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문학상] “현대 문명 불안·인간 실존 위기 폭넓게 담아”

[방현석·은희경·한영인 심사위원 심사평]

2026-05-14     고은정 기자
좌로부터 방현석(소설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은희경(소설가), 한영인(문학평론가)
제34회 오영수문학상 본심에 오른 여덟 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김선재 「감상 세계」, 김연수 「그리고 밤과 가을이」, 서정아 「밤눈」, 이근자 「우리 안의 새」, 임수현 「사냥꾼이 놓친 빛」, 정이현 「실패담 크루」, 조해진 「영원의 하루」, 황정은 「문제없는 하루」.(이상 가나다 순.) 본심에 오른 여덟 편의 작품은 주제의식 면에 있어서 현대 소설의 고전적인 주제인 인간 실존의 위기에서부터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층위의 문명론적 위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다채로운 소설적 진폭은 오늘날에도 소설이 폐색된 현실을 뚫고 다른 미래를 열어가고자 분투하는 마음의 거처로 존재하고 있음을 넉넉하게 입증하는 듯하다.

각기 다른 개성과 묘미를 보여주는 여덟 작품 사이에서 한참 동안 거닐던 심사위원들은 마침내 정이현의 「실패담 크루」와 조해진의 「영원의 하루」,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 세 작품으로 후보를 좁혔다. 위의 세 작품은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면밀하게 포착하면서도 그것을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소설의 문법을 통해 독자 앞에 제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물론 세 작품은 공통점만큼이나 변별되는 지점도 뚜렷했다. 그것은 소설적 성취의 문제라기보다는 방향과 지향의 문제에 가까웠고 그런 이유로 수상작을 선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좌로부터 방현석(소설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은희경(소설가), 한영인(문학평론가)
정이현의 소설은 서두에 등장하는 ‘페이스트리’처럼 다채로운 층과 결을 지닌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개인이 수행하는 자기 고백을 상품화하는 현실의 세태를 환기함으로써 오늘날 현대인이 놓인 곤경의 덫을 흥미롭게 서사화하고 있다. 정이현 특유의 매끈한 문장력과 구성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라는 데에도 심사위원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조해진의 소설에는 살처분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얻고 공무원을 그만둔 남편 대신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변으로 내몰린 노동이 한 인간에게 선사하는 수치심과 모멸감에 대해서라면 조해진만큼 탁월하게 형상화하는 작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인물이 미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파헤쳐 들어가는 조해진의 집요한 시선은 우리가 자주 숨곤 하는 허위와 기만의 가면에 끝내 균열을 일으킨다. 황정은의 소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 안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파국과 위기의 징조를 인상적으로 현시하는 작품이다. 오늘날 세계의 위기를 대하는 자매의 태도와 인식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결말에서 질주하는 차량 앞에 나란히 선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결국 같은 자리에서 같은 위기 앞에 직면해 있으며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그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정이현이 보여준 서사적 능란함과 조해진이 취하는 집요한 시선 그리고 황정은이 제기하는 문제의식 모두 의미있고 소중한 한국 소설의 자산이라는 점에 모든 심사위원은 기꺼이 동의할 수 있었다. 논의가 진행될수록 그중에서도 특히 황정은의 소설이 오늘날 우리가 소설을 통해 받아 안으리라 기대할 법한 문명적 화두를 묵직하게 던진다는 점에 모두의 마음이 이끌렸다. 매일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오는 기후 위기와 전쟁의 참화를 비롯해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는 수많은 말들의 풍경에서 이제까지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살아서는 미래가 없다는 암담함을 느끼지 않기란 쉽지 않다.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는 그와 같은 암담함이 우리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무너진 폐허를 어떻게 딛고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품고 전진하게 만든다. 황정은이 이 작품에서 제기한 윤리적 딜레마를 삶 속에서 풀어가야 하는 과제는 이제 이 소설과 나란히 살아가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황정은 작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은희경(소설가), 방현석(소설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한영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