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기억하는 이름’이 되고 싶은 사람들

지방선거 결과두고 다양한 분석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구태정치 위기를 구한다는 착각의 결과물

2026-06-07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미국 이야기를 해보자. 트럼프와 바이든이 붙었던 지난 대선 때다. 미국 사회는 노욕에 찌든 두 괴물과 마주했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80대 생일을 백악관에서 맞은 바이든이 재선에 나섰을 때, 상대는 몇 살 아래의 트럼프였다. 여론은 바이든 편이 아니었다. 툭하면 말 실수에 휘청거리는 걸음, 인지저하의 연설 오류는 바이든의 습관적 증상이었다.

 결정적 장면은 ‘핵무기 버튼을 누를 권한이 있는 미국의 대통령은 정신이 말짱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문장이 대중의 힘을 얻었다. 곧바로 트럼프 측이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 트럼프는 싫지만, 바이든은 위험하다(dangerous). 결국 바이든은 중도 하차했다.

 바이든의 노욕에 다시 대권을 쥔 트럼프 시대는 참담했다. 관세의 칼을 휘두르며 미국이 세계 정상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트럼프는 결국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질렀다. 그 때마다 트럼프의 전가의 보도는 SNS였다. 사안마다 툭툭 밤낮 새벽없이 질러대는 문자 메시지는 백악관 참모들을 질리게 했고 미국 관료사회를 긴장시켰다.

 트럼프 못지않게 SNS를 즐기는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다. 공직의 가이드라인부터 소소한 국민의 일상까지 만기친람의 도구로 사용하는 대통령의 SNS는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인구에 회자됐다. 선한 영향력도 있었고 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스타벅스의 탱크데이가 논란이다. 정용진이 고개를 숙이고 후속조치를 내놨지만 대통령의 심기를 살핀 행정부는 앞다투어 민간기업을 공격했다. 지방선거가 한창일 때였다. 요란한 지적은 선거가 끝나자 침묵으로 돌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SNS는 조용해졌고 스타벅스는 다시 매출 1위를 회복했다.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새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뒷배로 손쉬운 승리를 점쳤다. 판을 깨보니 결과는 달랐다. 이른바 좌파언론도 이점은 분명히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서울 민심의 반전, 여권에 뼈아픈 ‘견제구’>라는 타이틀로 이재명 정부의 독선에 일침을 날렸다.

 한겨레도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절반의 승리’로 평가했다. 한겨레는 <국힘 꾸짖은 민심, 여당 독주도 견제했다>에서 민주당 승리의 원인으로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야당 심판론을 꼽으면서도 "이런 상황에서도 민주당이 압승하지 못한 것은 이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정청래의 ‘오만해 보이는 말과 행동이 보수층의 거부감을 키웠다’는 지적이었다.

 그렇다고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국민의힘 쪽이 웃을 수 있는 장면도 딱히 없다. 물론 서울을 지켰고 영남방어선의 절반의 승리를 이뤘으니 선방했다고 자위할 수 있지만 천만에다. 부산과 울산을 잃은 것은 영남의 민심이 국민의힘에 준엄한 경고를 날린 셈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대구시장과 경남지사 선거의 막판 뒤집기는 국민의힘에게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 더 철저하게 무너지고 외면받아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을 거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선거가 끝난 뒤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거를 두고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모두가 웃을 수 없는 결과라는 이야기를 한다. 민주당과 정청래, 그리고 대통령이 내상을 입었지만 문제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장동혁 대표다. 장동혁은 선거 직후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면서 부정선거 시위 현장으로 달려갔다. 졌지만 잘 싸웠으니 대표직은 가지고 있겠다는 절규다. 그야말로 현실부정에 자기 체면에 걸린 망상이다.

 울산의 지방선거에서도 이런 현실부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울산은 이번 선거에서 40대 정치신인 김상욱 후보가 48.73% 득표해 시장으로 당선됐다. 현역 시장인 김두겸 후보는 45.74%를 얻어 낙선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오래전 시장을 세 번이나 지낸 박맹우 후보가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결과를 두고 가정법은 무의미하다. 김두겸과 박맹우 두 사람의 단일화가 이뤄졌다해도 그 효과가 그대로 표로 반영된다는 가정법은 유효하지 않다.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에 끼워맞추는 방식의 추론은 그래서 위험하다. 다만 마지막까지 버틴 박맹우의 뒷배는 궁금하다. 초반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에 가까운 지지율이 박맹우의 심장을 뛰게 했을 것이라는 심리적 추론부터 열심히 뛰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망상적 무아지경까지. 박맹우의 심리적 자아도취는 여러 결로 분석 중이다.

 실제로 박맹우 후보는 선거기간동안 ‘위기 때마다 울산을 살린 이름’이라는 구호로 시민들의 선택을 희망했다. 바로 이 지점이다. 자신의 시장 시절이 과연 그랬을까. 세 번의 시장과 두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마지막 시장 시절 임기를 마무리하는 순간 중요한 정책적 결정을 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딱 한가지 여천동 분뇨매립장에 시립도서관을 건립하기로 한 결정은 두고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태화강을 살린 시장이라는 타이틀로 3선을 이어온 박 시장은 자신의 임기동안 시민 민원 1순위였던 의료와 교육 시내버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당시 울산시민들이 목말라 하는 것은 뒤처진 교육 인프라와 낙후된 지역의료였고 시내버스는 민원 1순위였다. 시립도서관 하나 없는 문화인프라도 울산 시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소도시 경주에도, 김해조차 자신들의 랜드마크로 시립도서관에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울산은 그저 예산을 앞세워 분뇨처리장 위에 그것도 공해지역 경계선에 시립도서관을 세웠다.

   물론 울산시립도서관은 지금 많은 시민들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 모두가 즐겨찾을 수 있는 공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은 없다. 그저 잘지은 건물, 학부모와 초등학교 학생들이 주로 찾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상황이다. 선거가 끝난지 며칠이 지났지만 거리 곳곳에서는 ‘울산이 위기 때 마다 함께한 이름’이라는 선거홍보물이 여전히 나부끼고 있다. 그 이름을 보면서 바이든의 노욕과 트럼프의 광기, 장동혁의 망상이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 웃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