으로 내려준 황색단자를 미리 꺼내보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오. 지난 비책은 이미 소용 없으니 신첩비책을 받아보고 싶소."

 멸공은 눈을 질끔 감았다. 의왕별관을 나온 멸공은 곧바로 용산밀실로 향했다. 진석이 급전으로 보낸 전서구가 도착할 시간이다. 

 그 시간, 한남신궁에서 동작나경과 보수석열 비책단자를 살피던 걸희궁주는 흑룡이 승천하던 지난해 정월 현중거사가 석열에 전한 비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선수적부지기소공(善守敵不知其所攻)> 여덟글자의 비책은 은밀하고 치밀함을 적고 있었다. 아뿔사, 석열은 계엄신공을 준비하면서 현중거사의 비책단자를 미리 살피지 못했다. 동작나경은 석열이 놓친 현중의 비책 여덟글자를 들고 용산밀실로 향했다.<계속>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