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영의 경주남산 답사기] 가파른 바위에 새겨진 간절한 불심
[28] 오산곡 마애여래불 간절한
오산골(鰲山谷)은 경주남산의 주봉인 금오산과 최고봉 고위산 중간지점인 대연화좌가 있는(峰) 동쪽사면(이영재)에있는 아담한 골짜기이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동으로 흘러 남천을 거처 기린내로 흘러들어 형산강에 이르는 짧은 계곡이지만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하다. 동·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오산골을 중심에 두고, 오른쪽은 지바위골과 국사골로 이고, 왼쪽은 잠찰골과 쑥두듬골이다. 동남산에서 경주남산 관광 일주도로로가 이어지는 마을(오산골 어귀)입구에는 원래 피리(避里) 또는 피촌(避忖)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었는데, 일제 시대때부터 지금의 '남산리'라고 부르고 있다.
# 양피못(讓避提)과 서출지(書出池)
『삼국유사』1권 「사금갑(射琴匣)조」에 보면 소지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가 까마귀를 따라가다가 남산 동쪽기슭에 잇는 피촌 또는 피사촌(避寺村)에 이르러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을 한참동안 보고 있다가 까마귀가 간곳을 놓처버렸다. 당황한 장수가 못가를 배회하고 있을때 못 속에서 노인이 나타나 글을 주기에 가져다가 왕께 바쳣다고 실려 있다.
마을 사람들은 못 이름을 양기못 이라부르고, 양피못(讓避提)으로 적었다. 피촌이란 피리와 같은 말이고 양피못은 양피사 곁에 있는 못이라는 뜻이된다. 삼국유사 사금갑에서 노인이 글을 갖고 나왔다는 서출지는 바로 이 양피못이 되는데, 지금은 그 이름이 바뀌어 부르고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
# 중생을 우러러 보는 오산곡 마애여래불
오산골 마애불은 남산의 동쪽,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공영화장실을 지나 약 150여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무장애 탐방로(경주 동남산 무장애탐방로)는 통일전 주차장을 지나 동남산탐방지원센터 인근에 조성된 길로 휠체어와 유모차도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경사 완만한 데크길이다. 테크길이 끝나는 지점 좌측 계곡건너 능선 소나무 숲 아래에 우뚝 솟은 바위하나가 보이는데 '오산곡 마애여래불'이다. 이 여래불은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지긋이 눈을 감고 바라보는 형상으로 거대한 바위면에 조각돼 있는데 신체와 얼굴 세부표현은 뚜렷하지 않다. 마애불이 있는 바위 부근은 경사가 다소 급하고, 위험해보여 불상 앞에 서서 향을 올리거나 합장을 하며 예를 갖추기가 조차 조심 스러운 곳이다.
또한 마애불은 높은곳에 좌정해 있어 서로 마주보며 친견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가 않다. 이 가파른 바위 위에 어느때 누가 무슨 이유로 석공은 정과 망치를 들고 부처를 새겼을까? 하는 의구심은 늘 내머리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바위 끝에 매달려 정성을 다했을 석공의 마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애정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둥근 얼굴의 눈썹은 짙고, 코는 넓고 넙적하며 눈은 지그시 감은 모습으로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그 표정은 너무나 토속적인것 처럼 느껴진다. 마치 동네 아저씨의 인자한 모습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옛 우리 할머니의 모습같기도 하다. 지금 몸체는 마멸이 심하여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손,발의 구분 뿐만 아니라 옷주름마져 없어서 부처가 무슨 여래인지 알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조성연대도 가늠하기 어렵다. 바위 는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정면으로 높이는 5m정도이고, 바위의 둘레는 7m정도로 보인다. 또한 불상이새겨진 바위 아래에는 감실모양의 작은 동굴이 있어 비바람이 치거나 굳은 날씨에도 향을 피울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다소 다행으로 여겨진다. 북·동쪽 왼편 능선 위에는 남산 부석(浮石)이 그 모습 그대로 허공에 떠 있고, 그 아래로 국사곡과 지바위골로 갈라지는 산 능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산골은 신라 때 수도(서라벌)에서 언양, 양산, 부산방면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오산골 고개만디를 언양재(彦陽領)라고 부르는데, 이 고개를 넘어 도성밖 언양을 지나 양산, 부산 방면으로 통하는 고갯길이라는 뜻이다. 당시 보부상(褓負商) 들이나 먼길을 떠나거나 다시 돌아와야 하는 나그네들은 무사귀환을 간절히 소망하였을 것이다. 이 부처님은 골 어귀의 높은 베랑에 서서 험한 고갯길을 넘나드는 나그네들의 불안과 안녕을 보살펴 줬을 것이다. 이 고개를 오르면 금오산과 고위산의 중간 지점인 대연화좌가 있는(이영재) 곳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곧장 아래로 내려서면 용장골로 내남 용산으로 통하는 길이고, 좌측길은 봉화대와 천룡사, 백운암, 봉계방면으로 이어진다.
# 경주남산 관광일주도로
경주남산 순환도로 또는 남산비상도로 라 불리는 이 도로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66년 5월 18일에 기공식을 한뒤 7개월만인 1966년 11월에 준공했다. 사자봉에 서있는 준공기념비에 의하면 군인 신분의 건설단장이 주체가 돼 기간정예병과 건설단원이 동원된석으로 기록 돼있다. 건설단원은 서남산아래 경주교도소 재소자들이 주측이 됐다고 한다.
오늘 오산곡 마애여래불 을 알한 한 뒤 망부가(望夫歌)의 대표가사로 알려진 백제의 정읍사(井邑詞-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한글로 표기된 노래 중 가장 오래된 노래)가요가 산행내내 머리속에서 맴도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달하 노피곰 도닥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달님이시여! 높이금 돋으사 아아, 멀리금 비치시라 어긔야 어강도리)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