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에 발견’ 오윤 초기 벽화, 재건축에 철거 위기

1974년 제작 서울 구의동 테라코타 벽화 발견 오영수 선생 아들…지역 문화자산 의미 재조명 시간·비용 문제…울산시립미술관, 상황 파악 유족 “공공기관 나서야”…본격 보존 청원운동

2026-05-03     고은정 기자
서울 광진구 구의동 전 우리은행 벽화작품 현장의 양면에 새겨진 테라코타 부조 — 인체 부조 면. 유족·한국스마트협동조합 제공
서울 광진구 구의동 전 우리은행 벽화작품 현장의 양면에 새겨진 테라코타 부조 — 인체 부조 면. 유족·한국스마트협동조합 제공
서울 광진구 구의동 전 우리은행 벽화작품 현장의 양면에 새겨진 테라코타 추상 부조 면. 유족·한국스마트협동조합 제공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오윤(1946~1986)의 초기 공공미술 작품이 반세기 만에 발견됐지만, 재건축을 앞두고 철거 위기에 놓였다. 작품은 서울 광진구 구의동 옛 상업은행 지점 건물에 설치된 테라코타 벽화다.

작품이 서울에 있지만, 이번 사안은 울산 문화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오윤은 울산 출신 단편 소설가 난계 오영수의 장남으로, 울산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전시 등을 통해 오영수 문학과 오윤 미술을 잇는 ‘부자 예술’을 지역 문화자산으로 조명해왔다. 최근 구의동 건물 매수인이 울산시에도 작품의 존재를 알렸고, 이전과 보존 가능성을 두고 논의가 오가면서 울산시립미술관도 상황 파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구의동 벽화는 오윤이 28세였던 1974년 제작한 전돌 부조 작품이다. 점토를 빚어 구운 테라코타 벽돌을 이용한 양면 벽화로, 높이 약 3.5m, 길이 약 5m 규모의 벽 2개로 구성됐다. 갈색과 검은색 전돌이 기하학적 문양을 이루며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그동안 건물 내부 가림벽 뒤에 가려져 미술계에서도 사실상 멸실된 작품으로 여겨져 왔다.

벽화는 최근 건물 매각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은행은 매매 과정에서 새 매수인에게 작품의 존재를 알렸고, 매수인은 작품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문의한 뒤 오윤 유족에게 연락했다. 매수인은 유족에게 작품 소유권을 넘기기로 했지만, 재건축 일정상 오는 8월 이전까지 벽화를 해체해 반출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다. 벽체에 붙어 있는 대형 테라코타 작품을 해체·이전·복원하려면 보존전문가와 장비,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미술계에서는 이전과 복원에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규모다.

오윤의 유족인 둘째 아들 오상엽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공공기관에서 맡아주기를 희망한다”라며 “오윤 미술관이나 기념관이 생기면 너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부터 작품 이전과 보존 추진을 맡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시민청원운동에 나섰다. 조합은 다음 달 ‘오윤 구의동 벽화 부조 프로젝트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는 5월 10일까지 1만 명 서명을 목표로 차기 서울시장에게 작품 보존을 청원할 계획이다.

서인형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이사장은 “민간에서도 작품을 가져가고 싶다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이 작품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소장품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자산이 돼야 한다”라며 “결국 공공이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오윤은 민중미술가였지만 이 작품의 보존 문제는 정치적 이슈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의 문제”라며 “이미 보존전문가를 소개받아 이전·복원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구의동 벽화부터 해결하고, 이후 종로4가 작품 문제도 풀어가려 한다”라고 밝혔다.

오윤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울산과 깊은 인연을 지닌 작가다.

소설가 아버지와 판화가 아들은 매체는 달랐지만, 한국적 정서와 민초의 삶을 깊이 응시했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오영수가 울산 어촌과 서민의 삶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면, 오윤은 힘 있는 목판화와 조형 언어로 민중의 한과 신명, 생명력을 표현했다.

울산에서도 오윤 재조명은 이어져 왔다. 2017년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는 오윤 타계 30주년 기념 회고전이 열렸고, 2022년 울주군 서울주문화센터 등에서도 오윤의 판화와 드로잉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마련됐다. 울주군 오영수문학관에는 오윤이 직접 제작한 아버지 오영수의 데스마스크와 브론즈 흉상 외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이번 구의동 벽화는 오윤이 목판화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전, 흙과 전돌을 통해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던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74년 상업은행은 구의동과 동대문, 삼각지 지점 등에 전돌 벽화를 의뢰했고, 오윤은 오경환·윤광주 등과 함께 제작에 참여했다. 청년 작가가 공공건축물에 대형 부조 작품을 남기기 어려웠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한국 공공미술 초기의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한편 구의동 벽화의 위기는 종로4가 우리은행 금융센터 외벽의 테라코타 벽화 ‘평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종로4가 작품 역시 1974년 오윤 등이 제작한 전돌 벽화로, 광장시장 인근 건물 외벽에 남아있는 대표적 초기 공공미술 작품이다. 그러나 매연과 풍화로 일부 전돌이 떨어지는 박락 현상이 발생하면서 수년 전부터 가림막에 덮인 채 보수·복원 논의가 장기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