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신인문학상 수상작] ‘마지막 바다’

2026-05-14     고은정 기자
그림. 배호
제 숨구멍처럼 느껴졌습니다.

환경단체 <에코월드>에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찬석은 떨리는 입술로 말을 뱉었다. 투박한 고백에 면접관들은 펜을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그게 합격 신호였음을, 찬석은 며칠 뒤 알게 되었다.

저기요. 숨구멍 씨?

출근 첫날이었다. 사무실 입구, 가득 쌓인 소식지 묶음 뒤에서 누군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민우였다. 그는 색이 바랜 활동 조끼를 입은 채 매직과 우드록을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방금까지 피켓을 만들었는지 티셔츠 소매에는 검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민우가 짐 뭉치를 옆 책상에 털썩 내려놓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멘트 죽이던데요? 숨구멍. 아… 여기 방음이 안 돼서 다 들리거든요.

그는 찬석에게 주어진 직함이 정책 기획 간사라고 했다. 그럴싸한 이름이었지만, 실상은 만능 잡부에 가까웠다. 오전에는 미납 회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계좌 확인을 부탁했고, 오후에는 기사 한 줄이라도 실어줄까, 싶어 기자들에게 연락하며 고개를 숙였다. 수고가 많다, 는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이를 만날 때면 가슴을 쓸어내렸고,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기부자나 노골적으로 대가를 요구하는 기자를 마주할 때면 그저 몸을 낮추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발파 현장부터 가로림만 갯벌,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전국의 강줄기까지. 에코월드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진흙 범벅이 된 운동화를 문 앞에 벗어두고, 네 평 남짓한 좁은 텐트 안에서 숨죽인 채 쪽잠을 청하는 날들이 많았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 용역들을 막아내는 게 그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용역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을 틈타 나타나곤 했기에, 현장을 지키는 건 일상이 되었다.

특히 찬석은 입사 2년 차에 거둔 짜릿한 승리를 잊지 못했다. 수도권 골프장 건설을 막기 위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었던 날이었다. 굴착기가 산등성이를 밀어버리기 직전, 찬석은 습지에서 움직이는 작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존재는 바로 ‘금개구리’ 떼였다.

작디작은 생명체는 훨씬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그 이름표 하나에 수천억 원짜리 공사가 거짓말처럼 전면 중단되었다. 그토록 멈추게 하고 싶던 게 하루아침, 중단되었다. 찬석은 그때 처음 깨달았다. 저 미물이 때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밤에 밀리면 끝이야. 여기 싹 다 묻힌다.

폭우가 쏟아지던 낙동강 갈대숲, 민우와 함께 천막을 지키던 밤이었다. 시공사가 기한을 맞추려 야간 공사를 강행하려던 참이었다. 민우는 빗물과 진흙으로 번진 피켓을 소매로 쓱쓱 닦아 텐트 한편에 세워두었다. 매직으로 꾹꾹 눌러쓴 <습지보전법 제13조> 조항이 빗물에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찬석은 번져가는 잉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과연 이 우드록 하나로 저 거대한 중장비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금개구리라도 튀어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민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찬석아. 우리가 지키는 게 멸종위기 동물뿐만은 아니잖아. 네 말대로, 이 답답한 세상에 숨 쉴 구멍 하나쯤은 남겨두려고 이러는 거지. 안 그러냐?

찬석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찬석의 시선이 민우의 발끝에 머물렀다. 앞코가 전부 닳아빠져 당장 버려도 이상한 것 없는, 그런 낡은 신발이었다.

그들이 돌아와 몸을 뉘는 사무실 또한 축축한 현장의 연장선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사무실 바닥 틈새마다 비릿한 곰팡내가 역류했다. 환풍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퀴퀴한 향이 고이면서, 마치 온몸에 검은 포자가 달라붙는 듯한 꿉꿉함이 가시지 않았다. 물을 머금어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벽지는 금방이라도 찬석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 위태로웠다. 식비를 아끼려 컵라면을 먹은 날은 환기가 되지 않아 국물 냄새가 사무실에 가득했고, 옷깃에 남은 주황색 기름기는 찬석의 처지를 증명했다.

