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삼국지 학교

방학동안 아이와 삼국지 대장정 인내 등 삶의 결 채울 교훈 얻어 학교서도 다양한 교육 제공되길

2026-02-19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겨울 방학을 맞으며 이제 6학년 올라갈 아이와 약속을 했다. 무언가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는 하자고.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아이는 답이 없었다. 돌아보면 나도 그 나이 때엔 뭔갈 딱히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지는 않아서 일단 조금 기다렸다.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답을 찾지는 못한 모양이었고 아이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대신 일주일째 손에서 내려놓지 않은 스마트폰에서 ‘챙, 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만들고 있던 스틱 맨 영상에서 나는 소리였다.

 막대기 모양의 사람(=졸라맨) 둘이서 칼싸움을 하는 영상인데 아이는 그것을 참 열심히 만들고 제 계정에 올리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림이었지만 칼싸움의 기술은 제법 현란했고 활처럼 휜 칼도 관우가 들었다는 청룡언월도가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날렵했다.

 영상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엄마랑 같이 삼국지 읽는 거 어때?"라고 물었다. 마침 근처 작은 교습소에서 초등학생 대상 ‘삼국지 완독반’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책은 읽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정말이지 더 이상 입을 댈 수 없는 명확한 이유였지만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스마트폰과 유튜브 속에서 살아갈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지켜볼 자신이 없어서 아이를 설득했다.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 요컨대 이런 것. 게으른 엄마가 방학 동안 빈둥거리면서 침대에만 누워있으면 허리도 아파지고 어깨도 아파질 텐데, 네가 엄마랑 같이 책을 읽어준다면 엄마가 일찍 일어나 움직일 이유가 있으니 아프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지 않겠냐는. 성공이었다. 이 어설픈 설득에도 아이가 꽤나 흔쾌히 응해 준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긴 겨울 방학을 그냥 보내는 게 아까웠던 게 아닐까.

 하루 4시간, 3주 동안의 삼국지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스마트폰 속 스틱 맨의 칼싸움은 이제 유비 삼형제의 의리로, 제갈량의 지혜로, 적벽대전으로 그 세계를 넓혀 갔다. 복숭아밭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형제의 의를 맺고 한날한시에 죽기로 맹세하는 도원결의의 내용을 보며 진정한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저렇게 마음을 합치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해 초등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했다. 물론 초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연환계의 지혜를 읽기보다는 초선이 얼마나 예뻤을까에 더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제갈 선생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하는 유비의 모습에서 인재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를,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에서 병력 차이가 심하게 나는 상황을 이겨내는 판단력과 협력의 중요성을, 관우를 잃은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보인 감정적 동요가 전세에 미친 영향 등을 생각해 말하거나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이를 보다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왜 조조는 여백사를 죽였을까? 너무한 것 아닌가? 여포처럼 저렇게 상황 바뀔 때마다 처신이 달라지는 삶을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방통이 잘 생겼다면 제갈량보다 유명했을까? 등의 끊임없는 질문은 아이가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줬을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굵직한 고민도 물론 던져줬을 것이고.

 이름과는 달리 10권이나 되는 삼국지를 ‘완독’하지는 못했지만 완독에 대한 의지는 충분히 심어줬던 3주였다. 책을 한꺼번에 여러 권 사면 읽는 데 부담이 되니 한 권씩만 사자고 말하는 아이는 제갈의 전략을 이미 제 삶에서 써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중국집에 갔더니 벽에 수염이 긴 장수가 커다란 칼을 들고 앉아 있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아이가 "미염공이다"라고 바로 말한다. 그리고 가만히 보더니 얼굴이 대춧빛이 아닌 걸 보니 관우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도 한다. 한참을 웃다가 생각해 본다. 이런 교육을 왜 사비로 해야 했을까. 왜 정규교육과정 안에는 없는 걸까.

 우리 교실 속의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짧은 영상과 단편적인 정보와 무의미한 반복의 재미에 익숙해지고 있다. 타인의 이야기나 세상의 흐름에 대한 관심도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갈등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힘도 약해져 간다. 국어 영어 수학의 중요성은 여러 수십억 번 이야기하지만 유비의 인내, 제갈량의 통찰, 마속의 실패가 주는 교훈을 배울 기회는 없다.

 물론 꼭 삼국지여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시간의 거친 파도를 이겨낸 ‘고전’들을 비롯해 삶의 결을 생생하게 채우고 있는 좋은 책들이 넘치도록 많다. 그 좋은 책들을 아이들 스스로 읽고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학교가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다행하게도 내가 근무하는 특수학교는 입시의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덕분에 교육의 ‘본질’에 대해 더 고민해 실천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특수교육의 본질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색채를 찾아 세상 속에서 스스로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키워내는 데 있다.

   우리 아이들이 도화 만발한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삼국지’를 읽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굳게 세워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것이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