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혐오가 범죄로···울산 선거벽보 훼손 잇따라

특정부위 구멍에 담뱃불 흔적 등 경찰, 훼손 신고 11건 수사 중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4명 입건 20대 대선 대비 2배 이상 증가 위법 행동 인식 약화 등 원인 지적

2025-05-20     강은정 기자
20일 울산 중구 성남동 버스승강장 옆 펜스에 설치된 대통령 선거벽보와 함께 훼손 주의를 알리는 선거벽보 주의문이 같이 게시돼 있다. 이수화 기자

6.3 대선을 앞두고 울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선거벽보 훼손이 지난 대선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선거 때만 되면 발생하는 벽보 훼손이지만 이번 선거에선 단순한 장난을 넘어 정치적 감정을 담은 듯한 사례가 포착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선거벽보가 설치된 이후인 16일부터 19일까지 18건의 선거벽보 훼손 신고가 접수돼 11건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

신고된 내용 중 6건은 바람과 자연적 요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오인신고 1건이 있었다.

경찰은 11건 중 3건에 대한 훼손한 행위자 4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붙잡았다. 이들 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훼손된 벽보는 후보의 얼굴 특정 부위가 구멍이 나있거나 찢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담뱃불로 지진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8건에 대해 CCTV 영상 등을 확보해 자연적 훼손인지, 인위적 훼손인지를 파악하고 있다.

선거벽보 훼손 행위는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4건 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더욱이 이번 대선은 6월 2일까지 집계가 계속되는 만큼 최종 수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전국적으로도 18대 대선 당시 벽보, 현수막 훼손 혐의로 180명 검거됐는데, 19대 대선에는 645명이 검거돼 3.5배 가량 늘었고, 20대 대선에서는 850명이 붙잡혀 18대 대비 5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가 증대되면서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정데이터조사센터 박준 연구위원이 발표한 '정치양극화 수준의 국제비교와 시사점'에서는 당파적 혐오가 강할수록 상대진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선거과정에서 불법적 수단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결국 선거 벽보 훼손은 정치 양극화로 인한 대립으로 인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벽보나 현수막을 훼손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울산시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벽보 훼손 사례를 보면 도구를 이용해 눈과 안경 부위를 잘라내거나, 담뱃불로 눈, 코, 볼 부분을 지졌다"며 "개인의 의견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선거질서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선거벽보나 현수막 훼손이 위법 행동이라는 인식이 약화돼있다는 것도 문제적으로 지적됐다.

울산대학교 도수관 행정학과 교수는 "반복되는 훼손 행위는 '이정도 행동은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라며 "이를 그냥 넘어가거나 방치하면 시민들이 선거 벽보를 훼손하면서 의사 표출의 수단으로 느낄 수 있어 제재가 필요하다. 강력한 처벌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울산경찰청은 선거벽보 훼손은 공정 선거를 방해하는 중대 범죄로 보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선거벽보 등의 훼손행위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방해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공명선거 구현을 위해서는 경찰 수사뿐 아니라 불법적인 선거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신고와 제보가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선거벽보 또는 현수막을 무단 훼손할 경우 공직선거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강은정 기자 kej@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