뉴스에서 물가 상승 소식이 들려오면 후원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장 먼저 후원을 끊어버렸다. ‘활동비’라는 명목으로 찬석의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언제나 최저시급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불투명한 생계를 지탱하는 유일한 끈은 구청에서 내려주는 환경 프로젝트의 수주 여부였다. 구청의 허락이 떨어지는 달에는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서류가 반려되는 날이면 월급은 가차 없이 깎여 나갔다. 덕분에 사무실 책상 위에는 정체불명의 성명서보다 구청 입맛에 맞춘 ‘환경 공모사업 지원서’가 더 자주, 더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해 가을, 민우는 찬석을 이끌고 부산대 근처의 허름한 지하 카페로 향했다. 부산 지역 환경단체들의 연대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민우가 소개하는 수많은 활동가 중 유독 한 여자가 찬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물이 빠진 청바지에 평범한 흰 티셔츠를 입은 은지였다. 그녀는 씩씩한 미소와 함께 찬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굳은살이 찬석에게는 묘하게 낯설지 않았다.

거친 집회 현장은 종종 두 사람만의 데이트 장소가 되곤 했다. 찬석은 은지 앞에서는 마음속 깊은 곳을 꺼내 보였다. 끝없이 경쟁하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세상이 숨 막혔노라고, 그저 숨을 쉬고 싶어 여기까지 도망치듯 흘러왔노라고. 은지는 그런 찬석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은지가 그물에 걸린 거북의 눈망울을 이야기할 때면, 찬석은 서식지를 잃고 방황하는 맹꽁이들의 운명을 읊조렸다.

두 사람은 화려한 예복 대신 활동 조끼를 입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되었다. 부산 외곽의 낡은 빌라에 차린 살림은 단출했다. 겨울이면 틈새로 스미는 외풍에 코끝이 시렸고, 여름이면 찜통 같은 더위에 뜬눈으로 밤을 설쳤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민우는 종종 그들의 신혼집을 찾아와 좁은 방안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취기가 오르면 민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약속하듯 말했다. 우리가 지켜낸 그 땅에서, 나중에 너희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자고. 그럴 때마다 은지는 찬석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은지가 찬석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아들 시우가 태어나던 날, 민우가 병원으로 달려왔고 시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기가 아빠라고. 무사히 나와줘서 고맙다고. 찬석은 아이가 꼬물거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지를 감싸 쥐는 걸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시우가 돌을 맞이하던 그해 겨울, 현실은 탄생의 기쁨보다 차가웠다. 평소보다 두툼해진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 든 날, 찬석과 은지는 식탁에 마주 앉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은지의 활동비는 벌써 두 달째 소식이 없었고, 찬석이 매달렸던 구청 프로젝트마저 줄줄이 불발되던 시기였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은지였다. 일을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시우가 크면, 다 크고 난 후에 하면 좋을 거 같다고. 찬석은 대답 대신 가늘게 떨리는 은지의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포기하려는 것이 단지 직장만이 아님을 알았기에, 찬석의 가슴 속으로 시린 외풍이 스며들었다.

찬석은 빨래를 개다 말고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면 속 쇼핑몰 장바구니에는 기저귀들이 ‘낮은 가격순’으로 줄지어 있었다. 은지의 마우스 커서는 장당 390원짜리 유명 브랜드 기저귀 위를 한참이나 망설이며 배회했다. 하지만 결국 클릭이 내려앉은 곳은 반값도 안 되는 190원짜리 자체 브랜드 상품이었다. 고작 200원의 차이. 미세한 간극은 찬석의 등줄기에 식은땀을 흐르게 했다. 그 순간, 저렴한 기저귀를 썼다가 시우의 엉덩이가 빨갛게 짓물러 아이도 부모도 밤새 울어야 했던 지난여름의 기억이 그를 덮쳤다.

창밖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낡은 창틀 틈새로 빗물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스며들었다. 은지는 익숙한 몸짓으로 마른걸레를 가져와 틈을 막아보았지만, 쏟아지는 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습기를 머금은 장판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발을 뗄 때마다 찬석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툭툭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여보, 시우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아무래도 내일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은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찬석은 아이의 얼굴보다 통장 잔액을 먼저 떠올리고 말았다. 찰나의 죄책감이 가슴을 찔렀다. 내가 지금 지켜야 하는 건 뭘까. 무엇을 위해 나는 이토록 힘들게 살고 있을까. 결국 두 사람은 활동 5년 차가 되던 해, 사직서를 내게 되었다.

