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업 자구 노력+정부 선제 지원 ‘투트랙 전략’ 펼쳐야
[위기의 울산 석화업계, 지금이 ‘골든타임’] (하) 속도감 있는 맞춤형 지원 절실
가뜩이나 위태롭던 석유화학 업계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로 벼랑 끝에 섰다.
고공행진하는 국제유가로 원료값이 치솟으면서 원가 부담이 확 늘어난데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나프타(naphtha·납사) 수입마저 차단돼 공급망 리스크라는 악재까지 추가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석유화학 핵심 원료인 나프타를 ‘경제안보품목’으로 한시 지정한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이미 체력이 고갈된 석유화학 업계에선 기업의 자구노력과 동시에 정부의 선제적 지원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시급하다고 절규한다.
산적한 현안 중 당장의 시급한 문제는 나프타 공급망 위기로 업계 어려움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국내 나프타 수요의 54%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나프타 가격은 1년 전보단 35%, 1개월 만에 50%나 급등했다. 실제 이달 들어 나프타 가격은 t당 1,009달러 수준까지 급등했는데, 이는 작년 3월 중순(t당 575달러)보다 2배 가량 오른 가격이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나프타를 통해 플라스틱 원료가 되는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기초 유화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나프타 가격 상승은 곧 유화업종 수익성 악화로 연결돼 여수·대산·울산석유화학단지 입주기업들의 고민이 크다. 최근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 기지인 여천NCC가 나프타 수급 차질로 인해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며 비상 상황에 돌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한 ‘구조적 이중고’에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하고 나프타 가격이 급격히 오른 상황에서도 정작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제품 가격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폭락해 팔면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역마진 구조가 고착화 돼있는 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수·대산을 중심으로 이미 한계 사업 부문을 매각하거나 비주력 사업 철수를 공식화하는 등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사업 포트폴리오의 전면 재편에 나서고 있다. 희망퇴직과 인력 재배치 등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지역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울산 역시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면 여수·대산과 같은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높다”라며 “정부는 기업이 자력으로 체질을 개선하라고 요구하지만, 이미 생존위기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는 느낌이다. 중국발 구조적 불황으로 체력이 거의 소진된 상태인데, 고유가라는 외부 충격까지 겹치치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석유화학의 생존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선 기업의 자구노력과 동시에 정부의 선제적 지원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시급해 보인다.
이를 위해선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지역경제의 도미노식 붕괴를 막고 △‘기업활력제고특별법’ 혜택을 확대해 기업 간 설비 통합이나 사업재편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하고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심사를 간소화하는 등 과감한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아울러 △장치 산업의 핵심인 에너지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분산에너지 특구’ 제도를 적극 활용해 전기요금 등 유틸리티 비용을 낮춰주는 실질적 조치 역시 절실하다.
무엇보다 △신규 자금 지원이나 대출 만기 연장 같은 생존을 위한 세재 혜택을 속도감 있게 병행해 줄 때 실질적인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산업이 무너지면 울산 경제는 물론 국가 수출 경쟁력에 치명타가 되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맞춤형 패키지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라며 “고유가, 고환율, 중국발 공급과잉의 3중고를 겪고 있는 지금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석유화학업계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