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남산은 초조하다
사계절 풍경 간직 남산서 연립주택 공사 공원 일몰제로 개발 가능한 사유지지만 훼손된 자연환경 회복 쉽지 않아…재고를
태화강 남쪽에 낮고 너른 산, 남산이 있다. 남산은 동서남북 네 방위 중 남쪽에 있어 얻게 된 흔한 이름으로 많은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산이지만, 그런 의미로 지역 지리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지역사의 좌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남산은 문수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으로 무거동, 삼호동, 옥동을 거쳐 신정동까지 뻗어나간다. 높이 120여m의 아주 낮은 산이지만 12개의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며 산자락에 기대 사는 주민들에게 산의 생기를 골고루 나눠준다. 그리고 태화강 동굴피아에서 시작해 선암호수공원에서 끝나는 솔마루길의 시작점이기도 해서 봄가을이면 가벼운 트래킹을 즐기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향한다.
남산 은월봉 아랫동네에 사는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남산을 오른다. 등산이 목적은 아니다. 작업실이 있는 옥동으로 가기 위함인데 남산을 가로질러 가는 게 빠르기도 하지만 사계절 내내 극적인 자연 풍경을 보여 주는 남산을 걷는게 몹시 즐겁기 때문이다. 정해진 출근 시간이 없다 보니 은월봉을 타고 넘는 최단 거리 대신 산허리를 타고 크게 도는 오솔길을 골라 느린 걸음을 옮긴다. 교토와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 부럽지 않을 만큼 호젓하고 아늑한 길을 따라 걸으며 작품 구상도 하고 걷기 명상으로 마음도 챙기며 가을을 지났다.
낙엽이 마른 땅을 덮으며 남산도 겨울나기에 들어가느라 소리 없이 분주한 어느 날, 오솔길 위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굴착기 한 대가 경사진 마른 땅을 헤집으며 길을 만들고 있었다. 오솔길과 샛길은 이미 충분했고 공무수행 차가 다닐 길이 필요한 곳도 아니었다. 변고와도 같은 상황에 화들짝 놀라 둘러보니 신정동 뒤쪽에서 올라오는 산길을 이쪽저쪽으로 헤집으며 산 깊숙이 터를 넓혀 놓은 상태였다.
익숙한 오솔길을 놓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한 밑동에서 일곱 가지가 사방으로 자라나 지나는 이들의 사랑을 받던 칠 형제 나무도 굴착기의 삽질에 고립돼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며칠 새 범위는 더 넓어져 마치 남산의 자락 한쪽을 파먹어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맨발 걷기를 하던 주민들이 혀를 차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이 공원 일몰제로 개발 제한이 풀린 사유지여서 연립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도시 계획상 공원으로 지정된 부지를 20년 이상 집행하지 않으면 지정이 자동으로 해제되는 제도로 2000년부터 실효가 적용돼 소유주에게 그 권리가 돌아가는 제도다.
훼손되는 남산을 손 놓고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으려니 우려되는 바가 크다.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라지만, 자연환경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도심의 산은 남은 땅이 아니라, 도시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자연 기반이기 때문이다. 도심의 산은 작은 생태계다. 숲과 흙, 계절의 순환 속에서 새와 곤충, 작은 동물들이 살아간다. 이 공간이 끊기면 생물들은 설 자리를 잃고, 한 번 단절된 생태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또한 도심 산은 우리가 함께 쓰는 자연 자산이며 인공 환경과 자연을 이어주는 완충 공간이어서 이 공간이 사라지면 도시는 더욱 밀폐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도 줄어든다. 남산은 대체 가능한 자원이 아니다.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저서 <초조한 도시>에서 "초조한 도시는 어느 정도의 관음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망원렌즈로 멀리서 도시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저 안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바위산을 험악하게 깎아 내서 생긴 절벽 바로 앞에 지어진 아파트는 멀리서 보면 살풍경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녹음이 우거지던 남산 자락이 살풍경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몹시 초조하다.
물론 사유재산권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남산은 개인의 소유를 넘어 공공의 삶과 직결된다. 오늘의 결정은 오래 남고, 그 결과는 되돌리기 힘들다. 더 늦기 전에 재고가 필요하다. 강이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