그즈음 혁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란히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까지는 함께 나눴지만, 졸업식 날 두 사람의 궤적은 정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혁준은 대형 부동산 자산운용사에 입사해 도심에서 억대 연봉을 거머쥔 장본인이었다. 그의 SNS에는 심심찮게 고급 외제 차의 운전대를 잡은 손목과 묵직한 명품 시계가 올라왔고, 가끔은 한강의 야경이 통창 가득 담긴 거실 사진이 피드를 채우기도 했다.

찬석아, 잘 지내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활기가 넘치다 못해 기름졌다. 간단한 안부를 묻던 혁준은 대뜸 본론을 꺼냈다.

나 이번에 회사 때려치웠다.

회사를? 왜?

혹시 기억나냐? 나 취업하자마자 영혼까지 끌어다 산 그 쓰러지던 아파트.

아… 그 재개발 구역?

어. 그게 이번에 관리처분 인가 나면서 피(Premium)가 미친 듯 붙었다. 팔 때 통장에 꽂히는 현금 보니까 기분 째지던데. 고민하다, 그냥 부산 내려왔다. 잠깐 해솔포 쪽 왔는데, 네 생각이 나서 전화해 봤다. 우리 한 번 봐야지?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다시금 떨어져 나갔다. 찬석은 낡은 빌라의 옥상으로 올라가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빽빽한 회색 지붕들과 녹슨 물탱크가 보였다. 찬석이 뙤약볕 아래서 쉰내 나는 조끼를 입고 바다를 지키느니 마느니 소리칠 때, 혁준은 에어컨 아래서 조용히 콘크리트 씨앗을 뿌리고 있던 것이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물론 혁준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고, 평범한 가정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비가 와도 곰팡내가 나지 않는, 그런 평범한 집이 갖고 싶었다.

며칠 뒤, 찬석은 해운대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일식집 룸에 앉게 되었다. 혁준이 불러낸 자리였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해운대 바다는 매끈했다. 백사장 위에는 흐트러진 미역 줄기 하나, 정박한 어선 한 척 보이지 않았다. 종업원이 들고 온 음식을 보니, 정갈하게 차려진 참돔회가 붉게 피어 있었다. 혁준은 두툼한 회 한 점을 찬석의 접시에 올려주며 속삭였다.

지금 해운대는 너무 올랐다.

…맞나.

이제 여기 말고, 눈을 돌려야 한다.

눈을? 어디로?

…저평가된 마지막 바다에.

혁준의 대뜸 스마트폰 지도 앱을 켜더니 매끈한 검지로 지도 위를 훑었다. 먹잇감을 찾는 맹금류 같았다. 부산의 해안선을 따라 오르내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엄지와 검지로 지도를 확대했다가 축소하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한 지점에서 딱 멈췄다. 찬석의 눈이 커졌다. 찬석의 고향인 ‘해솔포’였다. 지도 속 해솔포는 옥색 바다와 회갈색 육지는 얇은 실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선명하게 갈라져 있었다.

여기가 지금 ‘정비구역 지정’ 직전이야. 동의율 거의 다 채웠고, 서울 쪽 큰손들 진입하기 시작했어.

정비구역?

찬석이 낯선 단어를 되묻자, 혁준은 혀를 차며 참돔회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아이고, 순진한 찬석아. 나라에서 ‘여기 밀고 아파트 지어도 됩니다’ 하고 도장 찍어주는 단계. 재개발 시작 단계.

아….

들어가서 조금만 고생하면 돼. ‘몸테크’ 알지? 몸 구겨 넣고 버티는 거.

근데 진짜 대박은 단순히 썩은 집들 부수는 게 끝이 아니래. 여기 앞에 갯벌 보이제? 저기까지 싹 다 메워서 ‘수변 신도시’로 확장한다는 계획이 물밑에서 돌고 있다. 육지 쪽 재개발이랑 바다 쪽 매립지가 하나로 묶이는 거라고.

