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울산, 소설이 되다Ⅲ] 태화나루 명예살인 사건(12)
견성민은 자백할 것 같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이나 사돈댁 식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생을 험담하고 마치 동생이 자살하였다는 본인의 말을 수긍하는 듯 보이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동생을 구원하지 않은 것이 마치 동생이 살려달라 외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것이 자살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 죽어가는 사람을 내팽개치고 달아날 수가 있느냐고 다그쳤을 때 역시 같은 말로 대항했다. '죽고자 했고 죽기 위해 뛰어들었기 때문에 구원하지 않았다.'
죽은 여인의 수려한 용모를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두 번이나 시집을 간 젊은 여성이며, 행실이 곱지 않아 소박맞고 친정으로 돌아온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간음하였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이를 완강하게 부정할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친지들이나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 가족으로서는 치욕적이고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죽이고자 할 만큼 분노를 유발했을 것이다. 산골 지방에 살고 있지만 유서 깊고 어엿한 가문의 자식이 만인이 공노할 죄를 저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인이 사실 여부를 따지고 묻는 가족들에게 고백하지 않았으니 정확히 누구와 간통하였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간통한 자가 드러났다면 이들은 그를 고발하면서 간통 사실이 드러나자 수치심에 여인이 자살하기에 이르렀다고 말을 바꾸었을 것이다. 견성민은 살인을 실토할 마음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마치 모여 있는 우군들에 휩싸여 오히려 심문하는 나를 위협하는 듯했다. 나는 평결의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서기를 불러 발사跋詞에 적을 내용이니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기록하라 명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오라고 했다. 오작인에게 시신의 얼굴이 드러나도록 부탁했다.
"죄인 견성민은 잘 들으라. 애초에 태화나루 진부 문순삼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남녀 한 쌍이 사공도 없이 스스로 배를 저어 강을 건너던 중 여인이 물에 빠졌는바, 남자는 이를 구원하지 않고 곧장 반대편으로 닿아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남녀가 사라진 배 안에는 돈 삼십 문文이 든 파란 베로 만든 작은 보자기와 흰 모시 베 다섯 자, 다리채 세 가닥, 겹저고리 한 벌, 해진 버선 한 켤레가 남아있었다. 여인은 일곱 길 물속에 빠졌는데 외상은 없고 손톱에 모래와 진흙이 끼어 있었던 것을 미루어 물에 빠져 죽은 것이 분명하다. 얼굴과 몸이 새하얗고 배가 부풀어 있음이 또한 법문의 익사체 참조와 일치한다."
자세히 듣기 위해 사람들이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포졸에게 적당한 거리만 유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인은 익사인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왜 물에 빠져 죽었는가이다. 함께 타고 있던 너는 한사코 누이동생이 자살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유가 불문명하고 증거 또한 빈약하다. 더군다나 네가 배 위에서 동생을 밀치는 것을 진부가 목격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나는 견성민과 진부를 번갈아 보았다. 견성민은 고개를 숙인 채였고 진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살하는 이가 돈 보따리는 뭐며 다리 체와 옷감, 그리고 해진 버선을 들고 배를 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죽고자 한다고 해도 그렇지, 제 혈육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이를 두고 갔더란 말이냐? 내가 법관이 아니라 인륜을 다루는 사람이면 다른 무엇보다 너의 그 사악하고 파렴치한 행동에 천벌을 내릴 것이다. 너는 시종일관 동생이 지아비와 반목하고 시집에 불통하며 고부간에 싸우고, 이도 모자라 간음한다는 소문이 팽배하다 비난하면서, 흠결이 온 세상에 알려지자 수치심을 느낀 여동생이 이를 자살로 보답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동생의 죽음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네 말대로 동생이 죽음을 원했고 친오빠인 너에게 죽음을 목격해 주기를 원했다면 그 죽음을 확인해야 옳은 것이 아니냐?"
견성민은 침묵했다. 가족들의 시선이 내게로 되돌아왔다. (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