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성장을 멈춘 그린수소 생태계

韓 그린수소 경쟁력 후퇴 … 수소 선도국 위기 세계 각국 탄소중립 실현 막대한 투자 이어져 정부 차원 지원 서둘러 에너지 다변화 이뤄야

2025-10-14     이동구 울산대학교 초빙교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디지털혁신 U포럼 위원장·공학박사
이동구 울산대학교 초빙교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디지털혁신 U포럼 위원장·공학박사

   미래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H2)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는 나만의 기우(奇遇)일까. 2020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소산업특별법을 통과시켰으나,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그린수소 분야에서 유럽에 주도권을 내주는 등 경쟁력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하여 생산하는 수소를 말한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수소 선도국가였던 한국이, 이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이 뒤처지는 사이, 경쟁국들은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그린수소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연간 그린수소 1000만톤 생산을 목표로 수전해 설비 확충을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2.2GW 규모의 수전해 설비를 마련해 청정에너지 생산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중국은 전국에 대형 그린수소 플랜트를 구축하는 '수소산업발전장기규칙'을 수립했다. 반면, 한국은 민간기업 중심으로 소규모 생산 설비가 설치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그린수소 생태계는 성장을 멈췄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9,000만t이던 전 세계 수소 생산량은 2024년엔 1억t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수소연합에 따르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수소 생산량은 250만t 내외에 머물렀다. 전체 수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수준인 셈이다. 

  다들 기억하시는가. 울산은 남들보다 한발 앞서 2019년 2월에 수소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찬 선언을 하였으나, 현재 상황은 인프라 구축 등 후속 수소 생태계 조성 속도가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최근 충청남도의 행보가 돋보인다. 이(李) 정부 들어,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에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서해안 수소산업 벨트' 구축을 선언한 충남이다. 충남 서해안 일원에는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의 절반이 밀집해 있다. 이곳에 수소 생산부터 저장, 활용까지 국내 최대 수소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탄소배출 전국 1위의 오명(汚名)을 안고 있는 충남을 글로벌 수소 허브로 탈바꿈시킨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충남은 2030년까지 약 11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서해안 수소산업 벨트는 수소산업 기반 조성을 통한 에너지 전환과 산업 고도화 등을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주요 전략은 청정수소 생산 확대, 수소산업 생태계 조성, 친환경 수소도시 구축, 수소 전문기업 및 인력 양성 등이다. 2040년까지 수소 120만t 생산, 수소 혼소·전소 발전 20GW, 수소도시 10개, 수소 전문기업 200개, 수소차 5만 대 보급, 수소충전소 180개소 340기 설치 등 구체적 목표도 세웠다. 2030년대가 되면 그린수소 생산량이 급증할 것이다. 유럽과 중국, 미국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나 오만·이집트 등 신흥국들도 앞다퉈 수전해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설비 규모는 지금보다 적어도 4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한때 수소경제의 선도자로 여겨졌던 한국의 존재감은 크게 약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수소는 대부분 천연가스로 생산되는 그레이수소여서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다. 전기차 부상으로 수소경제의 초점이 모빌리티에서 연료전지 발전과 산업용 수소로 옮겨갔는데도 정책 전환을 과감하게 하지 못한 탓이다. 제주 등에 있는 국내 그린수소 생산 플랜트는 모두 10㎿ 이하의 소규모 실증 설비에 불과하다. 최근 정부의 수소산업 예산 역시 3,000억원 내외로 매우 소소하다.

  수소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에너지이며 선박, 비행기, 대형 트럭 등의 핵심 연료가 확실하다면, 정부 차원의 강력한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제철소과 같은 대형 수요처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그린수소 생산·소비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에 태양광·풍력 기반 전력 공급이 어렵다면, 원자력발전소를 활용한 핑크수소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시대적 과제인 탄소중립에 대처하고 AI 시대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탈(脫)화석연료와 에너지 다변화가 가장 절실하다. 이동구 울산대학교 초빙교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디지털혁신 U포럼 위원장·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