‘수변 신도시’. 혁준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를 듣자, 찬석은 침을 꼴깍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가는 거 같았다. 찬석에게 바다란 늘 끈적끈적한 존재였고 온몸으로 지켜내야 할 현장일 뿐이었다. 혁준이 보여준 지도를 다시 확대해 보자, 기이한 환상이 펼쳐졌다. 낡고 빽빽한 빌라촌의 회색 지붕들이 우수수 뜯겨 나가고, 곰팡이 벽지가 찢어지고 눈부신 대리석 기둥이 박히는 환상이.

이사 첫날이었다. 가파른 언덕길에 힘겹게 올라서서 마주한 해솔포 풍광은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숨이 턱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파도는 하얀 거품을 만들어냈고, 앞으로는 검은 뻘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정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 위로는 여러 어선이 얽혀있었다.

찬석의 가족이 마주한 이 층짜리 붉은 벽돌 주택은 삭아 있었다. 독한 해풍을 견뎌낸 붉은 외벽은 소금기를 이기지 못해 하얗게 백화(白華)가 피어 있었고, 초록색 옥상 방수 페인트는 허물이 되어 나풀거렸다. 찬석이 녹슨 대문에 손을 대자, 붉은 녹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삐걱거리는 대문 위에는 전 주인이 남기고 간 문패만이 매달려 있었다. 찬석은 벗겨진 대문 페인트를 문지르며 1994년 여름을 떠올렸다. 기록적인 태풍이 해솔포를 덮쳤던 밤을. 슬레이트 지붕이 뜯겨 나가고 들이치는 빗물을 양동이로 퍼내며 벌벌 떨던 찬석의 눈에, 이 붉은 벽돌집이 들어왔었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던 이층 양옥집.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던 노란 불빛은 보기만 해도 따뜻해 보였다. 열 살의 찬석에게 붉은 벽돌 주택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성(城)이었다.

여보, 괜찮을까?

찬석은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대꾸했다.

여보, 이게 ‘몸테크’라는 거래. 돈이 익어가는 중인 거지.

찬석이 호기롭게 말을 맺으려는 찰나 윗집 할머니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새로 이사 왔능가?” 걸걸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낡은 몸빼 바지를 입은 할머니는 생선 내장이 담긴 고무 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아이고, 젊은 사람들이 이 험한 동네까지 우째 들어왔을꼬. 쯧쯧.

훅, 하고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 할머니가 반갑다며 손을 뻗으려 하자 찬석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의 시선이 할머니의 손톱 밑에 낀 새카만 때에 머물렀다. 미간이 좁혀졌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민낯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당신들과 달라. 우리는 여기 살러 온 게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갈 거라고. 찬석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부터 씻었다. 비누칠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할머니의 냄새가, 아니 이 동네 전체에 배어 있는 찌든 때가 자신에게 옮을까 봐 걱정했다.

찬석은 잠들기 전, <해솔포 재개발 연대> 카페에 접속했다. 액정 속 푸르스름한 빛이 어둠 속에 웅크린 찬석의 얼굴을 비췄다. ‘필독’ 아이콘이 박힌 상단 게시글 하나가 찬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회수가 상당한 글이었다. 찬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클릭했다. 작성자는 원주민 노인네들이 재개발 동의를 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글의 끝에는 ‘빨리 펜스를 쳐야 하는데 답답하다.’, ‘저 썩은 집들을 껴안고 죽을 작정인가.’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적혀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자, 동조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보상금이나 더 챙기려는 꼰대들의 텃세’라며 비아냥거렸고, 그 밑으로 ‘없는 사람들이 자존심만 세서 굴러온 복을 차고 있다’라며 맞장구쳤다.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다가도, 글을 읽다 보니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 홀린 듯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수준 차이 나서 대화가 안 되네요]

찬석은 화면 속에 박힌 ‘수준 차이’라는 네 글자를 내려다보며 묘한 우월감에 젖어 들었다. 그는 수시로 카페를 모니터링했다. 하지만 지켜볼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게시판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분노할 줄만 알았지, 정작 이기는 법은 전혀 모르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찬석은 고심 끝에 카페에 게시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5년 동안 환경단체의 거친 현장에서 굴러먹으며 몸소 익힌 기술들이 자판 위에서 섬뜩하게 되살아났다.

