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울산, 소설이 되다Ⅲ] 태화나루 명예살인 사건(7)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하여 여러 경로로 중인이 양반이 되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장사가 번창하거나 거래 수완을 발휘하여 양반이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하게 되었는데도 그를 여전히 중인이나 상민으로 대우할 수 있겠는가. 이미 사는 척도가 양반을 웃도는 시대에. 바로 그러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들이었다. 중인이거나 상민일지 모르나 부를 이루어 양반 못지않은 당당함을 추구하면서 가문의 자존감을 교육의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학습된 자존감은 가끔 과장되어 나타나는 때가 있다. 내가 그러하였듯이. 아무도 묻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일까지 미루어 짐작하고 스스로 역정을 내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양반의 아이가 우연히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진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본 어떤 중인 부모가 제 아들의 바지를 일부러 찢어 입고 돌아다니게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내가 견성민과 함께 온 사람들―응당 가족임이 분명한―에게서 받은 인상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자면 그들의 한결같은 표정이었다. 반듯한 차림새와 달리 너나 할 것 없이 온통 주눅 들고 긴장한 얼굴들은 이들이 개개인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보이게 했다. 그런 와중에 쉰 살은 넘어 보이는, 큰 체격의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포졸이 이를 창으로 막았으나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기에 더 이상 제지하지는 않았다. 견성민의 아버지였다.
"사또, 저는 저 포박당한 견성민의 아비 되는 자로 어제의 일을 소상히 전해 들었기에 고합니다. 제 아들은 결코 그의 누이동생을 죽이지 않았으니, 죄인이 아닙니다."
"아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자세히 설명해 보시오."
"황공하오나, 제 여식은 스스로 죽기 위해 강에 빠진 것입니다."
"스스로 빠진 것이 아니라 영감의 아들이 밀쳐 빠뜨리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럴 리 없습니다. 밀친 것이 아니라 밀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아들은 아마도 제 여동생이 물에 빠지는 순간 붙잡았을 것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밀친 것으로 잘못 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드님이 그리 말하던가요? 네가 아버님께 그리 말했느냐?"
견성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부인도 긍정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말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견성민의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그는 결연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무슨 해괴한 논법인가. 사람이 죽은 일을 다루는 중인데 그저 짐작으로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네."
"아니올시다, 사또. 제가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아들이 경황이 없고 겁이 나 두서에 맞지 않게 말하였으나 저는 분명히 알아들었습니다. 제 손으로 키운 자식의 말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나는 그가 말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보았다. 그 옆에 있는 여인들은 이미 들어올 때부터 사색이 되어있던 얼굴이 그나마 남은 귓불마저 빛을 잃고 돌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죽은 제 여식은 박복하여 첫 남편과 사별하고 개가하였으나 자식도 없는 데다 지아비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시집과 반목하였기로 소박맞고 돌아왔습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사악하고 게으를 뿐만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형제들과 다투기만 하니 집안의 화근이었습니다. 집에서도 그러한데 시집을 가서도 온전치 못하니 집안 어른 친지들은 물론이요 이웃한 사람들로부터도 가문과 마을의 수치이니 어디 동굴 사는 거지에게 쫓아 보낼 일이라 손가락질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온전하게 돌아와도 못할 것이 분명한데, 재혼에 소박맞고 돌아온 바에야 오죽하였겠습니까. 제 처지를 바로 보니 후회막급하며 장차 살길이 막막하니 오직 죽음으로 양가에 속죄하는 것이 도리라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격앙되고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대다수의 동행자들은 같은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견성민도 눈물을 흘렸다. 꿀꺽 소리가 났다.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