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쉰내야 탄내야

폐지·커피박 활용 자원순환 교육 상하고 태워버리는 과정 거쳤지만 오늘도 아이들 손끝서 다시 태어나

2026-05-21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몇 년 동안 우리 학교는 '학교텃밭 활용교육 운영학교'를 운영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공모에서 똑 떨어져 버렸다. 자체적으로 잘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익숙하지 않은 '자원순환실천(선도)학교 모집' 공고가 눈에 쏙 들어왔다. 분리배출 잘하고 건전지 잘 모으고 잔반 남기지 않기 같은 것만 잘하면 자원순환이지 뭐 별 게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텃밭을 운영하며 싱싱하게 자라는 작물들과 꼭 그만큼 싱싱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같이 볼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었지만 무더운 날 담당자로서 모른 척할 수 없어 두 시간씩 물을 주거나 풀을 뽑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씻어도 깨끗하게 빠지지 않던 손톱 밑 흙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사실 텃밭보다는 자원순환 쪽이 내 취향에 더 잘 맞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나는 늘 버려지는 것들에 마음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파쇄되는 서류, 신문지, 바리스타 수업 후에 나오는 커피박들, 택배 상자들. 그래 저것들을 수업 재료로 써보면 어떨까. 지구 온도도 자꾸 올라가는데 있는 거 쓰고 쓰던 거 쓰고 버리는 거 줄이면 좀 낫지 않을까.

 분리배출을 잘하면 그것들이 자원으로 다시 사용될 거라고 믿으며 반쯤은 속으며 적당히 지내왔지만 사실 제대로 활용되는지는 늘 의심스러웠다. 진짜로 재활용이 잘 이뤄져서 지구의 온도를 잘 줄이고 있는지 나무들은 덜 죽이고 있는지 실감할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이참에 아이들과 함께 내 손으로 쓰레기도 줄이고 버려지는 것들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확인도 해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저런 고민과 함께 '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돼간다. 지구를 살리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지속 가능한 지구가 어떠니 지속 가능 행복(이건 우리 학교 이름이다,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이 어떠니 하며 계획서는 열심히 적었지만, 우리 학교에서 주로 하고 있는 건 학교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수업자료로 다시 사용하는 일이다.

 처음 시작한 건 폐지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개인정보가 빼곡한 학교 서류들은 파쇄기에 갈려 쓰레기봉투나 수거업체로 가는 게 보통이지만 올해는 물통으로 들어갔다. 물에 퉁퉁 불어서 물감과 섞이면 파지는 종이 물감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에 풀을 조금 섞어 캔버스에 바르면 추상화든 구상화든 울퉁불퉁한 몸의 후광을 입고 멋진 작품이 된다. 내가 의도한 것은 분명 그것이었는데, 그 단순한 길이 오만 지뢰를 숨긴 길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폐지는 어느 연구실에든 널려 있고 창고엔 먼지 뒤집어쓰고 앉은 고무 대야도 있었다. 그걸 가져와서 물속에서 손가락 조물거리는 일은 아이들도 나도 꽤나 즐거웠다. 물감 섞고 밀가루풀도 좀 섞어서 소분 용기에 담으면 종이 물감은 완성된다. 그것을 바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게 그리 엄청난 결과를 낳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날이 꽤 찼던 때라 냉장 보관을 하지 않았더랬다. 완성될 작품의 이미지를 만들고 캔버스에 옮기는 동안 용기 속에서 종이 물감이 티 나지 않게 상해가고 있었을 줄이야.

 마침내 작품 완성을 선언하고 물감통을 여는데 쉰내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순간, 아이들과 온 데 물감을 튀기며 깔깔거리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깜빡였다. 그래서였다. 그 물감을 버리지 못하고 완성을 향해 직진했던 것은. 코를 살짝 감아쥐거나 별로 안 심하다는 작은 속삭임만으로도 뇌를 쉽게 교란할 수 있었던 쉰내가 온 층을 지배하기까지의 시간은 불과 이틀이었다.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쓰며, 쓰러져가는 지구를 작게나마 돌보겠다는 거창한 각오는 빨강 노랑 초록의 강렬한 원색에 결코 지지 않는 쉰내로 강하게 무너졌다. 쓰레기에 노력과 정성을 더해 다시 쓰레기를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한동안 나를 지배했던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냥 버리는 게 답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종이 물감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우리 학교 모든 학급의 미술 시간에 사용할 수 있게 해보고 싶다는 계획은 일단 저만치 멀어졌다.

 시행은 착오부터 시작한다는 궤변은 나의 모토다. 폐지 활용은 시작했으니 다음에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해보기로 하고 두 번째로 시도한 건 커피박 활용이었다. 커피박을 잘 말리면 탈취 효과도 좋고 방향제로도 쓸 수 있다고 해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인공지능의 도움도 받아 이번에는 제법 철저하게 준비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고등부와 전공과에서 바리스타 수업을 하기 때문에 커피박은 언제든 구할 수 있다. 교과 담당 선생님들의 협조를 구해 커피박을 한가득 구했다. 그냥 말리는 것보다 오븐에서 저온으로 말리는 게 효율적이라고 해서 제과제빵실 오븐도 빌렸다. 얇게 펴서 10분, 뒤섞어서 10분 정도면 바싹 말라서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정보를 철썩같이 믿고 그대로 했는데 웬걸, 그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커피박은 그대로였다.

 시간을 조금 더 추가해 놓고 아이들과 커피박을 활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주머니 방향제나 탈취제는 물론 지점토에 섞어 만든 고체 방향제, 스크럽제, 텃밭 거름까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엔 어떤 걸 해보면 좋을까 생각하는데 어디선가 매콤한 냄새가 폴폴 피어올랐다. 우리의 학습 열기가 그렇게 뜨거웠던 걸까. 오븐에서 나는 탄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종이처럼 익숙한 재료로도 쉰내를 막지 못했는데 커피박처럼 낯선 재료를 준비하면서 탈 거라는 예상을 못한 것은 순전히 나의 실수였다.

    비록 쉰내와 탄내 풀풀 풍기는 시작이었지만 오늘도 우리 학교 아이들의 손끝에서 쓰레기는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것이 다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든 쓸만한 작품이 되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커피박 버리는 것보다 오븐 전기 쓰는 게 지구에는 더 큰 문제 아닌가 싶은 현실적인 고민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원순환교육 1년의 길은 이제 막 열렸으니 이 시행착오의 과정이 진짜 지속 가능한 행복을 향해 가도록 오늘도 나는 조용히 코를 움켜쥐고 다음의 수업을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