[구청 건축과를 마비시키는 전략적 민원 매뉴얼]

[반대파의 논리, 팩트 체크로 박살 내는 법]

[환경영향평가? 겁먹지 마세요. 빈틈을 파고드는 대응 전략]

찬석이 쏟아낸 글들은 과거 그가 속한 환경단체에서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했던 ‘개발의 논리’였다. 적을 가장 잘 아는 자만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날카롭고도 잔인한 무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발 추진위원회 회장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다. 정식으로 홍보 이사직을 맡아 이끌어달라는 제안이었다. 찬석은 잠시 망설이는 척 숨을 고르다, 못 이기는 척 그 손을 맞잡았다.

찬석이 가세하자 지지부진하던 주민 동의율은 무서운 기세로 치솟더니 어느덧 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70퍼센트를 돌파했다. 정비구역 지정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찬석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증거처럼 외벽 붉은 벽돌 사이마다 지저분하게 피어올랐던 하얀 백화현상은, 이제는 새 아파트의 대리석 문양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잠잠하던 재개발 단톡방에 알림이 떴다.

[속보, 환경단체 ‘에코월드’, 해솔포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요구… 국내 최대 ‘대추귀고둥’ 서식지 확인]

기사 본문에는 낯익은 갯벌 사진과 함께, 손톱만 한 크기의 고둥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대추귀고둥(Ellobium Chinense)’.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 기사는 해솔포 갯벌이 이 희귀한 고둥의 국내 최대 서식지임을 밝히고 있었고, 개발을 강행할 경우 서식지가 전멸할 거라고 보도했다. 찬석의 입에서 옅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작고 하찮은 고둥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알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환경단체에 있을 때, 수천억짜리 사업을 중단시켰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저 ‘법적 보호종’이었다. 기사 속 사진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비장한 표정으로 피켓을 든 민우였다.

단톡방은 순식간에 공황에 빠졌다. ‘아 미치겠네. 이제 시작인데, 갑자기 초를 치네요. 웬 고둥 타령입니까? 저거 때문에 구역 지정 늦어지면 우리 어떡합니까?’, ‘고둥이고 나발이고 사람이 먼저지! 환경단체 저것들은 할 짓도 없나?’ 사람들의 불안은 공포가 되었고, 곧 맹목적인 분노로 변질되었다. 찬석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저들의 공포가 과장된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찬석은 저들이 곧 어떤 보도자료를 뿌리고 어떻게 구청을 압박할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었다.

[저쪽 사정 잘 알고 있습니다. 저거 쇼예요. 협상해서 명분 챙기려는 수작입니다]

찬석의 엄지손가락이 전송 버튼을 앞두고 파르르 떨렸다. 차가운 액정 화면 위로 비를 맞으며 웃던 민우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찬석아, 이 답답한 세상에 숨 쉴 구멍 하나쯤은 남겨두는 거지.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찬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다음 날, 해솔포 진입로에는 에코월드의 녹색 현수막이 펄럭였다. ‘콘크리트보다 생명을! 해솔포 갯벌, 우리 아이들의 미래입니다.’ 찬석은 그 맞은편에 섰다. ‘해솔포 재개발 연대’라는 띠를 두르고, 급하게 매직으로 쓴 피켓을 들었다. ‘사람이 멸종위기다! 낡은 집에서 다 죽으란 말이냐!’. 찬석의 오른손에는 새빨간 확성기가 들려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까딱하면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로 저 텐트에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찬석의 손가락은 마비된 듯 허공에서 멈춰 섰다.

아니 홍보 이사 양반! 뭐 하고 있어? 빨리 저것들 쫓아내야 할 거 아니야!

옆에 있던 회장이 찬석을 채근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굴러먹던 사람들이 와서 남의 동네 개발을 막아!

한 주민이 찬석의 뒤에서 욕설과 고성을 내지르자, 굳게 닫혀 있던 에코월드 천막의 입구가 거칠게 열렸다. 햇빛에 바랜 활동 조끼와 갯벌 진흙이 말라붙어 본래의 색을 잃은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천막을 나온 민우는 군중을 훑다가, 그 시선이 찬석에게 정확히 꽂혔다. 민우의 눈동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림. 배호
……찬석이? 찬석이냐?

민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찬석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끈적끈적한 늪에 빠진 것처럼 한 걸음도 디뎌지지 않았다. 민우가 찬석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쩍쩍. 그가 발걸음 내디딜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커져만 갔다.

