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후평마을 약물샘 고갈…농심 물류센터 공사 논란

마을 상징·명품 자산 ‘약물샘’ 인근 물류센터 공사 이후 고갈 주민들 농번기 용수 부족 호소 업체, 인가 조건 무시 묵묵부답 군, 주민 간담회 후 중재 협상

2026-05-27     신섬미 기자
후평마을 약물샘에 대해 설명 중인 황태철 이장.
후평마을 약물샘 변화.
“마을을 지켜오던 약물샘이 메말랐습니다. 물길이 아예 끊겼어요.”

울산 울주군의 한 마을에서 대기업 물류센터 공사가 시작된 이후 마을 상징과도 같던 ‘약물샘’이 고갈돼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7일 찾은 울주군 삼남읍 후평마을 입구에는 마을을 소개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석에는 ‘마을 진입로 옆에 여름에 목욕을 하면 땀띠를 없애준다는 신비한 약효가 있는 약물샘(탕)이 있다’고 기록돼 있어 얼마나 큰 자랑거리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2010년에는 울주군에서 2,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이 약물샘을 ‘명품’으로 지정하고 정비 사업까지 추진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 이 마을에는 34가구 60여명이 살고 있으며,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된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이 약물샘 물로 농사를 짓거나 생활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마을 바로 인근 농심 삼남물류센터 건립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약물샘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육안으로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깨끗했던 물이 하루아침에 흙탕물로 뒤바뀌었고, 수위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돼 급기야 지난해 연말에는 샘물이 말라버렸고, 메마른 자갈이 훤히 드러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당에 있는 자연샘의 수위에 대해 마을 주민 정모씨(67)가 설명하고 있다.
이날 만난 마을 주민 정모(67)씨는 “평생을 이곳에서 자랐지만 이렇게까지 샘이 마른 건 처음 있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정씨의 집은 약물샘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는데, 샘에서 흘러든 물이 마당에 또 다른 자연샘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이 물은 농사나 일상 생활 등에 사용됐다.

정씨는 “논바닥으로 흘러가는 물길을 막아둬 겨우 이만큼이라 고였는데, 농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시공사 측이 임시방편으로 급수차를 지원해 물을 대고는 있지만 이걸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후평마을 약물샘에서 설명 중인 황태철 이장.
마을 이장 황태철씨가 지난해 7월 표시해둔 수위를 가르키고 있다. 이날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데다 통상 수량이 가장 풍부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약물샘의 수위는 이장이 표시해 둔 기준선에 한참 못 미친 상태였다.
마을 이장 황태철씨는 지난해 7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약물샘 한쪽 벽면에 흰색 페인트로 수위를 표시해뒀다.

이날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데다 통상 수량이 가장 풍부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수위는 이장이 표시해 둔 기준선에 한참 못 미친 상태였다.

시공사에서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측정한 계측 관리 자료에도 계속해서 수위가 내려가는 것이 확인됐다.

마을 주민들은 농심 물류센터 공사 과정에서 물길이 완전히 끊긴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농심 측은 이러한 샘물 고갈 현상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주민들의 거센 공분을 사고 있다.

황 이장은 “공사 진행 전 가진 농심과 시공사의 설명회에서 ‘자연수(약물샘) 관련 문제시 공사 중단’이라는 요구안이 적힌 합의서에 사인을 했지만 어떠한 대화도 하려하지 않고 불통인 상태”라며 “현재 농번기를 맞아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또 “울주군의 도시계획시설 사업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 조건에 ‘본 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민원사항은 주민 및 이해관계자에게 충분히 설명해 이해를 구하거나 조치를 취하는 등 사업시행자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울주군은 이날 오후 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농심과 협상에 나서겠다고 전했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오는 29일 농심물류단지 공사장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단행동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