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결국 질문은 인간의 몫”… 이창호·이세돌의 한 수

‘AI 시대 인간의 역할’ 주제 UNIST서 토크콘서트 진행 바둑 통해 AI 교육방향 제시 판단력·창의성 등 중요 강조

2026-05-06     정수진 기자
‘UNIST Open Stage 1’ 이세돌 특임교수와 이창호 국수의 토크콘서트에 앞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바둑계의 두 거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인공지능이 일상과 교육 전반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이창호 국수와 이세돌 UNIST 특임교수가 한 자리에 모여 ‘AI 시대 인간의 역할’을 주제로 생각을 나눴다. 두 사람은 6일 UNIST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바둑을 통해 판단력과 창의성, 그리고 스스로 질문하는 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반상 위로 먼저 온 미래: AI 시대의 한 수’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학생과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두 기사는 바둑을 통해 AI 시대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행사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AI 활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생각도 나왔다. 이세돌 교수는 알파고 사례를 언급하며 “이전의 알파고는 인간 기보를 기반으로 학습했지만, 알파고 제로는 기본 규칙만으로 스스로 대국을 만들어갔다”며 “다른 분야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를 잘 활용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창호 국수는 “AI 등장 이후 새로운 발상이 나오면서 바둑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참신한 시도를 통해 인공지능과의 격차를 좁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학본부에서 GRIT인재융합학부 설립 연계 ‘UNIST Open Stage 1’ 이세돌 특임교수와 이창호 국수의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이수화 기자

이어 토크콘서트에서는 AI 이후의 변화와 패배와 재도전,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역량 등을 주제로 대담이 이어졌다.

두 기사는 AI를 승패가 아닌 해석의 문제로 바라봤다. AI는 훈련 방식과 복기 문화, 포석의 상식까지 바꿨지만, 두 사람은 AI가 더 많은 답을 제시할수록 인간에게는 이를 이해하고 자기 판단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호 국수는 “정답을 보는 것과 그 정답에 이르는 길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며 “AI가 좋은 수를 알려줘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세돌 교수는 “낯선 상황에서 자기 생각으로 선택을 내리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가 바둑계에 미친 변화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이세돌 교수는 “바둑은 정해진 답 없이 하나씩 만들어가는 추상적인 전략 게임”이라며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공지능 등장 이후 바둑의 기술 수준은 크게 향상됐지만, 초반 수만 봐도 누구의 대국인지 알 수 있었던 고유의 기풍이 점점 흐려진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호 국수도 “승률을 조금 높이기 위해 정형화된 수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기풍에 맞게 두면서 AI를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기사는 AI 시대일수록 ‘자기만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세돌 교수는 “바둑은 추상 전략 게임이다. 생각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선에서 AI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고, 이창호 국수는 “자기 스타일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AI 도움을 받는 것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6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학본부에서 GRIT인재융합학부 설립 연계 ‘UNIST Open Stage 1’ 이세돌 특임교수와 이창호 국수의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이수화 기자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시각도 공유했다. 이세돌 교수는 “AI가 특정 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하지만,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적 가능성도 크다”고 했고, 이창호 국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문학적 기반도 중요해진다”고 덧붙였다.

대담은 ‘패배와 재도전’으로 이어졌다. 이창호 국수는 “진 판이 더 오래 남고, 그 복기가 다음 승부를 만든다”고 했고, 이세돌 교수는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음 질문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UNIST 측은 이번 행사가 단순 강연을 넘어 새로운 교육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탐구하는 교육 모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취지다.

GRIT인재융합학부는 학생이 기존 학과를 먼저 고르는 대신, 자신의 연구 질문과 관심 분야, 진로 목표를 바탕으로 학업 경로를 직접 짜는 교육 모델이다. 졸업 시에는 융합이학사 또는 융합공학사 학위를 받는다. 학생이 직접 설계한 전공명은 성적증명서에 공식 표기된다. UNIST는 2027학년도부터 ‘GRIT인재전형’으로 신입생 10명 내외를 별도 선발할 계획이다.

박종래 UNIST 총장은 “대학은 학생이 자기 질문을 만들고, 실패를 견디며, 스스로 해법을 찾아가는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며 “이번 행사는 바둑이라는 상징적 매개를 통해 인간 고유의 끈기와 창의성, 판단력이 미래 인재의 핵심 조건임을 확인한 자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