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울산, 소설이 되다Ⅲ] 태화나루 명예살인 사건(16·끝)
4월 3일
아침을 일찍 시작했다. 언양현감 맞이에 소홀함이 없도록 지시했다. 복검에서 새로운 증거가 드러날 가능성은 적지만 살인사건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반복하여 살피고 세심하게 다루어야 한다. 언양현감도 이런 사건은 난감할 것이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체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익사한 것 외에 특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밀쳐져 강물에 빠졌다지만, 익사체에서 밀침을 당한 흔적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흉기나 막대로 찌른 흔적도 없고―그랬다면 몸 어딘가 멍 자국이 있을 터이다. 물에 빠지기 전에 범인의 얼굴이라도 할퀴어 손톱 밑에 혈흔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순식간에 물에 빠져 사망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언양현감의 경험이나 혹은 기지로 내가 미처 찾지 못한 증거가 발견될 수도 있다. 그러면 좋으련만.
오랜만에 반학헌 뒤뜰을 산책했다. 세상일과 무관하게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힘껏 팔을 벌리고 푸른 잎들을 키워내고 있다. 선배 관리들 추모비 앞에서 어제 일을 톺아보고 있을 때 누군가 곁으로 왔다. 업무지시를 끝내고 돌아온 형방이었다.
"분부하신 일은 모두 갖추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늦더라도 언양현감 모시고 오찬을 함께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밖에 구태여 되풀이하여 보고하지 않아도 될 일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런 다음 형방은 되돌아가도 되었지만, 몇 걸음 뒤에서 나를 따라 걸었다. 나는 뒤돌아서서 그만 사령청으로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또."
형방은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왔다.
"도저히 궁금하여 답을 듣지 않고는 못 배기겠습니다."
"?"
"어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그 증거물들을 추리하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만 특히 그 유서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질문에 응대했다.
"어찌 그가 유서를 써 왔는지를 알 수 있었나요? 대단하십니다. 눈치를 보니 견성민이 뭔가 덜미를 잡힌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예견한 대로 강물에 떠다니던 유서 조각을 용케도 발견하였으니 이 어찌 완벽한 추론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종이조각 말인가?"
"예, 그 유서 말입니다."
형방은 얼굴은 나를 보고 있으면서 손으로는 어제 우리가 모여 있었던 옥사 쪽을 가리켰다.
"알겠네, 종이.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증거품이니 잘 보관하고 있어야겠지. 그런데 말이야…, 일부러 물어보니 알려주겠네만 반드시 자네만 알고 있어야 하네. 사실은,"
형방이 고개를 숙이고 귀를 더 가까이 댔다.
"유서의 일부라고 말한 그 종이는 강에서 건져낸 게 아닐세."
"네?"
형방은 흠칫 놀라며 주먹으로 입을 가렸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신호 같았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내 눈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윽고 말했다.
"오오!"
형방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았다는 뜻이었다.
신시申時 무렵 동천과 태화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재첩 캐던 아이가 버선 한 짝이 떠내려온 것을 발견했다. 건져내어 흙탕물을 씻어내 보니 아직 새것처럼 보이는지라 갈대에 던져 걸쳐놓았다. 한 짝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가져가면 다른 짝과 맞춰 신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니 말린 다음 가져가기로 했다. 재첩을 다 캐고 나서 마무리로 멱을 감고 아직은 차가운 강에서 나와 집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돌아가다가 버선 말려놓았던 일이 생각나 얼른 돌아가 집어 왔다. 거의 다 마른 버선 한 짝을 뱅뱅 돌리며 집으로 향했다. 누나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재첩보다 더 좋았다. (끝)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