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전 바위 속 동물과 떠나는 신비한 시간여행
[암각화, 울산예술로 꽃피우다] (3)김섭 울산대 미술학부 명예교수 울산대 미술학부 초대 교수로 첫 인연 문화현장 다니며 ‘반구대 암각화’ 접해 고래 등 동물 형상 모티브 시간여행 시리즈 입체적 표현·동화 같은 그림 이야기 ‘호응’ "많은 작가 자유롭게 해석 널리 알려주길"
"처음엔 반구대 암각화가 뭔지도 몰랐죠. 막상 시도해 보니 제 그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요."
김섭 울산대 미술학부 명예교수의 화폭에는 암각화에서 시작된 '시간여행'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수천 년 전 바위에 새겨진 동물의 형상들이 동화 같은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있다.
김섭 전 울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는 반구대 암각화와 마주한 뒤, 삶과 감정을 담은 새로운 회화 세계를 펼쳤다.
암각화와의 인연은 울산에 오면서부터 시작됐다.
김 교수는 1998년 울산대 미술대학이 생기면서 초대 교수로 울산에 내려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암각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울산에 처음 왔을 땐 반구대 암각화가 뭔지도 잘 몰랐어요. 초창기에는 '인간의 조건'을 주제로 교육, 사랑, 종교 같은 주제를 다룬 작업을 하고 있었죠. 암각화는 제 화풍과는 거리가 있는 줄 알았어요."
테마가 바뀔 때마다 작업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김 교수의 창작 작업의 특성이다.
그런 그에게 암각화는 천천히, 그러나 깊이 스며들었다. 울산에서 여러 문화 현장을 다니던 중 반구대 암각화를 접했고, 처음 암각화 현장에 갔을 때 형체가 잘 보이지 않아 직접 사진을 찾아보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 본 고래, 사슴, 호랑이 같은 동물 형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칠고 원시적인 선 속에 담긴 고대인의 감정과 의도가 마치 작은 이야기들처럼 다가왔다.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의 시리즈가 그렇게 탄생했다.
암각화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이를 모티브 삼아 화면을 다채롭게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김 교수는 아크릴 물감에 양초를 섞어 바위 질감을 만들었고, 수성이 스며들지 않도록 처리해 화면에 생명감을 더했다. 선 드로잉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감정과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담았다.
애정, 유혹, 편견, 교만 같은 감정을 직접 말로 표현하는 대신, 하트나 나무, 구름, 달 같은 상징을 써요. 고래, 멧돼지, 사슴, 호랑이 등 암각화 속 동물들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죠"
울산지방검찰청 신축 당시, 암각화 대작을 의뢰받은 경험은 전환점이 됐다.
김 교수는 울산지검이 새 건물로 이전하면서, 암각화 관련 대형 작품을 요청받았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작업을 통해 암각화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기존의 제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이후 대도시 호텔에도 걸리게 됐고요. 특히 호텔 로비에 걸린 그림은 베이지 톤으로 편안하게 표현한 게 사람들 마음에 닿은 것 같아요."
김 교수는 암각화를 중심 주제로 삼진 않지만, 기존 작품 속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고 말한다.
"처음엔 전혀 맞지 않는 줄 알았던 암각화가 오히려 작업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어요. 제 작업에 다양한 생명력을 더해주고 있죠."
그는 더 많은 작가가 암각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보길 기대하고 있다.
"암각화가 너무 거창하고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고증할 필요까지 없고 작가마다 자유롭게 풀어내다 보면, 울산의 자랑인 반구대 암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