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영의 경주남산 답사기] 숨을 쉬며 잠드는 듯 고요한 계곡에 남겨진 불심
[29] 침식곡과 석조여래좌상 - 석수암 절이 있었던 절터
남 남산의 주계곡이라 할 수 있는 백운계곡(백운골)은 고위산과 봉화산, 천왕지산, 마석산, 동산, 오가리계곡(오가리곡)에서 흘러드는 물길로, 그 길이만도 7㎞에 이르는 남산에서 가장 긴 골짜기이다.
이 두 계곡 사이에는 열 개의 실개천, 곧 오가리골·천룡골·대골·소매골·열반골(새갓골)·양조암골·침식곡·백운골·천왕지골·수영골이 흐르는데, 모두 별내(星川)천으로 모여들어 기린내천과 합수돼 형산강으로 흘러간다.
『토론(討論) 삼한집(三韓集)』에 이르기를, "계림(鷄林) 땅에는 두 줄기의 객수(客水)가 흘러들고, 한 줄기의 역수(逆水)가 흘러가는데, 그 객수와 역수의 근원이 천재를 진압하지 못한다면 천룡사(天龍寺)가 뒤집혀 가라앉는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 했다.
딴 곳에서 흘러드는 두 물줄기라 함은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옛 마등조촌(麻等鳥村))과 남류천(옛 삼정천(三政川))의 물줄기가 합쳐져 미역내가 돼 기린내천과 합수되는 곳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객수는 울산의 백운산(白雲山) 부근에서 흘러오는 복안천(伏安川)과 활천(活川) 부근을 통해 흘러오는 활천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슬러 흐른다는 역수(逆水)는 바로 이 백운계곡으로 흘러오는 백운내(白雲川)를 말하는 것이다. 고위산에서 흐르는 계곡의 물은 모두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 계곡의 물들만이 동·남을 향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역수(逆水)인 것이다.
# 침식곡
침식곡은 백운계곡의 작은 지류로서 심수곡 또는 석수암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칠불암 뒤쪽 봉수대(烽燧臺) 부근에서 남쪽으로 스며드는 물길이 이곳으로 흐른다. 심수곡은 바위틈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는 의미라고도 하며, 심(深)은 단단한 돌바닥을 뜻한다고도 한다.
또한 침식곡의 침(寢)은 '잠잘 침'으로, 숨을 쉬며 잠드는 듯 고요한 계곡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남 남산의 열암곡 주차장에서 백운골로 약 600여m쯤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작은 계곡이 보인다. 이 계곡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다시 300여m 들어가면 고위산과 봉수대에서 갈라지는 작은 지맥 사이에 마치 분지처럼 형성된 묵은 논·밭 모양의 터(田畓)가 보인다. 이곳이 침식곡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지금은 신우대와 잡목들이 어우러져 그 형태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오래전에는 사방이 감싸 안은 평온한 곳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위쪽에 작은 암자 터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석수암(石水庵)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이 터의 북쪽 바위 사이에는 작은 샘(泉)이 있다. 바위 밑 작은 구멍에서는 사시사철 일정한 양의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 신비로운 샘터로 인하여 절이 생기게 되었고, 절에 거주하던 스님들은 이 물을 이용하여 전답을 가꾸며 생계를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는 고위산 능선과 봉수대 능선이 부드럽게 흘러내려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앞에는 천왕지산이 덩그러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침식곡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112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8세기 말~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중(二重)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머리와 광배는 소실되었으나 몸체와 삼단대좌는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형태이다. 가사(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승려의 법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게 걸치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았으며, 두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좌선할 때 취하는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앙련대(仰蓮臺)가 다소 무거워 보인다.
하대석(下臺石)은 8각 모양으로, 팔엽의 연꽃잎이 아래를 향하도록 조각돼 있다. 하대석 위의 중대석(中臺石) 역시 팔각 모양인데, 깨어져 흩어진 것을 결합한 것으로 보이며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지 않아 다소 안정감이 떨어져 보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신체는 건장하고 어깨가 넓다. 가슴은 다소 부풀어 올라 있고 몸체는 꼿꼿하게 조각됐다. 항마촉지인을 표현한 왼손은 배꼽 아래에 두어야 하는데 오른쪽 옆구리에 놓여 있으며, 땅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져 있어 다소 생동감이 떨어져 보인다.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입은 가사의 옷주름은 다소 억세게 표현되어 있으며, 뒤에서 보면 왼쪽 어깨에서 무릎 위까지 흘러내린 가사 자락이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불상은 원래 이곳에 대좌와 함께 넘어져 있었는데, 영험이 있는 부처님이라 하여 마을 신도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자리에 세워 놓고 향을 사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비록 목 부분은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 주변 발굴을 통해 온전한 부처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특히 5월 부처님 오신 날이면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