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에서 공유로…천년고찰의 보물, 대중과 소통

[‘국내 사찰 최초’ 통도사 개방형 수장고 가보니] ‘제2성보박물관’ 역할…성파 대종사 ‘선예전’도 함께

2026-06-02     고은정 기자
지난 5월15일 준공된 통도사 개방형 수장고 전경. 통도사 제공
통도사 서운암 인근에 지난 5월 15일 개방형 수장고가 준공됐다.

최근 둘러본 통도사 개방형 수장고는 천년 고찰이 품은 성보를 어떻게 지키고, 또 어떻게 대중과 나눌 것인가에 대한 답을 건축과 전시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서운암 장경각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한 수장고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지붕 전체를 녹지로 덮은 외관은 멀리서 보면 건물이라기보다 영축산 자락에 낮게 스며든 지형처럼 보였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개방형 수장고는 국내 사찰 가운데 처음 마련된 개방형 수장고다. 2021년 11월 기공 이후 4년 6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부지 4,986㎡, 연면적 2,758㎡ 규모로, 개방형 체험 다목적실과 학예실, 유물정리실, 관람객 쉼터, 문화재 이동·관리 공간 등을 갖췄다.

지난 5월15일 준공된 통도사 개방형 수장고 전경. 통도사 제공
통도사는 국보 제290호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비롯해 보물 36점, 유형문화유산 850점 등 모두 4만5,000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성보박물관의 공간 부족과 노후화로 많은 유물을 공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새 수장고는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면서 일부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제2성보박물관’ 역할을 맡게 된다.

건물 입구에서 만난 김병준(66·부산 동래구) 씨는 “통도사 인근 암자들을 순례하다 여기까지 왔다”며 “자연 속에서 관람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첫인상이 든다”고 말했다.

인근 서운암에는 팔만대장경을 도자기판으로 구워낸 16만 도자대장경이 보관돼 있고, 들꽃축제 등으로 방문객이 많다. 개방형 수장고가 본격 운영되면 통도사와 서운암을 잇는 새로운 문화유산 관람 동선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장은 하나의 우주로 보면 된다. 하늘에 해당하는 천장과 땅에 해당하는 바닥, 그리고 벽이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중앙에는 주요 작품들이 놓여 있다. 촬영=고은정
준공을 기념해 수장고 전시장에서는 ‘늘 푸른 솔숲처럼’을 주제로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의 ‘선예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총괄 기획은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을 지낸 윤재갑 씨가 맡았다.

전시에 동행한 통도사 개방형 수장고 최지웅 학예사는 “전시장은 하나의 우주로 보면 된다”며 “하늘에 해당하는 천장과 땅에 해당하는 바닥, 그리고 벽이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중앙에는 주요 작품들이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입구에 불상이 놓여 있다. 촬영=고은정
입구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표현한 건칠불상이 놓여 있었다. 최 학예사는 “계단의 검은 점은 우주로 들어가는 문, 혹은 우주의 배꼽 같은 의미”라며 “이 지점을 지나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한지와 옻칠, 비단, 건칠, 도자 등 다양한 재료로 완성한 작품들이 펼쳐졌다. 전통 재료에 대한 성파스님의 깊은 이해가 느껴졌다.

45m 길이의 비단 염색 작품. 큰 수조에 염색한 옻을 풀고, 그 위에 비단을 올린 뒤 성파스님이 비단을 잡고 달리며 완성한 작업이다.
가장 압도적인 작품은 45m 길이의 비단 염색 작품이었다. 큰 수조에 염색한 옻을 풀고, 그 위에 비단을 올린 뒤 성파스님이 비단을 잡고 달리며 완성한 작업으로, 높은 공간에 걸린 모습은 폭포가 떨어지는 듯한 속도감을 전했다.

작품명은 대부분 ‘무제’였다. 최 학예사는 “제목이나 해설로 관람객의 상상력을 가두지 않기 위해서”라며 “성파스님 작품은 ‘화불출래’, 즉 아무런 의도 없이 손 가는 대로 편하게 그린 그림이라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선예전’은 작품을 순환 교체하며 상설 형태로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