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택시 기사의 값진 응원
배움엔 나이 없어…대학 연계 평생교육 확대 인생 2막 꿈꾸는 만학도의 도전 ‘깊은 울림’ 성인학습자 열정 가득 의지…진심으로 응원
얼마 전 비가 많이 내린 어느 날 아침 수업 시작 무렵의 일이다. 70대 성인학습자 두 명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강의실로 들어섰다. 젖은 우산을 털고 자리에 앉으며 아침부터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 오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데다 버스도 평소보다 늦어져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고 한다. 기사께 대학으로 간다고 하니 “이 비 오는 날 대학에는 무슨 일로 가시냐”고 물었고, 대학생이라고 하니 기사는 백미러 너머로 두 분을 다시 바라보며 어머니뻘 연세에 공부하러 다니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며 학교로 오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잠시 뒤 학교에 도착하자 기사는 이렇게 배우러 다니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고 오히려 자신이 오늘 좋은 기운을 받았다며 목적지에 도착한 뒤 택시비를 굳이 받지 않겠다고 했단다. 거듭 요금을 내려고 했지만 기사는 “오늘은 제가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라며 단호히 거절해 어쩔 수 없이 감사 인사만 전하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두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만 원 남짓의 택시비를 아낀 것보다 자신들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자랑스럽고 행복했고, 또 자신들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해 준 기사의 배려에 한 번 더 감동했다고 했다.
요즘은 평생교육이 확대되면서 만학도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대학 캠퍼스에서 중장년층이나 노년층 학습자를 만나는 일도 예전보다 흔해졌지만 여전히 나이 들어 공부하는 모습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대학캠퍼스에 책가방을 들고 강의실로 향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신기함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실 지금의 노년 세대는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던 시대를 살아온 경우가 많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꿈을 뒤로 미뤄야 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전쟁과 산업화의 시간을 지나온 세대에게 배움은 늘 삶의 우선순위 뒤편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젊은 날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아쉬움이자, 이제라도 자신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용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인학습자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보면 그들의 배움에는 특별한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졸업장이나 취업만이 목표가 아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쁨,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배움의 원동력이 된다. 과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더듬더듬 배우기 시작하고, 앞으로의 건강한 삶을 위해 영양과 운동을 배운다.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들은 학교 안에서 다시 20대의 청춘으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친구들과 과제를 하고, 시험기간이면 같이 마음졸이며 공부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가을에는 대학축제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모습에서 나이를 잊게 된다. 그들에게 대학은 단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활력을 얻는 삶의 공간이다. 오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배움은 더 깊고 단단하다. 삶을 지내며 얻은 경험이 공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택시에서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배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공부는 특정 세대만의 것이 아니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택시 기사의 따뜻한 마음과 같은 존중과 응원이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의 배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날 기사는 어르신들의 ‘배우려는 삶’ 자체에 존경과 응원을 표현한 것이고, 성인학습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아직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선물처럼 안고 등교한 것이다. 가장 값졌던 것은 공짜 택시비가 아니라, 스스로를 대학생이라 말할 수 있었던 그 자랑스러운 마음과 그것을 진심으로 응원해 준 한 사람의 따뜻한 시선이었다.
그날은 하루의 기쁨을 넘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대학시절의 추억이 됐을 것이다. 정영혜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북구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