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그럼에도 우리가 투표장에 가야하는 이유
나의 한표가 정말 세상을 바꿀까 이번선거에서 사라진 통합과 화합 갈등 부추기는 정치 이제 끊어내야
정치라는 게 참 묘하다. 어제까지 주변인이던 시민이 갑자기 주인이 된다. 무심하던 사람들, 그냥 스쳐가던 사람들이 돌변해 "당신이 선택의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손을 내민다. 심지어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확 바꿔버릴 수 있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시민들은 착각한다. 나의 한표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착각이다. 그 착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행위가 선거다. 어쩌면 그들의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의 본질로 돌아가면 나의 한 표는 막강한 힘이 있다. 내 생각과 내 뜻이 투표라는 총의로 모일 때 하나의 실천이 된다. 쉽게 말해서 내편이 다수가 된다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야단이다. 날 좀 보소부터 날 보러 와요까지 모두가 내편이 돼 달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낮추고 있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제 불과 이틀 앞이다. 마이크 소리는 요란하지만 갑작스러운 불볕더위에 거리는 썰렁하다. 언론의 관심도 8,000을 찍은 코스피가 가장 윗줄을 차지하고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사고와 주한미군사령관의 ‘단검’ 발언에 트럼프의 오만방자한 이야기가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물론 선거철이니 격전지라는 이름으로 평택과 부산 북갑 등 몇 곳은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뉴스지만 여론조사 중계방송과 정당 대표들의 움직임이 대부분이다. 지방선거가 벌써 아홉번째지만 시장을 제외하면 누가 나왔는지, 정책이 뭔지, 공약은 어떤지 알길이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내가 사는 동네 구의원에 누가 나왔는지, 시의원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언론의 관심은 정쟁의 흐름과 편가르기의 핵심 이슈를 쫓는데 있어 보인다. 야당이 이번 선거에서 당초 15대1이라는 예상을 깨고 몇개의 단체장을 차지할 것인지, 여당은 전북지사와 평택을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사실은 이번 지방선거 처럼 흥미를 잃은 선거는 별로 없었다. 두어달 전부터 여당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되는 선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선거가 그랬고, 문재인 정부 실각 이후 치러진 선거가 그랬듯 정권의 존망은 지방선거의 바로미터가 됐다. 이번에는 더 뚜렷한 조짐이 있었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윤석열 정권의 사법절차는 전직 대통령과 그 식구들의 밑장까기로 이어졌고, 지난 여름 그들이 한 오만가지 일상이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미담이 있을 리 없는 폭로정국에 탄핵당한 전 정권은 ‘내란세력’이라는 낙인을 이마에 찍었고 그와 한 순간이라도 엮였던 이들은 선거 출발부터 ‘내란동조’라는 꼬리표로 거리에 나서야 했다. 그러니 지방선거 초입의 승부 전망치는 15대 1. 보수텃밭이라는 영남도 몽땅 진보좌파의 입성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오래된 정치의 균형추는 이미 무너졌고 회복 불가능이라는 진단도 나왔지만 ‘서동요 전술’로 골목을 파고든 한동훈식 전략과 낙관론의 느슨함이 낳은 정청래식 입방정이 판세를 흔들었다. 그래봤자 13대3 정도로 판세를 수정하는 전문가들의 진단이지만 어쩌면 속내는 그저 희망을 이야기 할 뿐, 진보좌파가 몽땅 먹고가는 선거 아니냐는 분위기다.
이런 판국에도 진보좌파의 수장인 이재명 대통령은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투표 포기는 중립이 아니라 내 삶과 공동체를 해치는 그들을 편드는 것"이라고 대못을 쳤다. ‘내 삶을 해치는 그들의 편’이라는 문구가 매우 자극적이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보수우파는 벌떼처럼 일어났다. 영남권을 여러차례 방문하고 전재수와 하정우가 혈투중인 부산은 재래시장까지 몇번을 훑으며 민생을 부각했다. 야당의 반발은 당연했지만 청와대는 정상적인 민생행보라며 불편한 시선을 더 불편해 하는 눈치다.
대통령의 후광 때문인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이례적인 몸조심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다. 유례없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뒷배로 코스피 급등에 민생지원금 지급까지 호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특별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수만 안하면 그저 먹고 들어간다는 내부 찌라시까지 돌고 있으니 격전지마다 여야 후보들간의 TV토론이나 생방송으로 돌아가는 기자회견은 손사래를 친다. 가능하면 선거 당일까지 아웃복서로 잽을 날리며 적당히 방어만 한다면 필승이라는 계산이 깔린 모양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선거가 막바지에 왔다. 지금의 판세는 집권여당의 우세가 이어진다는 평가다. 진보좌파 후보들은 가능한 대통령과 지난 시절 찍은 사진 한 장이라도 찾아 그럴듯하게 걸개로 걸고 자신의 외투는 청와대에서 하사했다고 은근히 설을 푸는데 혈안이다. 사진이 없으면 합성이라도 해야할 판이지만 보수우파는 상황이 다르다. 어떻게 하든 반전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인데 선거를 지휘하는 당 수뇌부가 위태롭다. 느닷없이 나타나 며칠 애써 닦아놓은 표밭을 망쳐버릴지 조바심이 난다. 여기에 곳곳에서 내가 보수우파의 적자라며 판을 갈라놓는다. 단일화가 대세라며 읍소해도 내가 동네 어른인데 무슨 소리냐며 눈을 부라린다.
그래도 보수우파는 샤이보수를 믿고 있다. 숨어 있는 보수들이 수요일엔 빨간 장미 한송이씩 들고 나와 보수의 재건을 알릴 것이라 기대한다. 글쎄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미안하지만 보수는 궤멸 상태다. 보수의 궤멸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사회는 체제를 유지하는 튼튼한 기둥 하나를 잃게 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끊임없는 충돌의 과정으로 발전해 왔다. 지금은 한쪽이 왕성해 보이지만 정치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느슨해지는 순간, 다른 한쪽이 꿈틀거리기 마련이다.
누가 뭐라해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둘로 갈라진 사회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통합과 화합을 이야기하고 소통을 이야기 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판은 어설프게 소통을 이야기 하고 화합을 이야기 하는 마지막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갈라진 두쪽은 서로를 향해 멸시와 조롱을 뱉고 삿대질에 열중이다. 그래서 찬란한 봄이 빨리 사라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