김찬석!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민우가 찬석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챘다. 찬석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형.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형, 어서 가세요. 주민들이 많이 흥분해 있어요.

야 인마. 무슨 소리야.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여기 밀어버리면 다 죽어. 갯벌도, 바다도 다 죽는다고! 네 입으로 그랬잖아. 여기가 숨구멍이라고!

민우가 거친 주먹으로 찬석의 가슴팍을 쳤다. 그의 주먹보다, 아련한 눈빛이 찬석에게 더 뼈아프게 가슴 속에 박혔다. 그래도 찬석은 무너질 수 없었다.

낭만 집어치워요!

이 자식이 진짜….

숨구멍이 밥 먹여줘요?

민우가 찬석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민우의 손끝은 불덩이 같았다. 찬석이 당하는 걸 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민우를 밀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어디서 행패야! 고성이 오가고 멱살잡이가 이어졌다. 흙바닥에 나뒹구는 민우를 보며 찬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찬석아!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찬석은 더 크게 소리를 질러 그의 목소리를 지웠다. 사람답게 좀 삽시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정리되고, 옷을 추스르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회장이 다가와 찬석의 등을 두드렸다. 저 독한 것들. 고생했소, 이사님. 찬석은 텐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이깁니다. 곧 공청회라고 했죠? 거기에서 끝장내시죠.

해솔포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마을 골목마다 개발 찬성을 독려하는 붉은 현수막과 환경 보전을 호소하는 녹색 현수막이 엉켜있었다. 양측은 하루가 멀다고 서로를 비난하는 날 선 성명서를 온라인으로 쏟아냈다.

살얼음판 같은 긴장 속에서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밝았다. 공청회가 진행될 구청 회의실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위태로운 정적만 흘렀다. 해솔포 주민들과 냉정한 표정의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단상에 오른 환경공학과 교수가 빔프로젝터 화면을 띄웠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는 건조한 어조로, 대문짝만한 고둥 사진을 가리켰다.

화면을 봐주십시오. 조사 결과, 해솔포 해변에는 ‘대추귀고둥’이 서식한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법적 보호종이죠. 또한 해솔포가 ‘대추귀고둥’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확인되었습니다.

순간, 객석 앞줄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벌떡 일어났다.

거, 교수 양반. 말이 너무 어렵소. 대추고 뭐고, 그 조그만 고둥이 거기 사는 게 재개발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요?

주민들은 웅성거림 속에 “맞아, 다슬기 같은 거겠지!” 하는 동조의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법적 보호종의 주 서식지는 원형 보존하는 게 원칙입니다. 따라서 현재 재개발 계획은 백지화가 불가피합니다.

‘백지화’. 곧이어, 주민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된다! 백지화라니!” “내 돈! 빚내서 박은 내 투자금은 어쩌란 말이냐!”

아비규환이었다. 찬석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원형 보전’의 의미는 곧 파산을 말했다. 신혼집보다 못한 이곳에서 평생을 살 생각을 하니 숨통이 조여왔다. 앞으로 매달 통장을 갉아 먹을 대출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인가. 200원 차이로 기저귀를 고민하던 아내의 모습이 찬석의 목을 다시금 조여왔다. 찬석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 때문에 마이크가 미끄러질 듯했다.

교수님. 고둥, 중요하죠. 그리고 말씀하신 그 법, 중요합니다. 저희도 잘 압니다.

찬석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뻔한 정공법으로는 법을 깰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환경단체 간사 시절, 자신이 저 법을 무기로 여러 개발 사업을 무산시켰으니까. 그래서 그는 감정이라는, 원초적인 무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교수님 눈에는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안 보입니까?

찬석이 주민들을 가리키며 절규하듯 외쳤다.

사람들은 죽어 나가는데! 고작 저것들 몇 마리 살리자고. 사람들을 시궁창에서 썩게 합니까? 대체 왜! 왜 우리가 희생해야 합니까? 저 고둥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합니까!

찬석의 절규가 강당의 천장을 때리고 흩어졌다. 찬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이 타들어 갈 듯 뜨거웠다. 교수는 다시 한번 안경을 만지며 대답했다.

안타까운 사정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는 법과 원칙으로 하는 것입니다.

