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유리벽에서 나온 백상아리
유리벽에 갇힌 적막 스민 백상아리 나흘 만에 넓은 바다 향해 헤엄쳐 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때 나다워져
저녁 식탁을 치우고 텔레비전을 켰다. 때마침 육아 예능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백상아리,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강한 포식자를 좋아하는 아이가 여행지 수족관에서 상어를 접하자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넓은 바다를 누비는 백상아리가 된 양 무서워 보이려 애쓰는 아이의 표정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때마침 대형 수족관을 갖춘 카페에 백상아리가 확인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백상아리는 영화 '죠스'의 모델로 무서운 포식자라고 인식이 돼 있었다. 실물을 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카페로 이끌었다.
카페 수조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물속과 물 밖의 세상이 마주하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다양한 물고기들이 헤엄쳤다. 어떤 물고기는 먼저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말없이 유영하는 몸짓이었지만, 그 고요한 움직임 속에는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 깊은 위로가 숨어 있었다.
잔잔한 물결 사이로 비치는 조명은 작은 바다를 만들어 놓았고, 커피 향은 그 바다 위에 떠도는 안개처럼 은은하게 퍼졌다. 창가 대신 수조 앞자리에 앉아 백상아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과는 달리 물고기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꼬리를 한 번 흔들고, 방향을 바꾸고, 다시 유영하는 단순한 동작이 전부였지만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평화로웠다.
그 틈에 백상아리로 보이는 물고기가 스쳐 지나갔다. 반신반의하면서 회전될 때까지 기다렸는데, 특유의 강한 이빨을 드러내 백상아리라는 걸 직감했다.
유어이지만, 포스는 죠스 급이다. 어린이들이 그토록 외치던 백상아리를 눈앞에 두고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바다를 누벼야 할 백상아리가 수조 속을 맴돈다. 유리벽은 투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경계가 되어 그의 세상을 가둔다.
한때 수평선 너머를 향해 헤엄쳤을 힘찬 몸짓은 짧은 원을 그리며 되풀이된다. 관람객들은 그 위용에 감탄한다. 날카로운 이빨과 강인한 지느러미가 압도하지만, 눈빛 어딘가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적막이 스며 있다. 넓은 바다를 기억하는 생명에게 수조는 너무 좁고, 고요하다.
어쩌면 우리도 가끔 수조 속 백상아리와 닮았다. 익숙한 울타리 안을 맴돌고, 안전함과 자유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생명은 본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다.
육아 예능에 나오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나의 아버지와 오빠는 누구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강조할 때가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서사 속에서 결론은 우리 오빠가, 때로는 우리 아버지는 힘이 세다는 것이었다.
백상아리는 길이 6m 이상, 몸무게 2t 이상까지 자라는 대형 상어다.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동물로 넓은 바다를 끊임없이 헤엄쳐야 호흡할 수 있다. 수족관에서는 유리벽에 부딪혀 다치기 쉽고, 먹이 적응이 어려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성체 백상아리를 장기간 전시하는 수족관은 사실상 없다.
백상아리가 수조에 들어온 것은 잠시였다.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헤엄치는 모습은 분명 신비롭고도 위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백상아리는 나흘 만에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우리 삶도 때로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 머물고 싶지만, 그곳이 나의 본래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 익숙함에 안주하면 숨은 쉬어도 마음은 점점 답답해진다. 새로운 도전과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자신다운 삶을 산다.