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다자녀’가 ‘스펙’이 되는 사회를 꿈꾸며
인구정책 ‘장려’에서 ‘보장’으로 전환 경력 공백 아닌 ‘표준 경로’ 인정하고 지속가능한 출산·양육 지원 설계 절실
한 지인의 이야기이다. 지인의 딸은 1997년 최초로 금녀의 벽을 깨며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여생도로,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했고 중위 시절 그의 후배이자 부하였던 소위의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 후 둘이서 삼 남매를 낳아 기르는 10년 동안 부하였던 남편은 계속 진급해 아내의 계급을 뛰어넘었고, 아내는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데 전념했다.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역시나' 아무리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여성일지라도 결혼하는 순간 본인의 화려한 인생은 반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세월이 흘러 '다자녀'가 나라에는 '충(忠)'이요, 부모에는 '효(孝)'가 되는 저출산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한민국 공군은 '다자녀'라는 공적을 인정해 아내에게 '특진'이라는 포상을 주면서 대반전이 생긴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지인의 자랑스러운 딸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아까운 능력과 인생을 허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지만 안타까운 내 마음을 한 방에 날려 준 통쾌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정부는 수년째 출산율 반등을 외치며 각종 장려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숫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출산을 꺼리는 것이 아니라, 출산 이후 감당해야 할 '실패 비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구정책은 출산을 하나의 '선택'으로만 다룬다.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현금 지원을 늘리고, 혜택을 나열하지만 실제 출산 결정의 순간에 작동하는 것은 혜택이 아니라 '리스크'다.
임신과 출산, 양육 과정에서 경력이 단절될 가능성, 소득 공백, 돌봄 실패 시 감당해야 할 개인적 손실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출산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는 여전히 '개인의 선택'으로 취급된다. 육아휴직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경력 손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휴직 이후의 보직, 승진, 평가에서 불이익이 발생하는 현실을 노동자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비록 제도는 있으나 현업 복귀 실패의 책임은 개인이 떠안아야 하니까 출산을 고위험 '투자'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인구정책의 방향은 장려가 아니라 '보장'으로 전환돼야 한다.
출산을 선택했을 때 실패하더라도 개인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일정 기간의 경력 이탈을 '경력 공백'이 아닌 '표준 경로'로 인정하고, 복귀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복지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설계의 문제인 것이다.
또 하나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대부분의 출산·양육 지원 정책은 단년도 사업이거나 시범사업에 그친다.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정책을 전제로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가구는 없다. 출산과 양육은 최소 20년을 내다보는 결정이므로, 정책 역시 그에 상응하는 연속성을 보장해야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산이 아니라 정책의 관점 전환이다. 출산율이라는 결과 지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출산 이후 이탈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실패 비용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장려책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저출산 문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젊은 부부들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라고 묻는 대신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 준비가 됐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희자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