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달고나 체험
두 손자와 장생포 찾아 달고나 만들기 체험 어릴 적 조각 쟁탈전 벌이던 친구들 떠올라 이 시간들도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해주길
방학을 맞은 손자들과 장생포를 찾았다. 울산 12경인 장생포가 여러 콘텐츠를 꾸미고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중 고래 문화 마을은 고래마을의 산실답게 입구부터 고래 형상으로 치장되어있다. 관리 사무소의 지붕을 비롯하여 안내하는 조형물들이 모두 고래 모양이다.
손자들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만져보고 신기한 듯 모르는 것들을 물었다. 전당포가 뭐하는 곳이며, 곤로는 뭐하는데 쓰는 물건이냐고 물었다. 달고나 만드는 곳에서는 눈이 반짝거렸다.
아이들이 달고나를 만들어 보겠다고 설탕을 담은 국자를 받아 연탄불에 올렸다. 설탕이 녹으면 소다를 넣고 부풀려 스텐판에 부어 모양이 그려진 도구를 놓고 찍으면 된다. 쉽지 않았다.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넣는 게 적당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녀석들의 성격이 여기서 다 드러났다. 성격 급한 큰손자는 국자를 들었다 놨다 했다. 설탕이 빨리 안 녹는다고 야단이다. 욕심 많은 둘째 녀석은 소다를 많이 넣어 색이 짙은 똥과자가 되었다. 결국은 하다가 못하겠다며 나보고 하란다. 나는 어린이가 되어 만들기에 나섰다. 달고나 만들기는 적절한 기다림과 조절이 필요하다. 설탕이 녹기를 기다려야 하고 소다도 알맞게 넣어야 실패하지 않는다.
특히 식기 전에 찍어야 한다. 녀석들이 하트, 세모, 고래, 달 모양을 들고 서 있다. 체험 삼아 찍어 보랬더니 큰애는 모양이 나오지 않고 들러붙었다. 둘째는 만지면 금방 부서질 것 같았다. 책상 위에 올려 이쑤시개로 침을 발라가며 모양을 파냈지만 깨졌다. 고래 모양을 만들려고 했던 녀석이 삐죽삐죽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 다시 한 판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고래가 예쁘게 찍혔는데 모양을 어떻게 파내야 할지, 정성을 다해 보라고 했는데 또 실패를 했다.
어릴 적. 학교 앞에 달고나 리어카가 있었다. 연탄불 앞에 일명 ‘뽑기’ 아저씨가 있었고 우리는 설탕을 녹여 소다를 넣고 달고나를 만드는 아저씨의 손놀림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전혀 부서지지 않고 만들어내는 아저씨의 손이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굳기 전에 뜨거운 달고나를 손에 들고 모양을 완성 시키려고 집중했던 친구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봤다. 망가진 달고나 한 조각을 얻어먹을 속셈도 있었다. 모양을 완성하면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젖 먹던 힘까지 보태 집중하다 실패하면 안타까워하던 모습, 달고나 조각 쟁탈전을 벌이던 친구들의 천진난만한 얼굴들이 손자들을 보니 되살아났다.
그 당시 달고나는 1단계는 달, 2단계는 나비 3단계는 별 모양이었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졌다. 그에 따라 단계별로 상품 가지 수가 달라졌다. 리어카에는 놀이 장치가 트레이드마크처럼 있었다. 상품이 걸린 원형 판을 돌리면 화살을 던졌다. 돌아가다가 화살이 꽂히면 판이 멈췄다. 화살이 꽂힌 곳에 적힌 상품을 받는데 주로 꽝이 나왔다. 지금 같으면 사행성 놀이로 아이들 코 묻은 돈 떼어 간다고 잡혀가고 뉴스에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별문제가 없었다. 달고나도 먹고 상품도 받는 방식이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달달한 달고나도 소다를 많이 넣으면 쓴맛이 나고 만드는 과정에서 깨어지면 실패를 한다. 처음 하는 일은 잘 안될 수도 있다. 계속 도전하다 보면 조금씩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 달고나 만들기에서 얻은 교훈인데 손자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반세기 넘게 흘러갔지만 유년 시절의 추억은 박제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때의 어린이가 숙녀가 되었다가 두 아이의 엄마에서 이제는 네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다. 어린 손자를 데리고 장생포에 와서 달고나 체험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손자들이 할머니와 달고나 만들기 체험을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해주기를 바라며.
조정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