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석 열사의 비보, 잠자던 울산의 혼을 깨우다

[4·19혁명 66주년 되돌아보는 울산민주주의활동] 부정선거 규탄 넘어 지역 독재부역 청산 요구 울산노동역사관·사단법인 노옥희재단 공동 19일 ‘4·19 울산 민주주의 길’ 역사기행 진행

2026-04-16     고은정 기자
1960년 4월 26일 울산경찰서 앞에서 항의 시위하는 울산 학생들. 울산노동역사관 제공
4·19혁명 66주년을 앞두고, 1960년 울산의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주의 활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4·19혁명은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맞서 학생과 시민들이 일어선 민주주의 활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혁명의 물결은 울산에서도 거세게 이어졌다.

66년 전 울산의 학생과 시민들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그 역사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울산의 민주주의 활동 중심에는 울산농림고 출신 한양대 2학년 정임석 열사가 있었다.

정임석 열사. 울산노동역사관 제공
1961년 울산농림고등학교 졸업앨범에 실린 4·19혁명 신문기사 모음. 울산노동역사관 제공.
정임석 열사는 1960년 4월 19일 서울 경무대 앞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총탄에 복부 관통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같은 달 25일 숨졌다. 정 열사의 비보가 친형을 통해 울산에 전해지자 이튿날인 4월 26일 오전, 모교인 울산농림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학생들의 행진은 곧 시민들의 참여로 이어졌다. 시위대는 울산경찰서와 자유당사, 반공청년회, 울산군청 등으로 향하며 부정선거와 경찰 발포, 독재정권에 항의했다. 이들은 “동포여 일어서라”, “구속된 학생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울산 도심을 행진했다.

4월 27일에는 울산과 언양의 중·고등학생과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고, 언양에서는 면장과 지서장 등 공무원들이 “반성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에 동참했다. 같은 날 정임석 열사의 유해가 울산역, 당시 학성동역에 도착하자 시민 1만여 명이 모여 열사의 마지막 길을 맞았다.

1960년 5월 5일 부산일보의 울산농림고 학생 시위 기사.울산노동역사관 제공
5월에도 울산의 민주주의 행동은 계속됐다. 울산농림고 학생들은 “썩은 국회 물러가라”라며 시위를 벌였고, 3·15 부정선거에 가담한 교감과 일부 교사의 사퇴를 요구하며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당시 신문들은 울산농고 학생들을 선두로 울산여고, 울산제일중, 울산중, 울산고 학생들이 합류해 시가행진을 벌였다고 전했다.

정임석 열사의 장례는 5월 13일 울산군민장으로 농소 천곡에서 치러졌다. 이후 울산에서는 교원조합 결성, 부역 교원 퇴진 요구, 동맹휴학, 반혁명세력 규탄투쟁 등이 이어졌다. 7월 민의원 선거 국면에서는 울산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반혁명세력규탄투쟁위원회’가 자유당 출신 후보 사퇴를 촉구하며 울산 전역을 순회했다.

이처럼 울산의 4·19는 정임석 열사의 희생을 추모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학생과 시민들은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를 거리에서 드러냈고, 부정선거 책임자와 독재 부역 세력의 청산을 요구했다. 이는 울산 지역사회가 민주주의를 스스로 회복하려 했던 역사적 장면이었다.

울산노동역사관과 사단법인 노옥희재단은 이 같은 울산 4·19의 흔적을 시민들과 함께 되짚기 위해 오는 19일 오전 10시 ‘4·19 울산 민주주의 길’ 역사기행(울산공고 역사관 - 울산교 - 옛울산경찰서 - 옛울산군청)을 진행한다.

이번 역사기행에서는 1960년 당시 울산 학생과 시민들이 걸었던 민주주의의 길을 따라가며 지역 4·19의 의미를 살펴본다. 참가 문의 052-223-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