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울산, 소설이 되다Ⅲ] 태화나루 명예살인 사건(15)

2025-03-27     강정원 기자
배호 그림

"그것이 네 동생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인지, 혹은 네 손에 남아있던 것인지는 차후에 살펴볼 일이지만 유서임을 유추할 수 있는 문구 몇 개는 알아볼 수 있다. 그밖에 배에 남겨진 물건들의 출처 또한 네 동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추리할 수 있다. 그 물건들은 네 동생이 친정으로 쫓겨올 때마다 들고 왔다가 놓아두었던 것들이다. 특히 낡은 버선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때가 낀 지 오래된 것을 쉽게 알 수 있음이니 원래 네 동생이 배 안에서 신고 있던 버선은 물에 빠져 몸부림칠 때 벗겨져 사라졌을 뿐 벗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물건들은 그저 자살로 보이도록 가져다 놓은 미끼에 불과할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 있어야 할 유서였는데 그것이 틀어지게 되자 너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것이 네가 자수하였음에도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지 아니하고 살펴보라고만 말했던 이유다. 너는 분명히 네 동생을 강에 빠뜨려 죽게 하였다. 거짓 유품을 흘려 조사에 혼선을 주려 했던 죄도 작지 않다."

"아닙니다. 사또, 제 아들은 살인자가 아닙니다. 결단코 제 여식이 스스로 죽은 것입니다. 굽어살피소서."

견성민의 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통촉해달라 호소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었다.

"잘 들으시오, 이것은 누구의 자식이며 어떤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문제요. 명백히 견조이는 익사했으며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배에 타고 있던 그의 오빠가 밀쳐 빠진 것이오, 그것만이 법이 말할 수 있는 전부요. 그리고,"

나는 서리에게 말의 요점을 적으라 일렀다.

"죄인 견성민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사돈댁의 사람들 모두에게 울산부사로서의 충언을 드리고 싶소. 견조이는 본디 행실이 곱지 못하고 사람들과 반목하며 간음을 일삼는 악녀로 소문나 있소. 이 역시 오늘 여러 사람들이 그리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여인의 인성을 달리 생각할 이유는 없소. 그러나 그러한 악행이 죽음으로 상쇄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요. 견조이가 행실이 나쁜 여성이기는 하나 구체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행실이 옳지 못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법은 없소. 간음하였다고 소문이 났다했는데 설령 실제로 간음하였다 해도 그것이 죽어야 할 죄가 되지는 못하니 이 또한 법으로 정해놓은 바요. 따라서 견조이가 죽어 마땅하니 스스로 죽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생각인 것이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명분으로 누이와 부인이 이처럼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법이 무엇이고 대체 그렇게 얻어진 명예란 무엇이오. 지금 견성민을 굽어살펴달라는 뜻은 인륜을 법에 호소하는 꼴인데 애초에 그 인륜이 그릇된 것이거늘 어찌 법에 양해를 구할 수 있단 말이요."

형방이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관아에 있던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시작했다. 견성민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 몇이 끝까지 참작해 달라 말하며 버텼다. 병사들이 이들을 완전히 해산시키기 위해서는 다소의 완력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서기에게 견성민을 정범으로 기록하고 언양현감에게 복검을 의뢰하는 서신을 보내도록 했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견성민은 말로 타일러서는 결코 자백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므로 초검결과와 언양현감의 복검결과를 각각 중앙의 관찰사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지금은 마음이 복잡하고 여운이 남아 평문平問에는 자백하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 견성민은 의외로 형문刑問을 당하면 이내 자백할 만큼 여린 사람이다. 형방에게 견성민을 하옥하고 견조이의 시신에 보초를 세울 것을 지시했다.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