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시스템의 시대에서 한 끗의 차이는
AI가 높인 일관·효율성 속 사람 손길 그리워 시스템이 보장 못하는 만족은 디테일서 시작 사람의 ‘한 끗’ 더해질 때 질적 도약 일어나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 숙소가 있는 동네의 도서관을 찾곤 한다. 숙소에 책을 잔뜩 빌려두고 틈틈이 읽는다. 다른 동네로 넘어갈 때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숙소가 있는 동네에서 또 책을 빌린다.
여러 도서관을 돌다 보면, 각 도서관 만의 분위기와 개성을 느낄 수 있다. 규모가 비슷해서 예산도, 서가 시스템도, 사서 직원의 수도 비슷할 텐데, 유독 잘 정돈되고 특징 있게 책을 배치해둔 도서관이 있다. 세심하게 배치된 의자와 테이블, 지역 작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는 북 큐레이션, 서가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관리자의 안목. 그런 공간에는 누군가의 고민이 살아있는 게 느껴진다.
우리는 시스템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면 전 세계 어디서든 균질한 맛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편의점은 서울이든, 제주든, 어딜 가도 같은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시스템이 모든 것을 비슷하게 만들수록, 우리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질적 차이에 더욱 민감해진다.
같은 레시피와 매뉴얼을 공유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이라도 지점마다 미묘하게 다른 만족도를 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의 디테일 때문이다. 어떤 곳은 계절과 날씨에 맞는 음악이 흐르고, 어떤 곳은 책이나 소품의 위치를 조금 더 보기 좋게 매만진 정성 같은 게 느껴진다. 시스템은 효율적인 일관성을 보장하지만, 그 일관성에 맥락을 부여하고 가치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현장에 있는 인간의 몫이다.
이 시대의 변화를 주도할 AI가 더 보편화되면, 전 영역에서 일관성과 효율성은 높아질 것이다.
소설가 장강명의 에세이 <먼저 온 미래>는 바둑계에 들어온 AI로 인한 변화를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기보를 보거나, 함께 모여 바둑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바둑을 공부했다. 요즘의 젊은 기사들은 AI 프로그램으로 바둑을 공부한다. 기사들은 AI가 두는 승리 확률 높은 수를 외워 두는 방식을 쓴다.
그 결과, 바둑의 문턱이 낮아지고 전체적으로 실력이 향상되었지만, 개개인의 기사들이 가졌던 기풍 내지는 개성이 없어졌다고 푸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상향 평준화된 실력으로 대결을 펼치지만, 대국을 보는 이들은 어떨까. 각자의 개성을 갖고 맞붙었던 예전의 대국들이 그립지 않을까. 사람이란 건 어쩔 수 없이, 효율과 일관성 너머에서 사람의 손길을 느낄 때 더욱 마음이 이끌리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제주의 어느 도서관에서 느꼈던 그 기분 좋은 느낌처럼, 우리 개개인이 머무는 자리에서 시스템을 넘어서는 사람의 한 끗이 더해질 때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사람은 단순히 시스템 속 일부가 아니다. 시스템에 의해 저절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조차,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는 건 사람이 만드는 ‘한 끗’이다.
평범해 보이는 일, 그저 기계적으로 하는 일에도 한 끗의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누군가는 그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누군가가 그 일을 좋아할 때, 또 그 일을 잘하는 자신을 좋아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적재적소’가 뜻하는 바가 아닐까.
커피 맛은 기계가 맞추지만, 손님과 눈을 맞추며 건네는 짧은 인사 한마디가 그 커피의 가치를 오천 원짜리 음료에서 위로의 수단으로 바꿀 수도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작은 품을 들여 차이를 만들어내고 싶은 자리에 있다면 행운이다. 그리고 그런 이가 만들어낸 것을 소비하는 자리에 있는 것도 행운이다. 두 행운 중 어떤 것이든, 난 그 행운의 자리에 자주 머물고 싶다.
송광용 남산초 교사‧동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