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 “눈 감기 전까지 붓 놓지 않을 겁니다”

[문화 기획_어떻게 지내십니까] (1)울산 1세대 화가 이창락(85)

2026-04-28     고은정 기자
지금도 붓을 안 드는 날이 없다는 울산 1세대 화가 이창락 작가(85)는 10㎡ 남짓한 그의 안방을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이수화 기자
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자 오래된 양옥집 한 채가 보였다. 우편함 위에는 ‘한국미술협회 서양화가 회원의 집’이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하루 한 면씩 채워온 삶

이 집에 사는 원로화가 이창락 작가(85)는 붓을 들고 있었다. 선암호수공원과 밀양호, 울산 인근의 산과 물을 화폭에 옮기는 중이었다. 작품에 서명도 하지 않은 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리고, 또 고쳐 그렸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의 일상은 여전히 그림 곁에 있었다.

“붓을 안 드는 날은 없네요. 재미가 있으니까요. 눈 감기 전까지는 해야지요.”

이 작가는 또 20년 넘게 일기를 써왔다. 하루 한 면을 채운 노트에는 마당 식물을 가꾸는 이야기, 아내 한영춘 씨와의 일상, 집안 수리 이야기, 그날그날의 생각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거창한 문장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창락 화가가 20년 넘게 써오고 있다는 그의 일기를 펼쳐 보이며 그 속에 담긴 그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울산의 원로화가 이창락 작가가 그의 집 안방이자, 작업실에서 그림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창작에 관한 기록들이었다.

“10호 호반 풍경의 먼 산 채색을 거의 끝냈다. 이제 푸른 물과 하늘 앞쪽 채색만 남았다”, “포구 30호, 전에 채색하다 중단했던 그림을 조금 터치했다”, “녹색 잎처리를 매직 스펀지로 여러 번 지웠더니 너무 탁해서 갈등상태다” 짧고 담담한 기록이지만, 늘 그림과 함께하는 일상이 묻어났다.

#교단에서 이어간 그림의 꿈

이창락 작가는 울산미술협회 초창기 멤버로 활동한 울산미술 1세대 화가다.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자랐다. 6·25전쟁 시절, 그는 “전쟁통에 끌려가 죽지 않으려면 교사가 돼야 해서 부산사범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사범학교 입학도 쉽지 않았다. 담임교사에게 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하자 “공납금도 못 낸 놈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결국 특차로 합격했고, 담임과 교장은 기뻐하며 졸업 앨범까지 무료로 챙겨줬다.

교단생활은 울산 농소초등학교에서 시작했다. 이후 고등학교 교사 검정고시에 합격해 울산공고, 울산여고, 울산여상 등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했다. 대학 진학도 꿈꿨지만, 아버지는 월급을 받아 집안을 도우라고 했다. 그는 교단에서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제자들 가운데 일부는 훗날 대학교수와 울산지역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됐다.

작가로서의 길도 꾸준했다. 초기에는 인물과 불상을 소재로 유화 작업을 했다. 이후 1995년 무렵부터 수채화로 방향을 바꿨다. 내원사, 대왕암, 선바위, 문수산, 우포늪, 한산도, 계림 등 한국의 자연 풍경은 그의 화면에서 맑고 투명한 색으로 되살아났다.

“수채화는 유화와 달리 근원적으로 맑고 경쾌합니다. 제 작품을 보며 평소 잊고 지낸 자연의 아름다움과 포근함을 느꼈으면 합니다.”

이창락 작. 이수화 기자
이창락 작. 이수화 기자
이창락 작. 이수화 기자
#여전히 ‘현재진행형’ 원로화가

그는 직접 찍은 풍경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옆에 이젤을 두고 그림을 그린다. 때로는 서로 다른 풍경 사진 두 장을 합쳐 하나의 화면으로 구성하기도 한다고 했다. 자연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과 마음을 거쳐 다시 짜는 작업이다.

그는 현재 울산수채화협회와 울산구상작가회 고문, 한국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울산미협전, 환경미술협회전 등 단체전에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다. 젊은 작가들에게 그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그림만 그려서 먹고 살기는 참말로 어렵습니다. 그래도 다른 일을 하면서라도 끝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합니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하면, 나중에는 그게 아주 큰 보람이 됩니다”

30년 된 이젤 앞에서 앉은 이창락 작가. 이날 작가의 그림은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손질됐다.

울산미술의 시작을 함께했던 원로 화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