날아든 생수병이 단상 위에서 터졌다. 사방으로 튄 물방울이 교수의 서류를 적셨다. 붉은 띠를 두른 주민들이 단상으로 달려갔다. 얌전히 줄지어 있던 의자들이 도미노같이 쓰러졌고, 걸쭉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주민들은 고성을 오갔고, 대기해 있던 경찰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찬석은 멍하니 다툼을 바라봤다. 소음이 강당을 가득 채웠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세상은 고요했다. 이렇게, 끝인 건가.

원칙에도 예외는 있는 법이지요.

단상 한가운데,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남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잘 빗어 넘긴 머리에 인자한 미소, 이 구역의 인허가권자인 구청장이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구청장은 곤란한 표정의 교수를 향해 짐짓 여유롭게 말을 건넸다.

교수님 말씀 다 옳습니다. 환경, 지켜야죠. 하지만 행정이 뭡니까?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 아닙니까.

구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민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여기 계신 우리 해솔포 주민 여러분, 여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국가가, 우리 구청이 너무 방치했습니다. 저 작고 귀한 고둥도 살아야겠지만,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환경부와 협의해서 ‘대체 서식지 조성’을 조건으로 승인해 보겠습니다. 고둥은 안전한 곳으로 이사시키고, 우리 주민들에게는 명품 주거 단지를 선물하겠습니다. 안 되는 건 없습니다. 되게 만드는 게 제 일 아닙니까!

구청장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미소 뒤에는, 머릿수를 득표수로 환산해 저울질하는 정치인의 본능이 숨어 있었다. 논리는 빈약했고, 절차는 깡그리 무시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 아니었다. 당장 욕망을 실현해 줄 확신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강당에서 누군가 손뼉을 쳤다. “구청장님 만세!” 누군가의 선창은 신호탄이 되어 삽시간에 번졌다. “옳소! 밀어붙여!” “사람부터 살리자!” 에코월드 활동가들이 핏대를 세우며 불법성을 외쳤지만, 아우성은 군중의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청장은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서 승자의 미소를 띠며 우아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때 환호하는 인파 사이로 찬석은 민우와 눈이 마주쳤다. 흙먼지 묻은 활동 조끼를 입은 민우는, 고함을 지르지도 저항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찬석을 응시했다.

기적은, 아니 거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구청장의 장담대로 행정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음 날 지역 신문 일면에는 <‘규제’라는 대못, ‘주거 안정’ 위해 뽑아야>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환경영향평가는 ‘조건부 동의’로 순식간에 통과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조건’이란 건 대추귀고둥을 인근 습지로 이주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생태학적으로 성공 장담도 못 할 계획이었다.

해솔포에는 광풍이 불어닥쳤다. ‘정비구역 지정’이라는 호재 앞에 금리 공포 따위는 잊혔다. 찬석의 빌라 문 앞에는 부동산 명함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장님, 지금 파시면 피 바로 꽂아드립니다.” 휴대폰은 부동산 소장들의 아부 섞인 전화로 쉴 새 없이 울려 댔다. 재개발 카페에서는 조합이 설립되면 더 큰 금액이 기본일 테니, 꽉 쥐고 가는 걸 추천한다는 글이 인기 글이 되었다.

그날 밤, 찬석은 옥상 난간에 기대섰다. 검은 갯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달빛이 갯벌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질척하고 검은 펄 위로 흐르는 달빛은 수만 개의 비늘이 되어 번들거렸다. 그 위로는 아파트 조감도가 겹쳐 보이는 거 같았다.

여보! 우리 옆집에 계약금 벌써 들어왔대! 우리도 내놓을까?

거실에서 아내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늘 생활고에 찌들어 굳어있던 아내의 얼굴이, 갓 피어난 꽃처럼 화사했다. 찬석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가슴 한구석, 아주 깊은 곳에 남아있던 민우의 절규가 맥없이 증발해 버렸다. ‘그래, 이게 생태지.’ 자본이라는 영양분을 먹고 우리 가족이 살아나는 것. 그것보다 숭고한 게 또 있을까. 찬석은 녹이 슨 옥상 난간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묻어나는 쇳내가 비릿한 돈 냄새같이 느껴졌다. 은빛으로 출렁이는 바다를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고둥이고 나발이고, 싹 다 밀어버려.” 밤바다는 말이 없었고, 찬석의 눈동자는 차갑게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