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쓰는 일은 수행… 끝까지 같은 기운 지켜야”

[인터뷰] 태화문화복합공간 만디서 초대전, 우보 배성근 서예가

2026-05-26     고은정 기자
우보 선생은 전라도에서 울산으로 와 처음에는 낯선 지역의 벽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실력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에만 몰두했다”며 “그 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돌아봤다. 사진 고은정
우보 배성근 서예가의 초대전이 태화문화복합공간 만디 제1·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가정의 달 5월, 석가탄신일을 품은 시기에 마련된 이번 초대전은 단순히 글씨를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불교적 사유와 가족의 의미를 함께 돌아보게 한다.

◆묵암 지선스님 한시, 서예로 되살려

지난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배성근 작가는 “전시장 규모가 큰 만큼 대작을 선보일 수 있어 작가로서 쾌감과 성취감이 남다르다”며 “많은 분이 오셔서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함께 보셨으면 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백양사 주지 묵암 지선스님의 한시집 『화림산책』에서 고른 한시를 작품화한 40점이다. ‘통도사 서운암에서’, ‘마음의 등불’, ‘각차시’, ‘가랑비 내리는 날’ 등 스님의 시 세계가 배 작가의 붓끝을 거쳐 서예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문으로 쓴 한시에는 한글 번역도 함께 달아 스님의 시적 사유와 배 작가만의 서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백양사 주지 묵암 지선스님의 한시 ‘통도사 서운암에서’, ‘마음의 등불’, ‘각차시’, ‘가랑비 내리는 날’ 등이 배 작가의 붓끝을 거쳐 서예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 이번 전시에는 금문, 전서, 예서, 행서 등 다양한 서체가 한자리에 놓였다. 특히 삼베지에 금문으로 쓴 작품은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배 작가는 “삼베를 짜는 나무로 만든 종이에 쓴 작품”이라며 “중국은 일찍부터 금문, 전서 등이 다양하게 쓰였는데, 특히 금문은 상형문자에 가까워 글씨의 추상이라 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모습, 깃발, 칼과 같은 형상이 문자 속에 살아있어 서예가 단순한 글쓰기의 영역을 넘어 조형과 추상의 경계에 놓인다는 것이다.

작품 제작 과정은 치열하다. 배 작가는 “글씨를 쓰는 자체가 수행이자 고통”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글씨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가 같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지치다 보면 끝으로 갈수록 흐트러지기 쉽지만, 오래 붓을 잡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바로 그 집중력에서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우보 배성근 작가는 “전시장 규모가 큰 만큼 대작을 선보일 수 있어 작가로서 쾌감과 성취감이 남다르다”며 “많은 분이 오셔서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함께 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고은정
◆금강경·부모은중경에 담은 삶의 성찰

전시의 또 다른 중심에는 ‘금강경’과 ‘부모은중경’, 노자 ‘도덕경’이 있다. 배 작가는 금강경 작품에 대해 “수천 자에 이르는 글을 한 치의 오탈자 없이 배치하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든다. 계산하고 맞추는 일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라고 했다.

흑지에 금니 먹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부모은중경’ 작품 앞에서는 작가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불경의 문장은 서예가의 붓끝에서 부모와 자식의 시간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는 “어머니 나이가 백 세가 되어도 여든 된 자식을 걱정한다는 구절이 있다”라며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세태 속에서 이 말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라고 말했다. 작품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서고, 태어나고, 먹고 자라며, 떠나갈 때 부모가 손을 흔드는 장면, 늙은 어머니가 자식의 손을 잡는 모습 등이 글과 그림으로 담겼다.

전시장에는 노자의 ‘도덕경’을 쓴 작품도 놓였다. 배 작가는 “오천 자가 넘는 글을 쓰다 보면 오자나 탈자가 생길 수 있어 몇 번씩 확인해야 한다”라며 “작품 검수를 위해 전문가에게 확인을 부탁할 정도로 문자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라고 설명했다.

우보 선생은 전라도에서 울산으로 와 처음에는 낯선 지역의 벽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실력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에만 몰두했다”며 “그 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라고 돌아봤다. 199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전시를 이어온 그는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 전북·경북 서예대전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서예계에서 독자적인 필력을 인정받아왔다.

묵암 시 ‘각차시’
이번 초대전은 6월 12일까지 태화문화복합공간 만디 제1·2전시실에서 열린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