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다시 본 언양 3·1운동…지역 청년층이 주도?
울산역사연구소, 14일 학술 세미나 ‘지역 향토사 연구 성과·방향’ 주제 이병길 항일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자료 등 토대 ‘천도교 주도’ 재검토
2026-05-13 고은정 기자
그동안 울산 3·1운동사는 구술과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 기대어 설명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에서는 실제 판결문에 나타난 인물과 시위 준비 과정, 처벌 내용을 통해 언양 3·1독립운동을 다시 검토하는 발표가 예정돼 주목된다.
울산역사연구소는 14일 오후 2시 울산 종하이노베이션 6층 컨퍼런스룸에서 ‘울산 향토사 연구의 성과와 방향’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연다.
이날 특히 눈길을 끄는 발표는 이병길 항일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의 ‘언양 3·1독립운동에 대한 재검토 – 일제 사료와 독립운동판결문을 중심으로’다.
이 소장은 지역 3·1운동사가 대체로 구술에 많이 기대어 왔고, 판결문 내용을 바탕으로 만세운동의 실제 전개 과정을 분석한 연구는 드물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소장의 연구는 기존 설명과 다른 지점을 제기한다. 그동안 언양 3·1독립운동은 천도교인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 소장은 판결문과 당시 보고자료를 근거로 실질적 주도 세력이 지역 청년층이었다고 본다.
특히 판결문에는 언양 만세운동의 직접 주모자로 이무종이 등장한다. 이 소장은 이무종이 1919년 3월 29일 밤 이규인, 최해선과 시위를 모의했고, 4월 1일 이규인의 빈집에서 이성영, 강경찬, 이규경 등이 합류해 구한국국기 42본을 만든 뒤 4월 2일 언양 장날 만세시위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이 소장은 또 울산 3·1운동의 발생 배경도 다시 살핀다. 기존에는 서울 3·1운동의 영향이 강조됐지만, 이 소장은 울산지역 만세시위가 날짜상 부산·양산·통도사 만세시위의 영향을 받아 장날을 중심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세미나는 이외에도 이상도 울산향토사연구회 회장이 ‘울산 향토사 연구의 성과와 방향’을 주제로 울산 향토사 연구의 흐름을 정리하고, 산업도시 울산을 넘어 선사·고대·근현대가 이어지는 역사도시로서의 울산을 어떻게 바라볼지 짚는다.
장세동 울산동구문화원 지역사연구소 소장은 ‘울산 향토사 자료의 해석에 아쉬움이 남는 사료’를 발표한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남겨진 울산 관련 향토사 자료를 살피며, 자료 해석 과정에서 놓친 점과 다시 볼 필요가 있는 사례를 제시한다.
변상복 울산지역사답사회 회장은 ‘마을 제당과 당산나무 현장 답사를 통한 지역사 연구의 성과와 방향’을 주제로 발표한다. 마을 제당과 당산나무 답사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기억과 생활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의 의미를 소개할 예정이다.
토론은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고 강귀일 울산제일일보 기자, 이종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등이 토론자로 참여한다.
울산역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울산 향토사 연구의 성과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과 지역사 자료 축적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