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울산, 소설이 되다Ⅲ] 태화나루 명예살인 사건(14)

2025-03-25     강정원 기자
배호 그림

"그런데 동생이 자살한 것으로 믿게끔 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그 유서는 어디로 갔을까? 마지막 순간에 동생에게서 종이를 낚아채려 했지만, 동생이 움켜쥔 만큼 손에 남고 찢어져 버렸다. 너는 유서의 남은 부분을 급히 배 안에 던져놓은 다음 노를 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서는 원래 네가 의도한 대로 파란 보자기 속에 돈과 함께 고이 넣어 둠으로써 마치 자살하려는 사람이 상징적으로 뱃삯과 유서를 남기고 죽은 것으로 위장하려 했었는데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그리고 너는 황급히 달아나는 데 정신이 팔려 동생이 물에 빠질 때까지 붙잡고 있었던 종이조각의 행방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사또께서는 천리안이라도 가지셨습니까?"

말을 내뱉은 견성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냐? 하긴 네가 자백하지 않으니 내 말은 추론일 뿐이다. 하지만 너는 적어도 배에 남겨져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네가 동생을 대신해 쓴 유서임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유서가 발견되어 동생의 죽음이 자살로 추론되기를 바랐지만 마지막 순간에 종이는 찢어졌고 절반은 죽은 네 동생이 물로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네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유서의 절반은 애석하게도 배에 없었다. 바람에 날려갔던지 혹은 네가 동생을 밀칠 때 함께 손에서 떠나 공중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겠지. 너는 남아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잘 살펴서 찾아질 것을 바랐지만 배 안에는 없었다. 네 계획은 동생이 자살하기 위해 유품과 유서까지 들고 왔고 말릴 겨를도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고 진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서는 찢어져버렸고, 황급히 달아나는 중에 멀리서 뱃사공이 쫓아오는 것을 알았으며 강 건너에서는 아낙 두 명과 마주치기도 했다. 너는 집 근처에 숨어 상황을 재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유서 반쪽도 제대로 챙겨놓고 배에서 내렸는지 확신이 없었다. 배에 남겨둔 물건만으로는 '그것이 자살하려는 사람의 결정적인 유품이요'라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었기에 그 유서가 발견되는 것이 네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그 행방을 알기 위해 자수했고 그래도 발견된 것이 없음을 알고 난 후에는 혼란에 빠졌다. 너는 처음부터 '거기에 유서가 있었는데 보지 못하였소?'라고 말해도 되었다. 그러면 관아에서 사람을 동원하여 강을 수색하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네가 준비한 유서는 둘로 찢어졌으니 어느 쪽이라도 발견되면 왜 유서가 뜯기어 둘로 갈라졌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강물이 흐르며 자연적으로 파손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찢어진 모양이 심상찮음을 설명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배에 유서의 절반이 남아있는지, 혹은 동생의 시신이 유서의 절반을 쥐고 있는지, 어느 것도 확인된 바 없다는 사실이 너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래서 줄곧 그 행방을 묻고 찾았던 것이다. 관아에 와서 배 안에 유서 쪽지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확인했지만, 여전히 시신의 얼굴만 볼 수 있었으니, 손을 펴보고 싶었겠지. 어느 손이었는가? 오른손인가?"

나는 시신의 오른팔이 보이도록 명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다. 부어오른 망자의 손은 근육을 망각하여 그 어떤 것도 잡을 수 없다고 창백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던히 강을 뒤진 끝에, 네가 쓴 가짜 유서 한 조각을 강에서 찾아 저기에 말려 놓았다."

다시 포졸의 발아래 놓인 꾸러미를 방망이로 지적했다.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