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다시 부르는 이름, 힐마 아프 클린트
힐마, 유언으로 사후 20년간 작품 봉인 이유 알고자 부산현대미술관 전시 찾아 단순 봉인 아닌 성숙 · 수용 · 연결의 시간
사후 20년 동안 내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지 말라.
1944년 10월, 82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뜬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가 상속자인 조카에게 남긴 유언이다. 화가의 유언에 따라 특별한 표식이 붙은 추상화들은 조카의 집에 수장돼 20년 동안 세상으로 나오지 않게 된다.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데, 왜 화가는 스스로 그 기회의 시간을 봉인했을까. 답을 듣고자 가을 빗길을 달려 부산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186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 근교에서 태어났다. 당시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진학하며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힐마는 초상화·풍경화를 그리며 스톡홀름의 수의학 연구소에서 삽화가로 일했다. 하지만 여동생의 사망 이후 깊은 상실감으로 영적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동료 여성들과 함께 5인회를 결성해 초월적 존재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자동 기법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1906년 최초의 추상화 ‘신전을 위한 그림’ 연작이 나온 배경이다.
힐마는 현상 너머의 보이지 않는 질서와 감각 너머의 세계에 천착하며 추상이라는 새로운 예술 언어를 개척하고 신지학에서 받은 영감을 기하학적 형태와 상징적 색채로 작품에 반영한다. 신지학은 19세기 후반의 유럽에서 형성된 종교와 철학, 과학적 전통의 종합을 시도한 사상 체계로 힐마의 작품에 이론적 배경과 작품의 주제, 구성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원, 나선, 삼각형, 십자, 나선형의 상징과 형태는 자연과 우주의 상징이며, 대형 캔버스에 담은 시리즈 작업은 진화와 조화, 통합을 의미하는 우주적 서사를 담고 있다. 또한 작품에 사용한 색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영적 진동과 에너지의 파장으로 해석되며 화가의 추상 세계를 견고히 구축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21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를 손꼽고 칸딘스키가 1911년에 처음 추상화를 그렸다고 알려졌지만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 상당수가 이들보다 5년 앞선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상속자였던 조카가 힐마 사후 20여년이 지나 1970년대에 수천 점의 드로잉과 그림을 작가의 이름을 딴 재단에 기증했고, 한 미술사학자의 노력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의 예술은 드디어 1980년대에 국제적으로 소개됐다. 그때부터 비로소 ‘칸딘스키보다 앞선 추상화가가 있었다’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힐마는 당대에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왜 굳이 유언을 남기면서까지 그 시기를 늦췄을까?
여기에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힐마는 형상 중심 표현이 주류였던 당시 예술계의 관념으로는 영적이고 추상적인 자신의 작품이 이해받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둘째, 힐마는 자신의 그림이 영적인 존재들이 전달한 메시지라고 여겼기 때문에 작품의 공개 시기도 관객에게 수용 가능한 적절한 때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셋째, 힐마는 자신의 추상화가 ‘신지학과 영성에 심취했던 여성 화가의 신비주의적 취미’ 정도로 폄하될 위험을 느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힐마 아프 클린트:적절한 소환>이다. 회고나 재조명이 아닌 ‘소환’이다.
‘적절한 소환이라는 제목은 과거의 예술가를 지금 다시 불러내는 일이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신중한 사유와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환은 작가에 대한 단순한 재조명을 넘어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감각하는 행위를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말이다.’ 미술관의 적절한 해설을 읽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힐마가 기다린 20년은 단순히 봉인의 시간이 아니라 성숙과 수용, 연결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철새가 날아드는 을숙도의 미술관에서 다시 부르는 이름, 힐마 아프 클린트. 지는 해를 등지고 하굿둑을 넘어 울산으로 차를 몰며 생각한다. 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강이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